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탐심(貪心 탐하는 마음)이 아주 많았다. 즉, 좋은 음식, 좋은 장난감, 듣기 좋은 말,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보살핌 등을 포함해 좋은 것 얻기를 좋아했다. 때문에 수련 후에도 사람 마음이 아주 강했는데 단지 사람 중에서 좋은 것을 얻으려던 것에서 수련 중에서 좋은 것을 얻는 것으로 변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이 탐심을 많이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많은 탐심이 도처에 표현되는데, 단지 과거보다 더 은폐되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뿐임을 발견했다.
아래에서 최근에 내가 알게 된 일부 탐심의 표현과 이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말해보고자 한다.
글을 투고할 때면 내 글이 발표되기를 바란다. 배후의 생각은 글이 발표되면 동수들을 계발할 수 있고 이는 내가 그들을 도와 좋은 일을 한 것과 같으니 자신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수련에서 제고하거나 무슨 공로가 있는 등이다. 최근 들어 더욱 인식하게 된 것은 투고 과정 자체가 바로 마음을 닦는 아주 좋은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발표되길 좋아하는 집착심을 제거해야 한다. 이런 마음의 배후는 바로 자사(自私), 자아, 구함(求)이 있고, 좋은 것을 탐하고, 하늘의 공을 탐하는 등이다. 이런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수련 제고이자 자신의 수확인바 이는 자신의 어떤 문장이 발표되어 가져오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심태(心態)를 바로잡고 이 수련 과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과거에 동수에게 조언하거나 상대방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면 상대방이 내 관점을 받아들이는 여부에 몹시 집착했다. 배후의 생각은 바로 상대방이 내 관점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노력이 수확이 있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이 마음도 사실 역시 탐심이다. 뭔가를 감당했으면 수확을 보려 하고 헛되이 감당해선 안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늘 희생과 수확을 계산한다. 법(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대각자(大覺者)는 모두 아무 조건도 없고 대가도 없는 것으로 고달픔을 따지지 않고 보답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시로 대가와 보답을 따지려는 이런 심태가 전혀 없다.
돌이켜보면, 한 번은 내가 어떤 동수에게 조언해준 후 상대방에게 내가 가부좌 중에 깨달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상대방은 들은 후 아주 수긍하고 또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 나는 아주 기뻤다. 그런데 몇 달 후 나는 자신이 비록 거짓말을 하진 않았지만 배후에 하나의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말해야 내가 한 말의 효과가 강화되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당시에 또 이런 목적에 도달했지만 돌이켜보면 몹시 견디기 힘든데 왜냐하면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무엇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교훈을 통해 이후 다른 사람과 소통할 때 상대방의 접수 여부에 비교적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목적을 달성하고자 무언가를 이용해 자신의 말을 강화하거나 증명하려는 일이 더욱 줄었다.
자신이 관난(關難 관이나 난)에 직면해 동수들과 교류할 때면 과거에는 이 과정에서 수확에 매우 집착했다. 만약 동수의 교류가 내게 계발을 주고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면 기분이 아주 좋고 이 시간이 보람찼다고 여겼다. 반면 동수의 교류가 내 구미에 맞지 않거나, 핵심을 말하지 못하거나, 핀트가 맞지 않거나, 인식이 너무 얕다고 느끼면 곧 싫어했고 시간을 낭비했으며 마치 손해를 본 것처럼 여겼다. 나중에 이 마음 역시 사실 강렬한 탐심이며, 늘 이득을 얻으려 하고 손해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가급적 이득을 취하려는 이 마음을 담담하게 만들어, 더는 교류 후의 수확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수확을 얻는 것보다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깨달았다. 만약 교류 과정에서 수확이 있으면 기뻐하고 없으면 불만을 품는 이 자체가 바로 아주 큰 심성 문제라고 본다.
나는 과거 대규모 단체 교류를 대할 때 ‘수확’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히 강했다. 때로 대규모 교류에서 일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안으로 찾는 나눔이 있고 들은 후 자신이 큰 계발을 받았다고 여기면 내심 아주 만족했고 시간을 잘 이용했으며 수확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때로 대규모 교류에서 구체적인 일만 말하고 안으로 찾고 수련하는 그런 것이 없으면 스스로 수확이 없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여겨 불만을 품었다.
나중에 발견한 것은 사실 내가 아무런 수확이 없어서 듣고 싶지 않고 불만이 있다고 느낄 때가 바로 자신의 사람 마음이 떠오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바로 좋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사람 마음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해 제고해야지 밖으로 환경에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탐심은 사실 좋은 것을 더 많이 얻으려 하고 감당한 것보다 수확이 더 크기를 바라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기뻐함을 알았다. 만약 감당한 것이 수확보다 크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감당한 후 아무런 수확이나 결과도 보이지 않으면 곧 하지 않으려 하고 싫어한다. 그러므로 탐심은 종종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 목적심(目的心),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만족을 모르는 마음을 초래한다. 좋은 것을 얻으려는 관념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늘 자신도 모르게 득실(得失)을 따지는데 이 과정에서 기뻐하거나 불만을 갖는다.
탐심은 또 원한심(怨恨心)을 초래할 수 있는데 탐해서 구하는[貪求] 것을 얻지 못할 때면 곧 원망한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5》〈2018년 워싱턴DC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원망하는 마음은, 바로 그런 좋은 말만 듣기 좋아하고 좋은 일을 좋아하는 데에서 양성되며, 그렇지 않으면 곧 원망한다.”
나는 과거 오랫동안 남편과 늘 말다툼을 벌였고 모순이 끊이지 않았다. 원인은 내심으로 줄곧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데 늘 그는 마땅히 내게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더 인정하며, 더 이해하고, 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는 등이다. 그가 나의 이런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면 곧 불만을 품고 원망한다. 나중에 남편에게 이렇게 탐해서 구하는 것을 제거한 후 불만과 원망도 따라서 사라졌다. 나중에는 관계가 화목해졌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자신이 불만을 품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상대방이 내가 탐하고 구하는 것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임을 발견했다. 가령 남이 마땅히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고 여기면 태도가 좋지 않은 그런 이들에게 불만을 품는다. 사실은 명예와 정(情)을 구하는 마음이 만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또한 나의 아주 큰 집착으로 여전히 끊임없이 제거하는 중에 있다.
탐심은 또 두려운 마음을 이끈다. 마치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속담처럼 무엇을 탐하면 반대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가령 명예를 탐하면 곧 체면을 잃을까 두렵고, 젊은 외모를 탐하면 늙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싼 것을 탐하면 손해 보기를 두려워하며 안일을 탐하면 고통이 두려워진다. 나는 탐(貪)과 두려움(怕)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발견했다.
개인적인 이해로 탐심은 바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수련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구함이 없는[無所求]” 심태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탐심의 뿌리는 사심(私心)이며 탐심이 중할수록 사람 역시 선량해지기 어렵다. 왜냐하면 늘 자신의 득실을 따지면서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각종 구하려는 목적을 품고 와서 공(功)을 배우고 대법(大法)을 배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작은 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