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대법제자
【정견망】
딸이 작년에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무범죄 증명서[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음을 입증하는 서류] 발급 비용을 청구할 수 있었다. 병원 원무과에서 수표를 늦게 부치는 바람에, 딸이 다시 달라고 요청했는데 결과적으로 한꺼번에 두 장의 수표를 받았다. 나는 얼떨결에 먼저 발행된 수표를 딸에게 주고, 나중에 발행한 수표를 폐기했다. 결국 현금으로 바꿀 수 없었을 뿐만아니라, 은행에 벌금까지 물어야 했다. 딸이 병원에 연락해서 수표를 다시 받을까 물어보기에 나는 그만하면 됐으니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자고 했다. 다 내 잘못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많은 폐를 끼칠 수 있겠는가. 또 얼마 안 되는 돈이니, 필요 없다고 했다. 딸도 좋다고 했다.
몇 달 후,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이 되었다. 딸이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수표에 적힌 돈의 행방을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연말이라 결산을 하려면 회계장부가 맞아야 하는데, 분명 수표에 적힌 돈이 맞지 않아 원인을 찾느라 담당직원이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생각해서 한 일이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번거로움과 교란을 초래한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했는데 왜 나쁜 일이 될 수 있는가? 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을까? 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자신의 사유방식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부담을 덜어준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면 상대방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보고 이렇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고 자기 인식과 자기 생각에 집착한 것이다.
나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
‘내가 만약 그 병원 담당자라면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
내가 만약 상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았다면 장부를 적는 문제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알았을 것이다. 이는 상식으로 나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상대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점을 망각한 것이다.
만약 내가 정확하게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문제를 보았다면, 수표를 현금화하지 못했다고 메일로 다시 알려주었어야 한다. 만약 완전히 내 잘못 때문이니 더는 상대방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 돈은 포기하더라도 담당자에게 메일로 돈의 행방을 알려주었어야 한다.
이렇게 했다면 분명 더 좋았을 것이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큰 것에 착안해 생각해 보면 그래도 꽤 의미가 있다. 대법제자로서 우리의 사명은 조사정법(助師正法)이다. 즉 우리의 바람은 사부님의 정법(正法)을 돕는 것이다. 구세력의 참여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역시 사부님의 정법을 돕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양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가? 구세력은 정법의 마(魔)가 되었고,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운 좋은 생명이 되었다. 사실 우리 역시 사부님을 도와 무엇을 한 게 아니고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나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양자의 차이는 바로 우리가 사부님을 도우려고 생각하면서 사부님께서 요구하고 인정하신 방식을 사용해 사부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세력은 자아(自我)의 기점에 서서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좋고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위타(爲他)한 선념(善念)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의 인식에 집착하며 자아의 관념에 집착하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구 우주의 생명으로서 일체 생명의 요소를 포함하여 정법 이 일에서, 나의 선택 중에서, 모든 생명들이 모두 내가 선택한 대로 그것을 원용(圓容)하고, 당신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내놓으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고치려하지 말고 내가 한 말에 따라 그것을 원용하는, 이것이 바로 우주 중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 (박수) 그러나 구세력은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근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자하는 일체의 행위를 그것들이 갖고자 하는 그 일체에 따라 원용했는데, 모두 거꾸로 되었다.”
법을 얻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겨우 사부님 설법에서 약간의 내함(內涵)을 똑똑히 이해했다. 대체 나는 법 공부를 어떻게 한 것인가? 정말 부끄럽다! 법 공부를 잘한 동수들은 분명 일찍이 그 속의 이치를 깨닫고 자신의 사유방식을 바꿨을 것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이 글을 써서 법 공부를 중시해 법으로 착실한 수련을 지도해 가급적 빨리 제고하라고 일깨워주려 한다. 개인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부디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