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銘心)
【정견망】
사부님께서 몇 편의 신경문을 발표하신 후, 사부님께서 단지 특정한 일이나 사람을 지적해 모두를 놀라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매 수련자를 겨냥해 모두 서로 다른 점오(點悟)를 주셨음을 법리적으로 똑똑히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다른 동수들처럼 질투와 원한 등 이런 집착심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더욱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험악을 멀리하라》)
나는 또 대법 수련 형식이나 항목 속의 모순은 사부님께서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도록”배치하신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또 내게 뭔가 일깨워 주시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일시적으로 명확히 깨닫지 못했다. 이에 나는 매일 밤마다 신경문을 한 번씩 읽었다. 오직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내가 마땅히 제고 해야 할 곳을 점화해주실 것임을 알았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나의 문제는 바로 수련표준의 엄숙성을 엄숙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뻔히 알면서도 중시하지 못했고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지만 진정으로 결심하고 행동으로 개선하지 못했다.
가령, 연공할 때 입정(入靜) 해야 하고, 각종 잡념과 교란을 배제해야 함을 알지만, 많은 경우 연공하면서 온갖 잡념이 떠올라 ‘정(靜)’과 ‘정(淨)’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했다. 또 수구(修口)도 있는데 비록 《전법륜》 제8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구 문제를 자신과 대조해 보았지만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느슨히 한 부분이 많음을 발견했다.
또, 한 가지 일을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을 평가하는데 사실 이런 평가는 말하려 주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때로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 상대방이 반응이 없으면 안으로 찾으려 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한번 자극한다. 때로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일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등등이다. 이런 일들은 곧바로 무슨 나쁜 결과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모두 작은 일로 여겨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느슨히 했다.
얼마 전 한동안 눈이 많이 불편했다. 나는 소위 여가 시간(가령 식사할 때)에 속인의 것을 보는 것이 너무 많음을 알았다. 비록 대법제자가 운영하는 사이트라서 그리 나쁜 것은 없었지만, 이런 사이트들은 속인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수련인의 표준에서 보자면 많은 것들은 볼 수 없거나 적어도 시간 낭비다. 비록 눈이 불편했지만 때로는 또 통제를 잃은 것처럼 계속 볼 때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이런 것들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고 나중에 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게 다 뭐람, 너무 심심하군.”
이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당신은 그것을 꼭 먹고 싶다고 하지만, 진정하게 수련하여 그 마음을 마땅히 제거해야 할 때는, 당신은 먹을 수 없고, 당신이 먹어도 원래의 맛이 아니며, 무슨 맛인지 모를 수도 있다.”(《전법륜》 제7강)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줄곧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걸 보시고 이렇게 도와주셨음을 깨달았다. 지금 나는 명혜와 정견을 보는 것 외에 다른 사이트는 관심이 없다. 대기원은 단지 기사 제목만 확인하고 가끔 몇 개씩 클릭해 본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안다. 이번에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주셨지만 수련이란 한 번의 수고도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또 스스로 해내야 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러나 속인 중에서 수련함은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집에서는 늘 고기 요리를 하여,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은 먹어서 맛있음을 다시 느낄 것인데, 이후에 반복하여 나타날 것이며 전반 수련과정 중에 여러 차례 반복하여 나타날 것이다.”(《전법륜》 제7강)
정법의 최후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사부님께선 우리 때문에 조급하시다! 그래서 신경문에서 우리에게 수련의 엄숙성을 거듭 일깨워 주셨다. 나는 절대로 자신을 더 느슨히 하거나 방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절대로 사부님의 자비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가급적 빨리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도록 스스로에게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역사적 사명과 책임을 진정으로 완수할 수 있다. 자신이 많은 항목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잘되리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수들과 함께 사부님 신경문에 담긴 가르침을 다시 복습해 보자.
“대법제자의 수련형식은 비록 느슨하지만, 수련인의 표준은 엄숙하며, 역사적 사명은 엄숙하고도 중대하다.”(《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의 慈悲(츠뻬이)는 거의 무한하나 생명의 구도 여부에 대한 요구, 대법제자에 대한 표준은 지극히 엄숙한 것이다.”(《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