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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깨달음: ‘탈속(脱俗)’

대법제자

【정견망】

아주 매끄러운 물건에는 더러운 것이 달라붙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상이 순정(純淨)한 생명 역시 속인 중의 요소에 오염되기 어려울 것이다.

일찍이 내가 겪은 고뇌와 소위 고통을 생각해 보면 사실 모두 자신의 사상이 불순해서 생명의 본성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더러운 때와 먼지를 씻어내자면 오직 대법(大法)뿐이다. 법(法)으로 가늠하고, 대조하고, 바로잡는 이것이 바로 더러운 때를 청소하는 과정이자 법(法)으로 당신이 사람 속에서 오염된 변이물질을 씻어내는 것이다.

인간 세상은 큰 염색 항아리와 같아서 사람이 오염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렇게 쉽게 오염되는가? 왜냐하면 사람이 중시하는 것은 명리정(名利情 명예 이익 정)인데 다시 말해 표면적인 매끄러움과 허영심의 만족, 명리심의 점유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이란 이 큰 염색 항아리의 주요 원료가 바로 명리정이기에 그것은 다양한 방면에서 침투한다. 때문에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데 다만 오염된 정도가 다를 뿐이다. 대법제자는 사람 속에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데 역시 큰 염색 항아리에서 오염 되지만 대법이 우리 본성의 일면이 매몰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이는 마치 연꽃이 더러운 연못에서 나와도 오염되지 않는 것과 같다.

상상한 욕망에 도달하지 못하고, 명리정의 집착에 직면해 내려놓지 못하면 내심에서도 파동이 일어나는데 이런 파동은 ‘자아’와 ‘사(私)’라는 변이 요소에서 내원한다. 나는 자신에게 묻곤 한다.

“너는 상상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끼면 왜 모종의 실망감을 느끼며 평소의 기분과 다른가?”

지나간 장면을 다시 재생해 법으로 어떤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대조해 보면 그런 실망감은 바로 일종의 구하는 마음임을 발견한다. 사람 속에서 인정받길 추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길 추구하며(잠재의식에서 아들의 표현이 좋으면 자신을 실증했다고 느낀다) 상상한 목표를 만족시키려 한다. 그러나 사실이 상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면, 마음의 용량을 제때 확대하지 않고,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조차 정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데 상실감과 마음의 공허함이 표현되어 나온다. 그것은 마치 그 물건이 저기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잡으려 하지만 오히려 잡지 못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상태는 점유욕, 쟁투심, 명예심과 또 자식에 대해 내려놓지 못하는 정 등 많은 마음을 폭로한다. 특히 자식에 대한 정이란 이 마음이 아주 오랫동안 나를 교란했다. 아들에 대해 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지금 보면 이 마음은 변이되고 왜곡된 것이다. 사실 우리 아이는 성격이 매우 활발하고 활동적이며 말도 잘하고 하는 말도 논리적이다. 나보다 대인 관계가 더 좋고, 문제를 보는 것도 아주 똑똑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속으로 늘 아이를 근심하고 아이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받을까 두려워한다. 이 마음은 지금도 ​​아주 강렬한데 사실 이 마음은 모두 속인의 한계선을 넘은 것이다. 대법제자 주변의 아이들은 대법과 큰 연분이 있어서 우리 곁에 온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신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변이된 물질이 이렇게 많고 자기 공간장(空間場) 안에 그렇게 많은 패물(敗物)이 있으면 어떻게 주위 환경을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아들의 상태는 상대적으로 두려운 마음이 많고 담이 작은 것으로 나타난다. 친척과 친구들이 모일 때마다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가 나타나 사람과 접촉하기를 꺼려한다. 이는 구직 활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보다 좋은 직장를 찾기 위해 면접하러 갈 때마다 너무 긴장해서 결과도 좋지 않고 기회를 많이 놓쳤다. 그 결과 아들은 면접에 대해 자신감이 떨어져서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스스로 끊임없이 조정했지만 이런 두려운 심태를 도저히 극복하지 못했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장사를 하고 싶어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아들은 장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면접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또 시간을 낭비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스로 창업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면 겉으로 보면 속인 상태와 부합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은 “상유심생”이란 이 한 층의 뜻을 모르는데, 실은 바로 자신의 요소가 자신의 환경을 바꾼다는 것이다.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라는, 이러한 말을 나는 이미 특별히 명백하고 특별히 똑똑하게 말했으나 (웃음) 이 일을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대법제자가 한 일을 포함해서 모두 이런 정황이다.”[1]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해 자신의 부족을 보니, 진정으로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았고 표면의 가상만 믿고 그것에 이끌려 밖으로 보면서 아이를 개변(改變)시키려고만 하고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마도(魔道)를 걸어간 것이 아닌가? 아이의 이런 까닭 모를 두려움은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변이된 배치가 아닌가? 내가 진정으로 법의 기점에 서지 않았고 정념이 충족해서 구세력의 변이된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걷지 못했고 자신을 잘 닦지 못했으며 밖으로 보고 밖으로 찾았던 것이다.

때문에 아이의 두려움이 갈수록 더 강렬해졌고 이미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데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었다. 이런 교란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사상에서 그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진정한 내가 아니니 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마치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몸이 아주 가뿐해졌고 사상에도 잡념이 없었으며, 정말로 “집착을 내려놓으면 가벼워진 배 빠를 것이요”[2]를 체험했다.

사실, 아이의 이런 근거 없는 두려움은 구세력이 한 짓으로 우리는 승인할 수 없다. 사악은 대법을 20년 이상 박해해 왔는데 이 기간에 아들은 늘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놀랍고 두려운 일들이 많았다. 사악의 탄압 때문에 우리는 살 곳이 없었고 때로는 1년에 몇 차례나 이사 다녀야 했다.

한 번은 사악한 경찰이 찾아와 오랫동안 문을 두드렸다. 우리가 집안에서 문을 열지 않자 이웃들에게 우리가 언제 돌아오는지 감시하라고 했다. 당시 아들은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경찰이 또 찾아올까 두려워 간단한 짐과 책가방만 챙겨서 아들을 찾으러 학교에 갔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는 이상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경찰이 찾아왔고 사람을 파견해 감시하게 해서 더는 그 집에 살 수 없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아이는 큰 충격을 받았고 떠나고 싶지 않았으며 집에 돌아가겠다고 우겼다. 우리가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 주고 나서야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우리 결정에 동의했다. 우리는 당시 아이의 감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들의 마음에 충격을 받아 두려움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무려 20년 이상 사악의 탄압을 받으면서 이런 두려운 장면은 대법제자라면 모두 서로 다른 정도로 경험했을 것이다. 아이가 까닭 없이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구세력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요만한 변이물질을 형성해 대법제자들이 법을 더 잘 실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지금 나는 대법제자는 마땅히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교란 요소를 감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이란 가상은 또 아들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아들 역시 대법제자로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 그렇다면 구세력은 대법제자에게 한 모든 일에 대해 감당해야 한다. 우주는 하늘의 이치로 가늠하는데 누가 했다면 누가 감당해야 한다. 대법제자의 길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으로 법(法)으로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지 구세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어떤 생명도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다.

법리(法理)를 똑똑히 알고 나면 혜안(慧眼)이 생기고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우리는 사악을 해체하고 교란하는 쓰레기를 제거하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변이된 배치를 부정할 능력이 있다. 가상을 간파해 구세력의 변이된 배치를 해체하고 일체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따라 걷는 이것만이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는 것이다. 이어서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따라오는데 왜냐하면 배후 사악의 요소가 해체되면 사람 이곳의 가상도 따라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에포크타임스회의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심자명》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