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주지하다시피 수련인이라면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는 경사경법(敬師敬法)은 천경지의(天經地義)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경사경법은 일종의 구두선(口頭禪 역주: 선종 수련에서 입으로는 수행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는 것을 의미)이 되었다. 입만 열면 경사경법을 말하지만 오늘 대법제자들의 말과 행동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우리는 은사(恩師)님께 어느 정도로 공경했는가?’
아울러 별생각 없이 하는 불경, 노골적으로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는 언행도 있는데 아주 다양하다. 나 자신 25년간 수련을 통해 살펴보니 역시 사부님을 공경하지 않은 언행이 아주 많았다. 이 문장을 쓰는 것은 또한 자신을 위하는 동시에 아직까지도 경사경법하지 못한 언행이 있는 동수들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1. 불경한 행동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대법 서적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 보서(寶書)를 일반 책으로 여겼다. 대법 서적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나는 집에서 가장 깨끗한 곳에 두지 않았다. 때로는 아무렇게나 놓아두었고, 가끔 식탁 위에 올려두기도 했는데, 더러운 손으로 들고 다녀 첫 번째 책이 엄청 더러워 졌다. 박해 후 나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대법 서적을 침대 밑 서랍에 숨겼고, 때로는 벽장 속에 넣어두기도 했다. 때로는 대법 서적이 들어 있는 가방을 팔에 끼기도 했다. 행동에서 경사경법(敬師敬法)하지 못했다.
나는 또 일부 동수들이 대법 서적을 베개 밑에 놓거나 경문을 함부로 놓아두는 것을 보았는데, 동수들이 불결한 곳 아무데나 대법 경문과 대법 서적을 놓아둔 것을 보았다.
법을 읽을 때 처음에는 앉은 자세 역시 단정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책을 받들고 결가부좌를 하고 법을 읽지 않았다. 법을 공부하는 동안 가끔 물을 마시는 등의 행동을 했다(특히 집에서 법 공부할 때). 나는 아직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읽고 또 누락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또 마음이 완전히 조용해져서 잡념이 전혀 없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때때로 딴 데 정신을 파는데 이 역시 엄중하게 경사경법하지 못한 행동이다.
사람을 구할 때 순조롭게 진행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좋으면 희희낙락해서 동수들 사이에 자신을 과시하며 하늘의 공을 탐내는 마음이 나온다. 때문에 나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 여러 차례 사악의 교란을 받았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그 후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상을 알릴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차별 없이 하지 못했다. 흔히 두려움 때문에 사람을 골라 진상을 알리다 보니 인연 있는 많은 이들을 누락시켰다.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스럽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 것 이것 역시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행동이다.
2. 불경한 말
20여 년 수련하면서 나는 줄곧 수구(修口)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당 문화가 심각해서 늘 자신의 관점을 남에게 강요했다. 사부님 말씀을 이용할 때 사부님 말씀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종종 망각했다. 무의식중에 듣는 이로 하여금 사부님 말씀을 내 말로 착각하게 했다. 이는 심각하게 불경한 행동이자 또한 변칙적으로 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 사부님께서 나를 자비로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나의 이런 언행으로 이미 진작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린다.
말하는 과정에서 나는 때로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데, 속인 중에서 속인의 뜻에 따르지 않고 때로 너무 높이 말해 속인이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가 큰소리만 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사부님께 좋지 않은 견해를 갖게 했다. 이 또한 사부님과 법에 대해 불경한 말이다.
때로는 한 말이 대법 표준을 엄격히 따르지 못해, 내용을 보태거나 과장하는데 이는 사당(邪黨)의 거짓말, 큰소리, 헛소리와 일치한다. 때로는 사람의 체면 때문에 예스맨이 되기도 한다. 전혀 수련인이 하는 말 같지 않다. 이것 또한 심각하게 경사경법하지 못한 불경한 말이다.
결론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이런 각종 언행은 모두 경사경법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실 이 외에도 아주 많고 아주 많지만 일일이 말하지 않겠다. 나는 자신이 과거의 일반 수련인만도 못함을 느끼는데, 과거에 그런 출가인들은 사부님의 말씀을 정말로 확고하게 믿었다. 마치 밀라레빠가 사부님께 한 말처럼 그는 종래로 옳고 그름을 따진 적이 없고 오직 사부님이 시키는 대로 조금의 에누리도 없이 했다. 역사상 어느 한 문파를 막론하고 진수(真修) 제자는 모두 자신들의 사부를 대단히 공경했다.
대법제자들이여, 오늘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많고 가장 좋은 것들을 주셨지만 우리는 사부님을 어떻게 대했는가? 심지어 우리 제자들마저 사부님께 마땅히 했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변 동수들을 보면 어떤 이들은 마난이 닥쳤을 때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한다. 행동에서 완전히 신(神)의 행위로 처리하지 못하고 수련인의 공력(功力) 즉 신통(神通)을 사용해 마난을 대하지 못한다. 아울러 사부님께 원한심(怨恨心)을 내는데 사부님께서 자신을 관할하지 않으신다고 잘못 이해해 자신을 마난에 빠지게 한다. 이는 더욱 엄중하게 경사경법하지 못한 행동이다.
또 어떤 동수들은 지금까지 20년 넘게 수련하면서도 명절에 사부님께 축하 카드를 보내거나 문안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 고인은 “하루를 스승으로 모셨어도 평생 아버지처럼 모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년 명절이면 우리 아버님께 문안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눈물이 나왔다! 정말로 통곡했다! 우리의 행동은 자비하신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다!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부님과 법에 불경한 언행이 있고 너무 많아서 사부님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 구세력의 응징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법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사람이 그에 대해 조금만 불경해도 모두 위험하다.”(《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마땅히 신에게 진심으로 참회해야 하는바, 자신의 어디가 나쁜지, 잘못을 고칠 기회를 주기를 희망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방법이며, 이것이야말로 영단묘약(靈丹妙藥)이다.”(《이성》)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정진요지 3》〈청성〉)
사부님의 설법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의 말과 행동은 아주 위험한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몹시 운이 좋은데 지금 자신에게 존재하는 허물을 깨달았다. 나는 일언일행(一言一行)에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으로 실천할 것이다.
“법에 없는 말은 하지 않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 사람 생각, 사람 마음, 사람의 정을 부정하고 대법의 법리에 따라 에누리 없이 실천할 것이다.”
내 생각에 이렇게 하면 반드시 현재의 곤경에서 벗어나 한 갈래 광명한 길을 찾아 최후에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니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1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