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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 잡다

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1.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찾고 가족에 대한 집착을 닦아버리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자신이 자아(自我)에 집착하는 마음이 아주 강함에도 스스로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많은 일에서 나타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가족의 일을 배치하길 좋아한다는 것이다. 가족(동수)이 한 일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면 몇 마디 말을 하는데, 종종 일이 내 바람과 반대로 되거나 심지어 더 악화되었다. 이때 나는 여전히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이럴까? 하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 몹시 억울했다.

완전히 밖으로 찾았는데 모순이 아주 첨예해진 후에야 비로소 안으로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의 수련을 엄숙하게 대했고, 수련인으로서 보다 높은 표준으로 요구했다. 나는 왜 이런 일들을 자주 만나고 아울러 또 늘 만나는가? 수련에 우연한 일이란 발생하지 않으며 반드시 당신의 심성과 관련이 있다.

나의 말투는 특히 가족에게 말할 때 불평하는 말투, 훈계하는 말투, 거만한 태도였고,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겼는데 즉 자신이 잘했고 옳게 깨달았고 여겼다. 결국 가정관(家庭關)의 시달림 속에서 아주 오랜 시간 벗어나지 못했다. 시달림을 겪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안으로 찾기 시작하는데 최후에는 평온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가족(동수)의 몸에 많은 장점이 있고 많은 방면에서 나보다 더 잘 수련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알려주셨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業)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나는 마침내 가족에 대한 정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또 가족 동수의 길을 배치하려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누가 그의 일생을 안배하는가? 아주 분명한데, 바로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이런 일을 한다.”

이는 내가 자아에 너무 집착한 것으로 얼마나 오만하고 두려운 일인가! 나는 이미 위험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사부님께서는 가족(동수)을 통해 나를 점오해 주셨지만, 나는 자아에 장애되어 사부님께서 내게 배치하신 매 차례 심성 제고의 기회를 놓쳤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주셨다.

“왜냐하면 그 업력이 거기에 있어서 그가 당신을 도와 제거하려 한 것인데,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고 그와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없애버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업력이 누구에게로 떨어지면 바로 누가 괴롭기 때문인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여러 차례 심성 단련을 겪은 후 내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고, 다시 문제나 모순이 생기면 나는 이것은 내가 마땅히 심성을 제고할 때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런 일을 만났는가? 분명 내 공간장(空間場) 범위 내에 이런 나쁜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에서 나는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고 자비롭게 대하며 자신의 심성을 제고할 수 있는가? 이렇게 하는 것만이 수련인이 마땅히 할 일이다.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길 때면 또 어떤 일이나 모순이 닥쳤을 때 마음이 더 이상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으며 내심에 감사로 가득 참을 느낀다.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에 감사드리고 자비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선 저처럼 어리석은 제자를 위해 노심초사하셨습니다.

나는 또한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당신이 아마 문을 나서면 내가 말한 구체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이 정말로 문제와 마주쳤을 때 당신은 내가 한 말이 생각날 것이다. 당신이 오로지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은 그 한순간에 생각날 수 있으며, 당신은 곧 자신을 단속할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이 관(關)을 넘을 수 있다.”

이때야 나는 집착을 내려놓은 후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전법륜》)에 활연히 밝아졌다. 나는 또 수련의 수승(殊勝)함과 관(關)을 넘긴 후의 아름다움을 점점 더 느낄 수 있게 되었다.

2. “급히 공을 이루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위해 책임지다

오랫동안 나는 대법 항목을 더 많이 하려고 했으나 매일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급해져서 마음의 평형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웅할자(熊瞎子)가 옥수수를 따는”(《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설법〉) 법리가 생각났다.

나는 자신에게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빨리 성공하려는 마음,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또 깊이 파보니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는 모두 사람 마음의 망념(妄念)으로, 이는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중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많은 동수들이 다년간 한 항목을 견지해 왔고 그것도 아주 착실히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고하고 수련해야 할 점이다. 나는 다시 자신을 살펴보았는데 오직 착실하고 착실하게 마땅히 해야 할 3가지 일을 잘해야만 구함이 없어도 저절로 얻을 수 있다.

3. 경문 《청성》에 대한 깨달음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청성〉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

진상 전화를 걸다 보면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때로는 진상을 듣고 싶어도 내가 한 말이 그의 마음에 맞지 않아 상대방이 도중에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내가 일을 잘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임을 나는 발견했다.

만약 그날 법 공부를 잘하지 않고 내가 심성에서 잘 수련하지 못했다면 내 마음이 불안해서 전화를 걸 때 말투가 불안하고 거칠어진다. 이런 바르지 못한 장(場)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어 상대방이 진상 듣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반대로 내 심태가 아주 순정할 때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즉 그가 아직 미래를 선택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럼 나는 자신의 선념(善念)을 느낄 수 있고 말투도 차분하고 평온해서 사상 속에 아무런 잡념도 없다. 이때 진상을 알리는 사로(思路)도 아주 유창해지고 상대방도 조용히 듣는다. 그가 아무리 오랫동안 들어도, 그가 들으려고만 하면 그의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다. 즉 그가 구원받을 한 가닥 희망이 보일 것이다.

물론 전화를 받지 않는 많은 중생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매번 이럴 때마다 안으로 자신을 찾아본다. 내 마음이 조용해졌는가? 나는 진상 전화를 완수해야 할 과제로 여긴 건 아닌가? 나는 자신에 대해 책임졌는가? 진상을 듣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생들에 대해 책임졌는가? 오늘 내가 부딪힌 매 하나의 작은 일에서 나는 늘 자신을 수련했는가? 정말로 자신의 사상이 순정해질 때면 그럼 받는 전화도 더 많아진다.

진상 전화를 거는 과정은 또한 자신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매번 플랫폼에서 매일 전화 통화를 견지하는 동수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차이를 느낀다. 나는 단지 플랫폼에서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알릴 뿐이지만 대륙 동수들은 날마다 목숨을 걸고 나가 진상을 알린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매번 눈물이 그치지 않고,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하고 진상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없다.

이상은 내가 지난 1년간 수련하면서 겪은 일들이다. 혹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