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설(雨雪)
【정견망】
이것은 7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일찍 쓰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오늘 나는 용기를 내어 그것을 써서 동수들과 서로 거울로 삼고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자 한다.
7년 전 봄, 고등학생인 딸이 갑자기 정신적인 장애가 생겼다. 나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았으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사부님의 설법 강의 녹음을 들려주지 않았고, 그저 딸에게 ‘9자진언(九字真言)’만 마음속으로 외우게 했다.
한참 지나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진짜 못 견딜 것 같아요. 병원 정신과 의사한테 데려가줘요.”
나는 이것이 작은 문제일 거라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으면 좋아질 거라 여겼다. 그 주 주말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신청했다. 그날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5월 20일인데 이날부터 딸의 정신적인 문제가 무서운 속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움에 나는 딸에 대한 정(情)에 이끌려 너무 마음이 상했지만 전혀 안으로 찾지 못했다. 허둥지둥하며 속인 병원을 찾아갔지만 요즘 의사들은 모두 돈벌이만 위할 뿐이며, 특히 정신과 상담은 비용이 많이 들고 병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날, 나는 거의 매일 눈물로 지새웠다. 학교로 가는 딸의 발걸음이 무거운 만큼 내 마음은 절망적이었다. 하필이면 이때쯤 남편은 나와 함께 아픈 딸을 돌보지 않았고 무너져 가는 나와 딸에게 이 모든 것은 가상이라면서, 이 모든 것이 내가 평소에 딸을 응석받이로 키운 탓이라며 집에서 더욱 화를 내며 위세를 부렸다.
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딸을 달래는 한편 남편이 난리칠 까 걱정이 되어 마음이 극도로 초조하고 우울해져서 살이 쭉 빠졌다. 사존의 《홍음》〈마음고생〉 에서 말씀하신 대로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였다.
이때, 부모님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다. 평소 나와 딸을 돌보러 우리 집에 오셨는데 이때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딸이 이런 꼴이 된 것은 어쩌면 어떤 ‘더러운 것’에 놀란 것일 수도 있으니 “혼을 부르는(喊魂)” 방법으로 효과가 있는지 해보자고 하셨다.
당시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고 사부님이 계시는 수련자임을 까맣게 잊었다. 나는 어머니 말에 따라 딸이 야간 자율 학습을 하러 가면, 딸이 자주 입는 옷을 들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쌀과 찻잎을 뿌렸고 모친이 “소설(小雪 딸의 아명)아 두려워 마라. 소설아 집으로 돌아와라” 라고 외치면 나도 따라서 외쳤다. 밖에서 내내 외치다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소리를 질렀더니, 무섭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 밤, 나는 딸과 같은 방에서 자는데 새벽 두세 시, 딸이 갑자기 반듯이 누운 채 눈을 감고 두 손을 허공으로 계속 잡아당겼다. 마치 무엇과 서로 치고박는 것 같았다. 입으로 중얼중얼했는데 사람의 말이 아니었다. 나는 깜짝 놀라 딸을 껴안고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은 눈을 뜨고 검지를 입 앞으로 세우고 “쉿, 자”라고 말하고는 옆으로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즉시 가슴이 찢어지는 듯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가 이렇게 소리친 것이 다른 공간의 좋지 않은 영체(靈體)를 집으로 불러들여 딸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다음날 부모님이 오셔서 우리는 이 집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의논하고 나와 딸은 학교에서 좀 떨어진 다른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간 집에서는 딸의 증상이 처음에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아이 아버지가 다시 그곳으로 쫓아와 화를 내기도 했고 딸의 증상은 곧 다시 악화되었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자 나는 ‘위챗’을 통해 최면술사를 찾았다.(당시에는 위챗을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가 없었다) 나의 절친이 딸과 함께 최면을 걸기 위해 그 도시에 갔다. 그 최면술사는 내 딸에게 최면을 걸어준 뒤 내가 이 일과 인연이 있는 것 같다며 나에게도 최면을 걸 것을 강력히 권했다. 나도 그때 ‘불이법문(不二法門)’이란 문제를 생각했지만, 최면이 여기에 해당되는지 몰랐다.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데, 절친이 갑자기 내가 최면을 받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친구의 입을 통해 나를 막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집에 돌아온 후, 딸은 하루 종일 괴로워하며 울었다. 나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우리 모녀를 친정으로 데려갔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래도 친정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감히 친정에서 딸을 욕하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나에게 소설을 구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우리 동네 산중에 득도한 노스님이 있으니 가보자고 해서 허락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을 잡았는데, 산속의 스님이 아닌 어느 할머니(무당이라는 뜻의 우리 지역 사투리. 사실 저령부체)라고 했다. 다음날 가야 하기 때문에 밤에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소개한 사람을 찾아가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것에 무릎 꿇고 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고, 이번 생에서 사부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 생각이 나와 딸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가셨고, 다녀와서 며칠 동안 딸을 데리고 절에 가서 지내자고 하며, 소설은 출가해서 여승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구세력은 한마음으로 나와 딸을 망치려 했다. 나는 단호히 반대했고 어머니께 이치를 말씀드리자 비로소 그만두셨다.
이때까지도 나는 소도(小道)소법(小法)으로 딸을 구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고, 위챗을 통해 소위 영통(靈通)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예외 없이, 내가 가서 법사(法事)를 하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이 생각을 지켰다. 결국 모두 흐지부지 끝났다. 딸의 병세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마음을 굳게 먹고 학업은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서 딸을 기다리다가 내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갑자기 불이법문이 떠올랐다. 딸의 일이 생기기 전에 윤회 이야기와 인과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검색하다가 어느 절의 공식 블로그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보고 팔로우를 하고 매일 업데이트도 하고 불교의 홈페이지와 블로그도 보면서 즐겼다.
딸에게 일이 생긴 후, 나는 또 수련자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의 금기를 무시하고 일부 소도 소법을 찾아갔으니, 하마터면 딸을 해칠 뻔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수련의 길을 끊을 뻔했다. 그 안의 험악함을 돌이켜보면, 구세력이 설치한 판은 모두 사람을 망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을 깨달은 후 재빨리 그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삭제하고, 매일 발정념하여 나와 딸에 대해 박해하는 사악을 해체하고 나서야 딸의 상태는 호전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많은 곡절이 있었다. 가끔 딸은 나와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도 여러 번 딸을 점화해 주셨지만, 안타깝게도 딸은 대법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수련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딸이 명문대에 진학했고, 학교에서도 반복이 있었지만 나를 겨냥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변한 후에, 그녀는 나아졌다.
딸의 일로 나는 명혜망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비슷한 체험이 있었다. 일부 동수는 이런 일을 당한 후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잊어버리고, 자식 정을 움직여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저령부체(低靈附體)에게 무릎 꿇고 절을 해서 화를 자초했다. 그래서 아이를 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저령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저령에게 빙의되었다. 다행히 사부님의 자비로 동수는 후에 저령의 통제에서 벗어났지만 손실이 얼마나 컸는가. 이것을 보고 나는 매우 두려웠다. 만약 그때 “사부님 외에는 절대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라는 그 생각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 동수처럼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이 조그만 곳에서 대법제자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면, 이것은 대법에게 어떤 손실을 가져왔겠는가?
왜 이렇게 오랫 시간이 지나서 이 일을 다시 쓰는가? 최근 우리 집의 온수기가 갑자기 물이 새서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니 내가 또 ‘불이법문’을 위반한 단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홈에 ‘네 가지 좋은 여자 관상’ ‘이런 관상이 있는 사람은 사귀면 안 된다’ ‘만년에 행복한 여자 관상’ ‘부귀한 관상’ ‘옛날 사람들이 간사한 소인배 관상에 대한 총결산’ 등의 글이 자주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관상을 보고 내가 복받은 관상인지, 내 주변에 소인배 관상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때로는 ‘동태망’의 첫 화면에서도 이런 글을 볼 수 있어서 스스로 재미 삼아 열어보았다. 이것을 인식한 후, 집의 온수기는 물이 새지 않게 되었다.
수련에서 ‘불이법문’을 위반하거나 ‘자심생마(自心生魔)’ 하는 것은 사람을 직접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잘 지나가지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지만 ‘불이법문’을 위반하는 것은 당신의 수련 기제를 모두 파괴되는 것과 같다. ‘자심생마’를 범하는 것은 심지어 사부님께도 복종하지 않을 정도로 미쳐버린 것과 같다. 사부님의 자비가 없었다면 더는 수련의 기연(機緣)이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수련 중에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사존께 아주 자그마한 원한(怨恨)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통 속에서 사존께 부탁했지만, 사존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반드시 하시겠지만, 사존께서 하지 않으신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육안범태(肉眼凡胎)를 가진 우리가 어떻게 배후의 인과와 원인을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부딪친 마난은 수련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원래 감당해야 할 마난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고, 보다 많은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해 주신 것이다. 수련이 아니었다면 마난이 훨씬 더 커서 나로서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임을 직접 체험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전법륜》 한 구절을 인용해 여러분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되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