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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여김’의 배후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나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다 공경(恭敬)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아주 중요함을 깨달았는데 다시 말해 성심(誠心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문장을 읽을 때 ‘성심성의(誠心誠意)’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보았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격려임을 느낀다.

이 점을 깨닫고 난 후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자신의 심태가 더욱 존중하게 된 것을 발견했다. 또한 과거에 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배후는 바로 공경과 성의가 부족한 것으로 사실 오만임을 깨달았다.

지금 과거 나의 ‘대수롭지 않게 여김’을 폭로한다. 내 생각에 이 ‘대수롭지 않게 여김’에는 약간의 미혹성이 있는데 과거에 나는 그것의 배후가 사실 오만임을 똑똑히 몰랐다.

“배독(拜讀 공경하게 책을 읽는 것)”

과거에 동수들이 큰 모임에서 교류 문장을 읽는 것을 들을 때 나는 내심으로 각종 생각이 있었다. 어떤 글은 도움이 된다고 느꼈지만 어떤 글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거나 심지어 “좀 무시”했다. 어떤 글은 너무 장황하고, 어떤 글은 억지스럽고, 어떤 글은 잘난 척하는 것 같았다. 전에 나는 이것이 이들 다양한 문장에 대한 자신의 객관적인 견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견해들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오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편견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을 진정하게 존중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심이 겸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늘 공경하고 성의가 있는 사람은 함부로 이런 심태로 남을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에 공자가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말하는 이런 심태는 아주 공경한 마음과 겸손에서 내원한 것이다.

최근 동수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장황하다고 느꼈던 내용을 진지하게 다시 보니 나를 계발해주는 부분이 많았다. 또 전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글도 나중에 진심으로 이해해 보니 그 속의 ‘오묘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안에 동수가 깨달은 정화(精華)가 담겨 있을 것이다. 전에는 모두 아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들도 다시 읽어보니 그 속에 담긴 도리는 내가 아는 것처럼 보여도 진정으로 안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는 고인이 쓰던 ‘배독(拜讀 직역하면 절을 하는 것처럼 공경한 자세로 읽는다는 의미)’이란 단어를 떠올렸는데 글을 읽는 심태가 대단히 중요하며 심태가 정말로 ‘공경(拜)’해야만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의 배후는 바로 공경과 존중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런 것이 아니다. 먼저, 마음속으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심득을 나눈 동수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한다. 감사와 소중히 여김을 알아야지만 서로 다른 문장 속의 정화를 깨달을 수 있다.

함부로 평가하는 배후

한 동수는 수시로 단체 메시지를 보내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느 날 어디에 가니 제때 답장을 보내지 못할 수 있다고 알린다. 나는 전에 그녀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당신의 빠른 답변을 기대하지 않으니 이런 건 굳이 알릴 필요가 없으며 그녀가 불필요한 행동을 한다고 여겼다. 나중에 나는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역시 공경심이 부족한 것으로 경솔히 남을 부정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관념으로 함부로 남을 평가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다양한 방식을 충분히 존중했을 것이다. 서방 사람들이 중국 사람보다 타인을 더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행동 방식에 대해 더 관대하고 더 이해해 주며 쉽게 부정하지 않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안하무인’이란 단어는 사람이 오만방자해서 남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경솔히 판단한다는 뜻이다. 또 생각해 보니 사실 오만하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물건을 함부로 대한다. 한 동수의 글을 보니 수련인은 물건에 대해서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함을 알 수 있는데 물건도 당신의 존중이 부족함을 알며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주고 자신을 중시하는 수련인을 좋아한다.

최근 나는 또 사부님께선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셨을까? 생각해보았다. 각지 설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동수가 제출한 방법에 원칙적인 문제만 없다면 사부님께서는 늘 격려하고 지지하며 몹시 존중해 주셨다. 나는 존중이란 이 단어를 생각할 때 큰 감동을 느끼는데, 사부님께서는 당연히 제자들의 방법에서 부족한 점과 불완전한 점을 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존중해 주셨다. 비유를 들자면 마치 자상한 부모님이 어린아이의 부족한 점을 알면서도 늘 존중하고 격려해 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는 것과는 다르다.

내 생각에 내가 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면 마치 내가 그들의 문제를 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심성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자신의 많은 문제들이 당 문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데 당 문화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자신을 높이 치켜올리고 남을 공격하는 등등이다. 사람의 사상과 행동이 아주 더럽고 수준이 아주 낮은데 마치 쓰레기와 같아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존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결론

고대 이야기와 결합해 생각해 보면 오만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노파’의 ‘미친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말 배후에 ‘천기(天機)’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미친 노파나 거지 등을 통해 ‘하늘의 뜻’을 전하려 할 수 있는데 사실은 선별하는 것으로 겸손한 사람을 선별하고 오만한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아주 영험하다.

오직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심태가 있기만 하면 오만이 아주 심한 것으로 겸손한 상태와는 그래도 차이가 있다.

작은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