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薛)
【정견망】
사람 이곳에서는 흔히 개인의 역할을 중시한다. 가령 축구나 농구에서 누가 가장 많은 골을 넣는지가 중요하며, 묵묵히 패스하는 선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을 패스하려 하지 않고 공을 잡으면 스스로 전진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명리심(名利心)인바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흔히 공덕심(功德心)으로 나타난다. 이 방면에서 누가 큰 역할을 했고 누가 가장 대단하게 보이는가? 사실 이는 바로 수련인이 마땅히 제거해야 할 공덕심이다.
사부님께서는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모두들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조건 없이 묵묵히 보완해주어 그것이 더욱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들은 모두 이렇게 문제를 처리한다.”
대법제자는 바로 사존의 말씀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 어떤 항목이든 모두 마땅히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지 누가 하는가 보지 않는다. 부족함이 있다면 우리가 마땅히 가서 그를 원용(圓容)해야 한다. 사람 여기서는 사실 서로 무너뜨리길 좋아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과 신(神)의 구별이 아니겠는가?
내 기억에 아주 오래 전 어떤 동수가 내가 쓴 글을 가져가서는 좀 수정한 후 자기 이름으로 서명해서 발표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표절이라 생각했고 며칠 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사실 나중에 다시 보니 상대방이 수정한 후 원래 표현하고자 했던 함의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의 이름을 서명해도 다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노제자(老弟子)이니 마땅히 동수에게 더 관대해야 하며, 누가 서명하든 그리 중요하지 않고 오직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만 있으면 된다.
일부 동수들은 확실히 일을 할 때 사람 마음이 있어서 더 잘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마땅히 더 관대하고 자비롭게 문제를 보아야 한다. 이는 또한 동수에게 한 차례 제고할 과정과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동수에 대해 좀 더 관대하고 비난을 좀 줄이는 것이야말로 대법제자들이 정체를 형성하기 위한 전제다.
개인의 작은 체험으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