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받은 모든 대법제자들은 다 영웅이다
위룡관(威龍官)
【정견망】
나는 운 좋게 대법이 처음 전파된 1992년 정월 초파일에 태어났고, 얼굴도 부처님상이었다. 영아기 때 내 눈썹 사이에 붉은 점이 생겼는데 어쩌면 나는 법을 얻기 위해 태어났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매우 선량하셨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동정해서 당신이 돈이 없어도 남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빌려준 적이 있다. 결국 채무자가 도망가자 채권자는 어머니에게 빚을 받으러 왔다. 어머니는 사기꾼의 말을 믿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당시 대법이 막 박해를 받았는데, 감옥에 수감된 어머니가 그곳에 수감된 대법제자를 알게 되었고, 대법이 순수하고 바르며 지극히 선량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어머니가 내심으로 꼭 필요로 하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시작했다. 아마 사부님께서 이런 식으로 법을 얻도록 배치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는 중공의 거짓말에 독해되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자살하고 살인했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파룬궁 연마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온 가족이 울면서 엄마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녀가 감금에서 풀려났을 때 나는 심지어 《전법륜》을 갖고 도망가서 버렸다. 물론 지금은 대법 진상을 알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중공의 거짓말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다.
지금 국내 환경은 그때보다 훨씬 좋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천안문 분신 자살 사건을 잊어버렸다. 통신이 발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기 위해 해외로 나왔기 때문에 일부 중국인들은 이제 대법을 혐오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납치되어 박해 받은 동수는 말할 것도 없고, 나처럼 감옥에 가지 않은 연약한 아이도, 다른 사람들이 내가 대법제자인 것을 알면 마치 유령처럼 대하며 차별했다.
어머니는 마음이 선량해서 나와 함께 우리 반에 와서 대법 진상을 알렸다. 우리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잔인하기로 동네에서 잘 알려져 있는데, 학생들의 뺨을 때리고, 쇠막대기로 손을 때리거나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학생들의 바지를 벗기고 구타하는 일도 일어났다. 어머니가 진상을 알린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떠났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모든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한번은 교실 뒤쪽으로 끌려가서 벽을 바라보고 서 있도록 강요받았다.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나를 모욕했다.
“네가 이렇게 하고도 천국에 가고 싶다면 설령 천국에 가도 너를 쳐 내릴 것이다.”
한번은 한 선배가 나더러 대법제자들이 부착한 진상 스티커를 철거하라고 강요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때리려 했다. 여자들은 그래도 좀 나아서 때리는 사람이 없지만 우리 남자들은 정말로 심하게 얻어맞았다. 이런 종류의 정신적 압박을 외부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일부 어른들이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느냐고 거칠게 물으면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생각이 바뀌었고, 나는 영웅이며 자신이 영광스럽다고 느낀다.
비록 대법이 국내에서는 오해와 차별을 받지만, 온 세상은 대법이 선하고 대법 수련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렸을 때 나는 집집마다 전단지를 나눠주고, 한밤중에 대법이 좋다는 깃발을 나무에 걸며 끈질기게 대법 수련을 견지했다. 나는 대단한 영웅이며 자신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처음에 나는 대법을 적대시하는 중공의 거짓말을 믿었지만 아이들은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나를 조금씩 대법 수련으로 인도하셨다. 나는 어렸을 때 눈을 깜박이는 버릇이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순간 눈 깜박임이 멈췄다. 정말로 신기했다. 대법의 기적은 아주 많은데 가령 닭 몇 마리가 일렬로 서서 스승님의 강의 녹음을 듣는 등이다. 또 26가지 큰 병을 앓던 한 아주머니는 자기 말로 머리카락과 손톱만 건강하다고 했다. 단백뇨가 나와서 소변이 달걀흰자 같았고 배변이 막혀서 일주일간 똥도 못 싸고 참느라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파룬궁 연마를 시작한 날 사다리가 하늘에 닿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부터 그녀의 배변은 순조로워졌고 모든 질병이 치료되었다. 이 밖에도 대법을 수련하고 병이 나은 사람들의 예는 많지만 모두 나열하진 않겠다.
이웃집 동수 아들의 두통이 낫지 않자 어머니가 그를 데리고 다른 동수 집에 가서 법을 공부하자 즉시 좋아졌다. 또 법 공부를 마치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어른들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뭔가가 돌고 있어요?”라고 했다. 어른은 그가 파룬(法輪)을 본 것임을 알았다. 그는 천목이 열려서 때로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매번 낯선 곳에 갈 때마다 그는 묻지도 않고 누구 집이 대법제자 집인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대법제자의 집은 사부님 법신(法身)께서 수호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또 임신해서 아이를 낳으셨는데 이 아이는 하늘에서 꽃병을 깨뜨려 하계(下界)로 쫓겨난 선녀인데 역시 법을 얻으러 왔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가 이 말을 듣고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확실히 임신이었다. 모두가 아는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일찍이 대법을 얻은 동수 집의 《전법륜(轉法輪)》 뒷면 표지 연꽃이 피어난 것이다. 동수가 직접 내게 이 말을 들려주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동창이 내게 말하길 《전법륜》 책 표지에서 파룬과 태극이 도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나중에 5년 판결을 받은 어머니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석방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친척들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해서 거지처럼 살았다. 내가 할아버지 집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와 삼촌은 내게 소리를 질렀고, 이모는 심지어 나를 들여보내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나와 아빠를 볼 때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우셨고, 엄마를 그리워하다 고혈압과 심장병을 앓았다. 나중에 아버지는 일하러 나가셨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돌봐주셨다.
중국 감옥의 환경은 열악한데, 처음 출소한 후 어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여자 수감자가 경련을 일으켰다고 교도관들의 학대를 받아 죽었다고 알려주셨다. 감옥 측에서는 수감자와 가족들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묻자 그냥 경련으로 사망했다고 답변했다.
또 임동매(任冬梅 런동메이)라는 아주머니는 납치되기 전 우리 집에서 한동안 지냈는데 납치된 후 마삼가(馬三家) 노교소의 악경이 그녀의 옷을 벗겨 남자 감방에 던져서 남자 수감자들에게 강간당하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 내용은 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다.
임동매 아주머니는 감옥에서 나온 후 정신적으로 불안해졌다. 내가 심양에 있는 마삼가 노교소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너무 말라서 부러질 것 같아 손을 잡기도 무서울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들의 한 끼 식사는 작은 사발(그릇의 입구가 손목만큼 두꺼움)이고 때로는 일하면서 하루에 두 시간만 잠을 잤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녀더러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잠을 못 자게 했다.
(중략)
나는 어머니가 감옥에 계실 때 수련을 포기했다. 어머니가 감옥에 계실 때 온 가족과 전 사회가 모두 수련하지 못하고 했는데 내가 무슨 방법이 있었겠는가? 그러다 내가 16살 때 우연히 어른들이 6.4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중공에 대한 인상이 다시 변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당은 엄마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충격이 컸다. 엄마가 어떻게 탱크로 자기 아이를 짓밟을 수 있는가? 그때 처음으로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다시 수련했다. 나는 당시 어머니에게 만약 구자진언(九字真言)을 외워 성적이 향상되면 수련을 하겠다고 했다. 결국 정말로 성적이 좋아졌고 나는 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과생이라 특히 머리 쓰는 것을 좋아했다. 《전법륜》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상업(思想業)이라 불리는 일종의 업이 있음을 알 것이다. 나는 사상업이 아주 강해서 대법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사상업을 배척했는데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원래 가족들은 모두 울면서 어머니의 수련을 반대했었는데, 나중에 어머니의 감화를 받았다. 큰이모는 병 때문에 수련을 시작했는데 결국 좋아졌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감옥에 계실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고혈압과 심장병을 앓으셨지만, 진상을 모르고 울며불며 어머니의 대법 수련을 가로 막았다. 때문에 챙피해서 엄마한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몰래 큰이모를 찾아가 대법을 배우셨다. 결국 병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80이 넘은 나이에도 돋보기를 끼지 않고 바느질을 하실 수 있다.
어머니가 감옥에 계실 때 부체(附體)가 있던 한 사람이 어머니를 보더니 다른 공간에서 아주 큰 대도사(大道士)이고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획을 한번 그으면 황금빛이 찬란해서 아주 보기 좋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저는 태어날 때부터 눈썹 사이에 붉은 점이 있어서 불성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불가(佛家)에서는 고생을 겪는 것을 좋은 일로 여기기 때문에 우리는 속인이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견딜 수 있다.
나는 비록 과학에서 1등을 했지만, 생각해 보면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IQ도 아주 높고 외모도 좋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바보로 차별받고 따돌림을 당해왔는데 동창들과 함께 있으면 친구들이 나를 쫓아내기도 했다. 대법이 중국에서 박해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차별받고 늘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스물네 번째 생일날이다. 비록 동창들에게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지만 그래도 몇몇 친구들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내 인생에서 실제로 누군가 내 생일을 축하한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나는 너무 신이 나서 눈물을 흘렸는데 너무 감동했다. 이렇게 행복한 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중공에 체포된 적이 있고 강택민(江澤民 장쩌민)을 고소한 후 탈출한 것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 수배 당했다. 대학에 다닐 때 한 동창이 대법 진상을 알고 법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진상을 알리던 중 중공에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중공 경찰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고 집주인에게 집을 빌려주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런 정의로운 동수들과 비교하면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많은 박해를 받은 다른 동수들 앞에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대법을 수련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대단한 영웅이다!
나는 또 박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을 굳게 지키는 모든 동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글을 바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