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수련인들은 다 알다시피 자아는 수련중에 반드시 제거해야 할 집착이다. 그러나 자기(自己)와 자아(自我)의 관계를 똑똑히 구별하기는 어렵고 자아의 존재하는 형식을 발견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며칠 전 동수와 대법제자들의 글쓰기 문제에 대해 대화했다. 동수는 “나는 신전문화(神傳文化) 방면의 문장을 쓰는데 사로(思路)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는데 사실 이 말 자체에 자아의 성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모두 대법제자들의 지혜는 법(法)에서 온 것으로 대법이 준 지혜다. 왜 자신은 이 방면에서 사로가 없는가? 대법 자체는 분명히 지혜가 있는 것으로, 진정으로 지혜가 없고 사로가 없는 것은 사실 바로 자아다. 기왕에 우리가 모두 법을 실증하고 자아를 실증하지 않는다면 그럼 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가?
사부님께서는 《아태지역 수련생 회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법을 실증하고 수련을 하는 것은 역시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므로, 그렇게 하였다면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실증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최후 속인의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속인의 일체를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속인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법을 실증하는 과정이자 또한 자아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기’와 ‘자아’는 한 글자 차이지만 사실 함의는 전혀 다르다. 신우주에서 진정한 자기는 사실 자아가 없는 것으로 모든 생명이 다 법에 완전히 동화된 것이다. ‘나[我]’라는 글자는 사실 무기를 든 사람인데, 즉 이익을 위해 다투고 싸우는 생명이다. 매 생명마다 모두 독립적이며 모두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사실 대법제자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생명이든 다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 부원신을 포함해도 역시 독립적인 존재로서 그들 역시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정법을 교란하는 것은 또 징계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도태나 해체되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쓸 때, 늘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신의 무엇을 실증하는 것이 아님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단지 간단한 일념(一念)처럼 보이는 배후에 사람과 신(神)의 진정한 구별이 있는데 즉, 구(舊) 생명과 신우주 생명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대법제자가 오직 하려고만 하고 자아를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법은 기회와 지혜를 줄 것이다. 물론 실제 가능하지 않다면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집착 자체가 바로 자아의 표현이다.
작은 이해를 써서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