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远山)
【정견망】
동수가 한동안 오지 않다 막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신이 나서 최근 수련에서 깨달은 것을 말했다. 그러나 점점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데 동수는 듣기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더니 내 말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해명하려 했지만 뜻밖에도 동수가 직접 말했다.
“내 생각에 당신 심성에는 장기간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바로 오만(傲慢)입니다.”
나는 좀 당황했다.
‘내가? 오만하다고?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단 말인가? 내가 좀 조급하고 잘 참지 못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만할 정도는 아닌데.’
동수는 아주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으면 압력이 느껴져 함께 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번에 용기를 내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동수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희희낙락하면서 자신이 그래도 대단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시에 동수에게 몹시 미안했는데 아, 대체 내가 무엇을 했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는가.
혼자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보았다.
‘내게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좀 있는 것같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것을 배척하지 않았는가? 나는 또 분별심이있는가, 음, 좀 있는 것 같다. 나와 의견이 같거나 비슷한 동수를 만나면 즐겁게 대화하지만 문화 수준이 높지 않거나 아무런 체험도 없는 노년 동수를 만나 함께 할 때면 무의미하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지적해서 수정하고 싶다. 나는 당시 이런 바르지 못한 생각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안으로 깊이 찾아보지 않았다.
또 일부 동수들이 진상을 잘하거나 심지어 삼퇴(三退) 성공률이 높은 것을 보면 동수에게 탄복하고 사람이 착실히 수련했고 잘했다고 여겼지만 내심 깊은 곳에서는 오히려 일부 거리감을 느꼈는데 마치 이런 탄복이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당시 나는 단지 그것을 질투심의 작용이라 여기며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렇게 끊임없이 표면에서 가늠하면서 나는 오히려 아무것도 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자신에게 “나는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는가? 나는 흉금이 넓은가? 내 마음은 겸손한가?”라고 물어보자 놀랍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대법이 요구하는 말투나 선심(善心)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며 차이가 아주 멀었다.
오랫동안 ‘나’는 늘 자신의 오성이 비교적 좋고, 법 공부와 착실한 수행에서 대부분 법리의 전개와 사존의 점화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약 30년 가까이 수련하면서 비록 기복은 있었지만 넘어졌다 다시 기어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견정하게 걸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또한 점차 자아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고 심지어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변두리까지 미끄러졌다.
무변(無邊)한 법리에서 개체의 인지(認知)는 단지 하나의 입자 또는 작은 범위의 앎일 뿐이며 모두 아주 큰 국한성이 있다. 수련 중에서 아무리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생명의 승화는 모두 대법이 준 것이다. 자아에 대한 집착과 여기서 파생된 오만, 질투, 독선, 교만 등은 생명이 법에서 벗어난 후의 가소롭고 가련한 표현일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모두 그 사(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차 대법에 동화할 생명으로서 나는 이미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어찌 그것이 더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는가! 이번에 나는 정말로 그것을 붙잡아 그것을 뽑아내고 해체한 것을 느꼈는데 마음이 순식간에 해탈되어 단번에 가뿐해졌다.
여기서 동수의 지적에 감사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