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한 차례 꿈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꿈속 장면은 이랬다. 마치 옛날 집 같았는데 집에는 뜰이 있었고 뜰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다. 그때 웨딩 차량 한 대가 마당 문 앞까지 온 것을 보았는데 차에는 여동생과 한 남자가 타고 있었다. 차가 뜰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문이 너무 작고 차폭이 문보다 넓어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오빠를 찾아갔지만 그는 자고 있었고 마치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때 뒤를 돌아보니 웨딩 차량이 마당으로 직진해 들어왔고 문이 박살 났다. 꿈은 여기서 끝났다.
나는 깨어나서 생각해보았다. 이 꿈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교란인가 아니면 점화인가? 나는 여동생에 대한 편견이 강했다. 왜냐하면 경찰의 몇 차례 소란이 모두 그녀와 관계가 있었고 경찰이 그녀를 협박했는지 아니면 질투심 때문에 자발적으로 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녀를 몹시 경계했고 서로 왕래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또 여러 차례 공개석상에서 거짓말로 우리의 신용을 떨어뜨렸다. 때문에 나는 그녀에 대해 마음의 문[心門]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또 그녀를 언급하기만 해도 화를 냈고 원망했다. 이번 꿈의 실제 모습은 내게 아주 충격을 주었는데, 여기 나온 대문은 바로 마음의 문이 아닌가?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중생이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는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데, 나의 이런 상태는 중생을 내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법(法)과 차이가 너무나도 큰데, 수련이 너무 차(差)한 게 아닌가?
계속 찾아보니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이미 자신도 모르게 만연되어 있었다. 단지 내가 반감을 품은 여동생에게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이런 상태는 누구도 믿지 않고 누구의 행동도 의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결국 동수에 대해서도 속으로 경계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표면적으로는 안전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아(自我)’를 지키는 것으로 근원을 찾아보면 변이된 사(私)이다.
당신이 마음의 문을 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며 마음에 응어리가 있으면 남을 믿지 못하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장은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의 사람들이 나쁘게 변해서 진심인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 사실은 자신의 상태가 당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포용하는 마음이 없고 흉금이 너무 좁으며 바로 이렇게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나[我]다. 단지 법에서 자신의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 대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밖으로 보면서 남이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이는 마도(魔道)로 가는 것이 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라 또 자신을 봉폐(封閉)해 마음의 문을 닫으면 중생이 들어오길 거절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심각하게 법에 부합하지 않는 상태인가!
여기까지 찾았을 때 마음속으로 몹시 두려웠는데 그야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왜 이런 법에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여기까지 쓰면서 장기간 사부님께서 내게 꿈을 통해 점화해주신 것이 떠올랐다. 아주 투명하고 4면이 막힌 각진 유리 상자 안이었는데 이 용기는 오직 나 한 사람 수용 할 수 있었고, 용기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나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것같았고, 심지어 나의 존재조차 몰랐다. 용기 안에서 나는 마치 활동공간이 너무 작아 몸을 돌리기도 어렵다고 느꼈다.
당시 나는 두려운 마음이 너무 심해서 이 꿈을 왜 꾸게 되었는지 몰랐고 그저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해 내 몸을 숨겨주신 것이라고만 여겼다. 지금에 와서 보니 자아가 봉폐된 상태였고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아라는 작은 틀에 국한된 것이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국제사회에서는, 두 사람이 만나면 마음속의 어떠한 일도 터놓고 말할 수 있으며, 모르는 사람도 마음을 열어놓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중국대륙 사람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륙에서 온 수련생은 일을 하는 방식이나 교류하는 것이 국외 수련생과 같지 않다. 국외 수련생들에게는 중국대륙에서 온 수련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는 것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일을 어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이상한가? 사실은 사당이 여러 가지 운동 중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투쟁하게 하고 서로 폭로하게 한 것이다. 이런 박해 속에서 걸어 지나온 중국 사람은 이미 자신을 봉폐하는 것에 습관이 되어 있는데, 특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중에서 그러하다.”(《각지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현재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이런 봉폐된 상태는 또한 공산사령(共産邪靈)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지 않았고 사람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기적인 심리로 사악의 존재를 자양(滋養)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지나치게 봉폐하고 자신을 국한하면 중생 구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자아를 수호하려는 기점에 서서 주도하면 대법제자가 해야 할 조사정법과 중생 구도를 생각하지 못한다.
그럼 나는 왜 법에 부합하지 않는 상태를 발견하지 못했는가? 내 생각에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했고 진정으로 자신이 어디에서 법에 부합하지 못하는지 찾지 못했고 관념이 장애하고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제자가 깨닫지 못한 걸 보신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끊임없이 제자를 점화해 주셨는데 어리석은 나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못하고 여전히 자아의 감수(感受)를 견지하면서 관념에 이끌렸다. 꿈속 장면의 출현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표현은 무책임하며 오직 자신의 감수만 생각한 것임을 깨닫게 했으며 법에서 부딪힌 일체를 가늠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에 정말 부끄럽고 내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중생들에게 부끄럽다. 사(私)는 구우주의 변이된 요소로 이 사를 제거하지 못하면 그럼 신우(新宇)로 들어갈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생각에, 법이 커서, 우주대법이잖은가, 일체를 풀 수 있으며, 오직 마음만 열어놓으면, 오직 관용할 수만 있으면 내 생각에 무엇이든 모두 개변할 수 있다.”(《각지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사부님의 법은 제자에게 알려주었고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는 시시각각 늘 사부님의 가호(呵護)를 떠날 수 없고 대법의 가지(加持)를 떠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대법제자의 매 일념(一念)은 모두 법에 있어야 하고 위타(爲他)한 각도에서 서야 하며 정정당당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사(私)의 변이된 물질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중생이 들어올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위타한 생명이 될 수 있다.
작은 수련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