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高遠)
【정견망】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에서 열반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아소카 왕이 인도에 나타나 무력으로 사방을 정복하고 인도를 통일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살생의 업력을 지었다. 나중에 그는 불문(佛門)에 귀의해 불교의 호법이 되었다. 아소카왕은 부처님의 사리를 공양하고 싶었으나 당시 세상에는 이미 부처님의 사리가 없었다. 그는 국사(國師)에게 문의했다. 이 국사는 신통력을 지닌 아라한이었는데,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의 사리는 오직 용궁과 천궁(天宮)에만 있습니다. 대왕꼐서 공양하시려면 용궁에 가서 구하십시오.”
아소카 왕은 이에 3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해변에 가서 소리를 지르며 용왕에게 사리를 달라고 청했다. 오랫동안 소리를 질렀으나 용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아라한이 왕에게 말했다.
“당신이 비록 인간 세상의 왕이긴 하지만 용왕은 호법부(護法部)의 왕입니다. 그의 복보(福報)가 당신보다 크니 당신이 불러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아소카 왕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라한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유일한 방법은 복보(福報)를 닦는 것으로 가령 승려를 공양하거나 선행을 해서 이런 복보가 용왕을 능가해야 합니다.”
아소카 왕은 이에 석 달간 승려들에게 공양했다.
3개월 후 아라한이 왕에게 말했다.
“이제는 해변에 가서 용왕에게 사리를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호원 하나만 데려가셔도 됩니다. 손가락을 세 번만 흔들기만 해도 용왕이 당신을 보러 올 겁니다.”
아소카 왕이 해변에 도착해 손가락을 세 번 흔들자 용왕이 젊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나타나서는 왕에게 절을 하면서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소카 왕이 용왕에게 사리를 공양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용왕은 그에게 사리를 나눠주었다. 나중에 아소카 왕은 이 사리를 위해 84,000개의 탑을 세웠다.
나중에 아소카왕이 아라한에게 물었다.
“내가 3만 병력을 거느리고 용왕을 불러도 나오지 않더니 이번에 세 번 손을 흔들자 왜 용왕이 나타났습니까?”
아라한이 말했다.
“손을 세 번 흔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복보에 감응한 힘입니다. 복보의 힘은 외부 자연의 힘을 능가합니다.”
오늘날 대륙의 중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믿지 못하며 마치 무슨 신화처럼 여길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심오한 이치를 드러내는데 바로 복보의 힘이 외부 자연의 힘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투쟁 철학이 가득한 중국인들은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것만이 복보의 근원임을 믿지 못한다. 고인은 “똥”처럼 여긴 눈앞의 파리 대가리만한 작은 이익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은 운명을 인정하지 않고, 불시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저축한다.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가 인생 최대의 일이 되었고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여부가 젊은이들을 가늠하는 유위(有爲)적인 표준이 되었다.
가벼운 병이나 작은 재난에는 돈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정말로 생명을 앗아가는 질병이나 재난에 직면하면 돈은 거의 효과가 없으며 심지어 전혀 쓸모가 없다. 당 문화의 영향을 받은 중국인들은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천지를 찾고 자신의 운명이 너무 고달프다고 여기며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한다.
사실 신불(神佛)은 사람에 대한 보호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사람이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것을 중시하지 않고 가악투(假惡鬪)의 당 문화로 충만해 끊임없이 나쁜 짓을 저질러 업을 지었기 때문에 각종 재난을 초래한 것이다. ‘덕(德)’만이 사람이 태어날 때 가져오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으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 업력(業力)도 사람을 따라가는데, 태어나면서 가져오고 죽어서 가져갈 수 있다. 덕과 업의 관계에 대해 고인이 아주 명확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것은 보통 복보와 악보(惡報)의 형식으로 전해져왔고 또는 문인들의 소설이나 수필, 잡담, 역사 기록 등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고 끊임없이 사람의 선념(善念)을 강화하고 충실시켜 왔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각종 고서를 보면 조상이 덕을 쌓거나 또는 개인이 덕을 쌓아 복보를 받아 각종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반면 조상이 업을 쌓거나 개인적으로 업을 너무 많이 지으면 곧 각종 재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살면서 고생이 많고 재난도 많으며 건강도 좋지 않고 가정도 화목하지 않으며 자손이 끊어지는 등등은 모두 사람의 업력과 아주 큰 관계가 있다.
사람이 평안하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이 잘 되고 가정이 번창하면서 재난이 없기를 바란다면 오직 마음을 닦고 성품을 수양하며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서 자신의 복보를 누적해야만 한다. 복보가 크면 아무리 큰 외부 자연의 힘이라도 능가할 수 있다. 자연의 힘이란 불가항력이 아니라 사람 복보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파룬궁의 주요 저서 《전법륜》은 지금 인류의 언어로 덕과 업의 관계를 아주 명백하고 똑똑히 설명한다. 《전법륜》 본 사람들은 설령 진선인 요구에 따라 수련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명히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쁜 짓을 하면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진선인을 비방하는가? 왜냐하면 중공의 가악투(假惡鬪)는 끊임없이 사람을 부추겨 나쁜 일을 하고 업을 짓게 만들어 사람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덕을 조금씩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업력이 온몸에 가득하면 각종 천재인화(天災人禍)가 닥칠 뿐만 아니라 신불에 의해 철저히 소각당한다. 중공이 원하는 것은 중국인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훼멸당하는 생명의 악보를 받는 것이다.
반면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은 중공 가악투의 진면모를 드러내고 인류를 훼멸시키려는 그것의 죄악의 음모를 파괴한다. 때문에 중공은 가차 없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각종 수단을 동원해 세인을 독해시키는 것이다. 중공이 하루라도 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류를 훼멸하려는 죄악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공은 바로 마귀와 한패기 때문이다.
신불(神佛)은 결코 사람에 대한 구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바로 신(神)의 사자로 20년 넘게 성실하게 진상을 알려왔는데 바로 사람을 구하고 사람들의 선념과 양지(良知)를 일깨워 주고 있다. 사람들이 모두 진상을 똑똑히 알고 진선인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다면 중공이 악행을 저질러 초래한 각종 재난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업력이 커서 초래한 재난은 사람이 모두 마음을 바꿔 나쁜 사람이 되지 않고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널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다면 이는 이미 복보가 있는 것이다. 그럼 재난은 자연히 약화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대선(大善)과 대악(大惡), 신생(新生)과 훼멸이 공존하는 이런 관건적인 순간에 사람의 선택은 특히 중요하다. 세상 사람이 복보를 원하는지 아니면 악보를 원하는지 여부는 파룬궁 진상을 직면했을 때 어떤 일념인가에 달려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