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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부인연

중국 대법제자 묵묵(默默)

【정견망】

1. 대법을 수련하며 인연을 처음 알다

속담에 “혼사는 하늘이 정한다”고 한다. 나는 열아홉 살에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혼담을 꺼내는 중매꾼들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원래 소심하고 어둠을 무서워한다. 어쩌면 역사상 윤회전생 하며 남겨놓은 어떤 낙인(烙印)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결혼 대사에 대해서는 모호하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일에 대해 일종의 선천적인 예감 공능이 있었다.

매번 소개받은 남자에 대해, 그저 한번 본 후 한마디로 거절했고 절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자신도 뭐라 이유를 말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개인 조건은 물론 가정 조건도 모두 우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남의 결혼 대사를 지연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고상한 척하면서 이것저것 따진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중매인이나 옛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딸이 철이 없고 말을 듣지 않으며, 좋고 나쁨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매우 억울했다.

‘누가 당신들에게 중매를 부탁했는가?’

시간은 순식간에 7~8년이 지나갔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선보는데 싫증이 나서 미룰 수 있으면 미루고 피할 수 있으면 피했다. 나는 속으로 맘에 드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고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창, 동료들은 모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지만, 나는 여전히 독신이었다. 심지어 퇴근길에 길을 건너 쫓아오는 사람도 있고 도서관에도 쫓아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이 사람들을 한눈도 돌아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좋은 말로 거절했으며 결코 남에게 원한을 산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모(某) 대학 출판사 편집장이 찾아와 혼담을 꺼냈다. 상대방은 막 입학한 대학원생으로 전형적인 북방 사나이라 건장하고 성실하지만 말은 좀 어눌했다. 사실 직장에서 내게 소개해 준 대학원생들도 아주 많았다. 같은 직장 동료라 비교적 잘 알았는데 하나같이 똑똑해 보였고, 너무 똑똑하므로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미덥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 북방 사람이 말은 어눌해도 정직한 것 같아서 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보아하니 그는 분명 나와 말다툼이 없을 것이며 더욱이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나는 공주 같은 기질이 있고 게다가 요리도 할 줄 모르고, 몸도 좋지 않다. 그와 결혼하면 절대로 무시당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1년 동안 사귀고 결혼했다. 남편은 노숙한 외모에 중키에 성격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결혼 후 동료들은 나더러 고르고 골라서 ‘민공(民工 잡부)’을 구했다며 수군거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일소(一笑)에 부쳤다. 아들이 태어난 후 내 몸은 날로 나빠졌고 각종 질병이 번갈아 나타나서 30대에 병가를 내고 늘 절과 병원을 자주 찾아다녔다. 향 값과 약값이 적지 않게 들었지만 병은 오히려 갈수록 심해져서 집안일이며 부양은 모두 남편이 도맡아야 했다.

1999년 봄, 나는 운 좋게도 만고에 만나기 힘든 파룬따파를 얻었다. 무료로 공을 가르쳐 주었고, 스승님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몇 달 동안 수련한 후에 몸의 모든 고질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온몸에 힘이 솟았다. 이때부터 다시는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할 필요가 없었고, 병원에 가서 진찰받거나 치료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읽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장에 가서 아름다운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다.

책에 따라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의 말과 행동을 엄격히 요구하자 가정이 화목해졌고 직장에도 복귀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예전에 나는 매일 다섯 차례 약을 먹어야 했고, 또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곤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몸이 튼튼하고, 걸음걸이가 활기차며, 집안일이나 직장 일을 두루 감당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자주 아이처럼 화를 냈었다. 남편이 한마디 하면, 나는 그에게 열 마디 했다. 수련 후에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음”을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 모든 것을 보고 기뻐했고, 그는 나의 놀라운 변화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나를 지지했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련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열한 살짜리 아들이 갑자기 내게 말했다.

“엄마, 온몸이 하얗고 단지 오른쪽 어깨에 작은 부분만 까매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설마 아들의 천목(天目)이 열렸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아직 수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단지 나와 함께 강당에 가서 사부님의 해외 설법 녹음을 한 번 들었을 뿐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공(功)으로 제자의 몸을 정화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깨끗이 정화할 줄은 몰랐다. 기쁜 나머지 나는 또 아들에게 물었다.

“나와 아버지는 어떤 인연인지 한번 볼래?.”

아들이 말했다.

“엄마는 어느 세(世)에 왕자였는데 외출하러 사냥을 나갔고, 아버지는 그 생에 한 그루 나무였어요. 엄마가 나무를 베어 불을 지펴 밥을 지었어요.”

나는 듣자마자 이것은 살생의 악연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이미 그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니, 이 빚은 갚은 셈이지, 어쨌든 나는 이미 대법을 수련하고 있으니, 사부님이 반드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테니 더는 생각하지 말자.

2. 박해 반대에 부부가 한마음

1999년 ‘7.20’ 이후, 강(江) 마두는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파룬궁을 미친 듯이 탄압하고, 사부님을 비방하며, 천지를 뒤덮는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였다. 1999년 말, 나는 혼자 상경(上京)해서 호법(護法)하다 천안문에서 납치된 후, 북경 주재 경찰에 의해 현지로 송환되었다. 직장 세뇌반에 들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직장 보위 과장은 내가 매일 진상을 말하고 절대 전향하지 않고 직장 동료들에게 모두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직장 서기조차 어떻게 이런 좋은 직원을 발견하지 못했느냐고 말했다.(서기는 새로 전근 와서 나를 몰랐다)

경찰은 남편에게 나를 잠 감시하고 더는 상경하지 않게 하라고 했다. 남편은 속으로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차라리 나에게 언제 다시 상경할 것인지를 물어서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했다. 나는 내일 떠나겠다고 대답하고 그날 밤 대법 현수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내가 어설퍼서 한밤중까지 현수막을 다 만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와서 나를 도와 현수막을 만들어 주며 혼잣말로 했다.

“나도 파룬궁 골간(骨幹 핵심)이 되었네.“

2000년 나는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데리고 상경해 호법하고 천안문에서 전단지를 뿌렸다. 아들은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까 봐 미리 알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상경하여 호법하다가 나는 현지 파출소에 의해 1년 동안 불법 노동 교양을 당했고, 가족 면회를 거부당했다. 노교소에서는 멋대로 전향하지 않는 사람은 일절 가족 면회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이 노교소를 찾아와 옷과 돈을 주었지만, 철문에 가로막혀 들어오지 못했다. 남편은 집에 돌아간 후 혼자 법률을 공부하여 소장을 써서 법원에 고소하고 교도소의 불법을 고발해 비로소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내가 전향하지 않아 고문을 당해 불구가 되자, 남편은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를 데리고 성(省) 사법청에 가서 노교소에서 불법으로 사람을 때려 불구가 되었다고 신고했다. 상급자의 압력을 받자 노교소는 마지못해 나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고 의사에게 가짜 증명서를 발급하게 하여 자신들의 범행을 은폐하였다.

2002년 3월 나의 불법 노동교양이 만기가 된 후에도 내가 전향하지 않자, 시 ‘610’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세뇌반에 보내 불법 구금 및 박해를 계속했다. 남편은 매일 교외 세뇌반을 찾아가 사람을 내놓으라고 했다. 내가 다른 동수들과 함께 세뇌반에서 시달리고, 5박 5일 동안 잠을 못 잤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남편은 또 자필로 소장을 써서 세뇌반이 나와 동수를 불법적으로 가두어 박해한다고 고소했다. 또 다른 동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세뇌반에 가서 사람을 내달라고 요구하도록 통지했다.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야말로 “백가지 고생이 한꺼번에 내리거니”(《홍음>》<마음고생>)였다. 남편은 중학생이던 아들을 돌봐야 했고 매일 세뇌반에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했고, 게다가 회사가 망해서 월급이 없었다. 내 월급은 노교소에 간 뒤 주지 않았고, 때로는 그를 체포하겠다는 경찰의 협박에 시달렸다. 당시 ‘610’ 주임이 세뇌반에서 직접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주머니, 당신 남편은 늘 법원에 가서 고소하고 있소, 우리는 이미 당신 남편을 반년 동안 감시했지만, 그가 파룬궁과 왕래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소.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그를 체포했을 것이오.”

나는 그 주임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마세요. 선악(善惡)에 보응이 따르는 것은 하늘이 도리이니 뒷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나중에 세뇌반에서 나를 감시하던 사람이 진상을 알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몰래 알렸다. 세뇌반 주임이 내가 전향하지 않으니 멀리 보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00년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기를 적출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다급해져서 매일 “610”으로 전화를 걸어 사람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 역시 속으로 사부님께 청했다.

“제자가 법을 얻은 게 늦어 《전법륜》을 몇 번 보기도 전에 노교소에 갇혔습니다. 부디 제가 집에 돌아가 법을 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도록 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나는 사악한 세뇌반에 불법으로 감금된 지 6개월 후는 세뇌반에서 나와 직장에 출근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실직 상태라 돈이 하나도 없었지만 한번도 나를 원망한 적은 없다. 내가 출근한 후 회사에서는 월급을 400위안만 지급했고, 양로보험을 제하면 200위안만 남았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내게 일을 할당하지 않았다. ‘610’ 요원이 수시로 회사에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상사에게 즉시 나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우리 원장님이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당신들이 문서로 가져오면 그녀를 해고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말하지 마시오. 그녀가 법원에 가서 우리를 고발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그녀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겠소!”

당시 나는 낮에 출근하면 할 일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mp3로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열심히 들었고, 정각이면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다. 점심 휴식 시간에 연공을 많이 해서 다친 몸을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저녁이 되면 나가서 스티커를 붙여 사람을 구했다. 그때 남편은 이미 외지에 부품을 가공하는 작은 회사를 차리고, 일이 바빠서 평소에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남편이 집에 있기만 하면 나와 함께 나갔고 나를 도와 망을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내가 너무 서투르고 붙이는 것이 느리다고 해서 그가 가져다 붙였는데 빠르고 잘 붙였다. 때론 밤에 나가서 진상 자료와 CD를 나눠줄 때도 날 도와주었고, 카메라 위치도 알려주었다. 그해 강택민이 죽은 줄 알고 대법제자들이 폭죽을 터트려 축하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한창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남편이 무거운 폭죽을 들고 땀범벅이 되어 나를 따라다니며 폭죽을 터뜨렸다.

나중에 대법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집에 자료점을 만들었다. 집안의 프린터, CD 롬, 컴퓨터, 침대에 가득한 진상 자료를 보았지만,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가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절대 반대하지 않았다. 2012년 길에서 사악에 의해 세뇌반으로 불법 납치되자 남편이 그 소식을 알고 재빨리 집 안에 있던 프린터, CD 롬, 컴퓨터 등과 진상 자료를 어머니 집으로 옮겨 더 큰 피해를 막았다.

난 여태껏 남편에게 응급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한 적이 없다.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때그때 잘 해냈다. 삼퇴(三退) 물결이 시작되자 남편은 일찌감치 사악한 중공 조직에서 탈퇴해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가장 어두워던 그날들을 지나갔다.

3. 안으로 찾아 빚쟁이를 선하게 대하다

나중에 아들은 대학에 합격했고 명문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좋은 직장을 구했다. 남편의 사업도 번창했고, 나는 원장에게 진상을 잘 알려 정상적인 직장과 급여 대우를 회복했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에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남편 핸드폰에 메시지를 보게 되었다.

“오빠 빨리 주차해, 여동생 기다리게 하지 말고.”

보고 나서 나는 천둥이 치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곧 내가 대법제자이며 일에 부딪히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정진요지》〈경지〉).

그래서 점점 냉정해져서, 다음날이 되자 마음이 완전히 평온해졌고, 그때야 나는 남편에게 가서 소통하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만 가지 악 중에 음란(淫亂)이 가장 으뜸이며, 전통 관념을 지켜야 생활이 행복하고 신(神)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외도하는 사람은 모두 사업이 망하고, 몸이 망하며, 만년에 처량하고 비참해진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남편은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화를 내면서 내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더는 집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는 영원히 당신을 환영한다고 말했고, 남편은 그때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회사로 돌아갔다.

이후 여자가 사준 옷과 손으로 짠 스웨터를 여러 차례 발견했고, 어쩌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도 여자가 받았다. 나는 대법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고 의심, 시기심, 원한을 점차적으로 닦아버렸고 더는 남편과 이 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남편 핸드폰을 보지 않았으며, 밤에 운전해서 어디로 가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가 밖에서 고생하는 수고와 어려움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화를 내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퇴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속담에 “여자가 시집가는 것은 옷을 입고 밥을 먹기 위함”이라고 한다. 원래 월급을 아껴 쓰며 검소했던 남편이 2000년부터 지금까지 내게 월급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은퇴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월급을 주지 않았고 사업으로 저축한 돈도 모두 자신이 관리했다. 나는 내 월급만 관리하고 집안의 모든 비용은 내가 댔다.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남편이 마침내 내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경 전생에 내가 그를 해친 적이 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므로 모든 일에는 인연이 있음을 알고 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이란 없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남편은 바로 금생에 나의 빚쟁이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나는 집에서 말만 하면 다 되는 내부 책임자였고, 재정 책임자였는데, 지금은 역할이 바뀌어 빚을 갚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불평했으나 나중에는 기꺼이 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착실히 수련하고 심성을 단련해야만 비로소 할 수 있었다.

남편이 차고를 산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주었다!

집에서 에어컨을 바꾸는데 돈을 달라고 했다. 주었다!

난방기를 새 보일러로 교체한다고 했다. 주었다!

관리비, 수도세, 전기세, 가스세, 전부 주었다!

매일의 필수품, 기름, 소금, 채소, 과일값은 남편에게 진상 화폐만 주었다. 그래서 남편은 매일 씩씩하게 진상 지폐를 이용하여 사방에 가서 물건을 구매했다.

어느 날 나는 남편이 내연녀가 사준 옷을 베란다에 오래 놓아 두어도 입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자리를 차지하니 이 옷들을 기부하라고 했다. 남편은 싱글벙글하면서 기부하러 나갔다. 퇴직 후 남편은 가정적이고 부지런하여, 반찬을 사고 밥하고 빨래 등 무슨 일이든 다 했다. 또 집안의 수도와 전기 설비를 수리하는 일을 맡았으며, 동수가 법 공부하러 일주일에 세 번 집에 오면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 부부의 악연(惡緣)을 선해(善解)해 준 파룬따파에 감사드린다. 역사상 진 목숨의 빚을 사부님께서 풀어주셨다. 내가 갚은 것은 내가 진 빚 중 단지 정신적인 일부일 뿐이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하고 더 정진해서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