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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안으로 깊이 찾는 것을 배울 것인가

일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비록 20년 넘게 수련한 노제자지만, 안으로 찾음에 대해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들어와 점차 인식이 제고되었다. 내가 이해하기에 안으로 찾음은 우리에 대한 법(法)의 요구로 깊은 내함(內涵 안에 담긴 함의)이 있다. 안으로 찾음에 대한 깊은 인식은 장차 안으로 찾는 깊이 내지는 인식의 정도를 결정하는데 인식이 얼마나 깊으면 그만큼 닦아버릴 수 있다. 여기서는 내가 최근 몇 년간 어떻게 안으로 찾고 또 어떻게 인식하는지 여러분들과 법에서 교류하고자 한다.

1. 처음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다

나는 1997년 말 법(法)을 얻었고 수련 중에 많은 마난과 고험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초기 10여 년 동안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안으로 찾음을 배우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자신이 안으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당시에 찾은 것은 너무 거칠고 얕았다. 예를 들어, 어떤 관(關)을 만나면 자신에게 쟁투심(爭鬥心)이 있다거나 또는 정(情)이라고만 생각했다. 마치 하나의 집착에 무슨 마음이라고 이름표만 붙이면 안으로 찾은 것이라 여겼다. 이는 당시 나의 수련을 아주 표면적으로 흐르게 했고 많은 관을 반복했음에도 넘기지 못하게 만들어 수련이 아주 힘들고 피곤했다.

나중에 사부님의 배치하에 안으로 찾을 줄 아는 한 동수와 함께 일대일로 교류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안으로 찾는지 아주 상세히 알려주었다. 나는 듣고 나서 서둘러 안으로 찾았다. 그때는 바로 마음이 움직였는가를 하나의 지표로 삼았는데 단지 자신이 기쁘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였거나 화가 나기만 하면 곧장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아주 똑똑히 기억한 것은, 만약 진정으로 안으로 찾음을 배우고 싶다면 그럼 반드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에게 묻지 못하고 자기 배후의 동기에 대해 스스로 일문일답(一問一答)하지 못한다면 안으로 찾음을 진행하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다. 충분히 깊이 안으로 찾지 못하면 수련이 아주 표면적으로 되며 진정한 집착심은 뒤에 은폐되어 파내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줄곧 그것을 닦아버리지 않은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수련인이 정진하지 않고 자기 사상의 근본적인 동기를 찾지 않는다면 역시 해내기가 어렵다.”

나는 안으로 찾음은 마땅히 사상 배후의 근원을 찾아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모순이 생길 때는 대부분 다 자신이 이치가 있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처음 자신에게 물어볼 때 가장 먼저 자문할 질문은 “네 마음이 왜 불편한가?”이다. 일반적으로 자신과 이런 대화를 나눈 후 얻는 대답은 “아! 상대방이 어떻게 잘못했기 때문에 불편해”라는 것이다. 처음 대답은 아마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대답에 대해 자신에게 이렇게 알려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3》〈누구 옳고 누가 그른가〉에서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라고 알려주셨다. 그렇다. 내게 아무리 이치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모두 사람의 이치이며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일체를 닦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만약 여전히 자신에게 묻지 못한다면 그럼 “신(神)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마음이 움직였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가운데 사실 사람 생각[人念]과 신의 생각[神念] 사이에 끊임없는 대결이 벌어진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일념만은 확고해야 한다! 나는 수련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했기에 이때 사부님께서 나를 돕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사상이 점차 명석해지면서 조금씩 사상이 바뀌는 것을 발견했고 최후에는 정말 자신에게 집착심이 있어서 이런 관을 초래했음을 똑똑히 알게 되었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가족은 관계가 아주 가깝기 때문에 가끔 함부로 말한다.

“당신 왜 이렇게 했어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죠?” 그럼 상대방의 표현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 왜냐하면 전에 이 일을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가 고치지 않았으니 자신이 이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인 것을 알아채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왜 기분이 좋지 않은가? 만약 자신에게 집착심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절대 당신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내가 어디선가 잘하지 못해 상대방이 이렇게 하는 것이니 문제는 내게 있다.” 이렇게 묻고 대답하다 보면 확실히 내게 불만이 있고 내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깊이 파고들면 남을 얕잡아보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사부님께서는 《파룬궁》에서 이렇게 알려주셨다.

“질투심이 있는 사람은 남을 얕보고 남이 자기를 능가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며, 남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보면 그의 마음은 평형을 잃고 견디지 못하며 불복한다. ”

남을 얕잡아보는 것은 질투심에 속한다. 더 깊이 파고들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자신과 다를 때, 즉 다른 사람이 자신의 표준에 맞지 않을 때면, 남을 바꾸려 하고 남을 강요하려 생각한다. 여기에는 또 당 문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 마음을 캐낼 수 있다. 심장이 뛰면 마음속에 한 가지 물질이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마치 뭔가가 내 심장을 압박하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다 내가 진정으로 이런 마음을 찾아내어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며 나는 그것을 청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간이 있으면 즉시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시간이 없다면 설사 몇십 초에 불과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수련하려 하며 이 물건은 내가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 마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법 구결을 외워 이 사람 마음을 없애버린다.

내가 태도를 확고히 할 떄면 사부님께서 내가 이 물질을 제거하도록 도와주심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처음 안으로 찾기 시작했을 때 아주 분명했던 한 가지 반응이었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내가 이런 상태를 기억하도록 온갖 마음을 다 쓰셨다. 때문에 내가 감수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럼 그 물건을 제거할 때 가장 먼저 표현되는 것은 바로 마음이 단번에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 물질이 제거됨을 느끼면 단지 마음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당시 감각은 그야말로 매 하나의 세포마저 다 피어나는 그런 느낌이다.

또 한번은 내가 아주 명확하게 자비(慈悲)의 상태에 도달했는데 이후 단번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정말로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움을 느꼈다.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법을 배운 후에는, 마음이 처음 움직일 때부터 마음속에 어떤 물질이 누르고 있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또 차근차근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과정을 통해 안으로 찾아 어느 것이 사람 마음의 집착인지 구별할 수 있었고 그런 후 그것들을 진아(真我)와 분리해서 발정념으로 제거했다. 그 후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그 물질을 없애주신 것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을 누르던 물질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이런 상태를 반복적으로 여러 번 한 후 서서히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전체 과정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찾는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진정으로 안으로 찾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안으로 찾음[向內找]”은 법리(法理)로 간단히 이 세 글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전체 과정에서 자신이 실천을 통해 체험하고 그런 후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지만 진정으로 안으로 찾음에 대한 체험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련은 완전히 마음속 활동이기 때문인데 체조처럼 동작만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척 보면 분명히 볼 수 있다. 자신이 마음을 써서 수련하고 깨닫고, 마음을 써서 체험해야 하며, 또 마지막으로 이 업력(業力)이 어떻게 없어지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다음에 관(關)을 넘을 때 당신은 비로소 진정으로 그 물건이 자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이 움직인 이유는 처음에 그 물건을 자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그 물건에 조종당하고 이끌렸기 때문에 비로소 남과 모순이 발생하고 화를 내며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이는 바로 당신이 그 물건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했음을 표시하는데 당신은 여전히 그것을 자신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 과정은 우리가 진정으로 명백해지도록 돕고 우리 마음을 힘들게 했던 그것이 원래는 정말 하나의 물질이며 하나의 생명임을 알려준다.

2. 점차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을 배우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현실 생활 중에서 양성된 관념과 좋지 못한 그러한 것들을 단번에 깨끗하게 제거하기가 어려우며, 습관적인 것들은 여전히 습관을 고쳐야 한다. 사유의 방식은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그럼 사유의 방식에서도 그것을 찾아 바르게 해야만, 비로소 더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은, 제가 이미 깨끗하게 청리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발정념을 해서, 이 마당은 모두 밝아졌다. 그러나 일어서자마자 머리엔 바로 속인의 사유이며, 생각한 문제와 한 일은 또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것이 또 생겼다. 심지어 발정념을 할 때 당신의 사상 염두가 아직도 안정할 수 없어, 한편으로는 발정념을 해서 좋지 못한 것을 청리하고 소멸하며 또 한편으로는 생기고 있다.”

내가 깨달은 것은 만약 하나의 집착심을 찾아냈음에도 반복해서 나타날 때면 어떤 사람 관념이 조성한 것인지 아니면 사유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보다 깊이 찾아보아야 한다. 가령 늘 남을 얕잡아보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는 자신이 남을 가늠하는 표준이 사람의 관념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상대를 얕잡아보는데 이는 자신이 하나의 표준을 설정한 후 상대가 내가 설정한 표준에 부합하지 않기만 하면 곧 힘들어하는데 다시 말해 내가 남에게 설정한 표준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많은 때 우리가 일부 집착과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 관념이 대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진심으로 이렇게 하면 자신에게 좋지 않다고 여겨야지만 내심에서 우러나와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관념을 찾은 후에는 또 계속해서 그것의 해로움을 인식해야만 관념에 대해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좋지 않은 심태(心態)와 정서(情緖)에 대해서도 늘 수시로 찾은 후 즉시 제거해야 한다. 이런 정서가 나올 때가 바로 그 물질이 가장 표면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그것이 다 나왔을 때가 그것을 제거할 가장 좋은 시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황이 진정되길 기다려 다시 어느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지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기란 비교적 어렵다. 왜냐하면 그때 당신이 화를 내지 않고 정서가 아주 평온하지 않을 때면 그 마음이 반영되어 나오지 않아 아무리 해도 그것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안으로 찾는 것도 사실 단계가 있는데 층차가 제고됨에 따라 제고되고, 어디까지 인식하면 거기서 찾는다. 그런 후 점차 더 심층(深層)으로 찾는데 즉 수련이 점점 더 세밀해진다.

3. 안으로 찾는 기제를 형성

안으로 찾는 기제를 형성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불행하거나 불쾌하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즉시 안으로 찾기 시작해야 한다. 만약 매번 마음을 움직일 때마다 늘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이 기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만약 이를 해내지 못하면 기제를 형성하기란 아주 어렵다.

내 기억에 처음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운 후 나는 마음이 움직일 때마다 즉시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는 왜 불편한가?”

이런 상태가 습관이 되고 자연스럽게 형성되면 일단 문제가 발생하기만 하면 안으로 찾는 기제가 스스로 질문하면서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안으로 찾는 기제를 형성하려면 반드시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즉, 경각심을 높여서 일단 마음이 움직이고 좋지 않은 심태나 정서 등이 나오기만 하면 곧 그것이 막 싹이 나올 때 즉시 안으로 찾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으로 찾는 기제를 형성하기란 아주 어렵다. 또 나쁜 정서가 쉽사리 강화되어 심성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집착심에 이끌려 그것에게 통제당하는데 법에서 층차의 제고를 얻을 수 없고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4. 일사일념을 닦다

흔히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닦는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보기에 만약 착실한 수련 기초가 없다면 사실 이를 해내기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그 기초가 아직 잘 다져지지 않았을 때는 관을 넘기가 좀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오직 자신이 눈앞에 닥친 관을 넘을 수 있을 지 여부만 두려울 뿐 일사일념을 닦는 것에 대해서는 힘이 모자라거나 심지어 일사일념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수련의 기초가 아주 좋은 동수라면 그는 늘 이런 식으로 견지할 수 있고 설사 일이 아주 바쁠 때조차도 일사일념을 닦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안으로 찾는 기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1~2초면 법에 없는 그런 생각을 단번에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 순간에 반응할 수 있으며 만약 당신이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럼 거기까지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 즉 아직 착실하고 착실하게 안으로 찾아서 조금씩 수련해 올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일사일념이 일어날 때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매 하나의 우연한 생각마저도 모두 배후에 감춰진 사람 마음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의 주의식이 아주 명확하고 주동적으로 이 일을 알고 있을 때를 제외하면 당신 머리에 튀어나온 사상은 아마 당신이 생각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가령 갑자기 누가 생각났다면 왜 그가 생각났는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종종 그에 대한 생각을 찾을 수 있는데 가령 그를 못마땅하게 보았다거나 원한이 있다거나 다른 집착심이 있는 등등이다. 마음이 일어나고 생각이 움직였다면 그 염두의 배후는 모두 하나의 사람 마음이나 관념이 있는 것으로 이를 찾아냈다면 놓치지 말고 즉시 제거해야 한다.

결론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 개인의 수련은 당신이 대표한 방대한 천체 중의 생명을 구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진상 알리기를 통해 인연 있는 중생을 구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잘 수련하는 자체도 자신 천체 속의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진정으로 안으로 깊이 찾을 수 있어야지만 아주 깊이 숨겨진 사람 속의 각종 관념과 집착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할 수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으며 중생을 더 잘 구도할 수 있고 우리의 사전(史前) 큰 소원을 완성할 수 있다.

이상은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 부당한 곳이 있으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