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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忍)에 대한 작은 깨달음

미국 대법제자

【정견망】

인(忍 참음)에 대한 인식에 있어 대법을 수련하던 초기 내 인식은 일반 속인의 인식과 별 차이가 없었고 그저 표면적인 뜻을 이해하는데 머물렀다. 역사적으로 참을 수 있고 참음을 실천해 속인 중에서 공업(功業)을 성취한 인물에 대한 전고(典故)가 적지 않다.

가령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지나가는 굴욕을 당했다는 고사 외에도 주 문왕이 유리에 갇혀 《주역(周易)》을 연화하고, 월왕 구천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나라를 되찾은 이야기, 사마천이 치욕스런 형벌을 감수하며 《사기》를 완성한 이야기 등등 꽤 많다.

‘인[忍 rěn 3성]은 ‘인[人 rén 2성]과 발음은 같고 성조만 다르다. 수련 중에서 법(法)은 내게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서 인(人)은 이 한 층에서 인(忍)이란 우주 특성과 대응해 중국 전통문화에서 함양과 참음을 중시했음을 알려주었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군자의 오덕(五德)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역시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에서 파생된 사람 이 한 층의 표준이다. 인(仁 어짊)은 본래 선(善)에서 나온 것으로 동시에 참음이란 내함도 있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감)가 바로 인(仁)이라 했다. 여기서 극기(克己)란 자아에 대한 단속인데 이는 인(忍)의 한가지 표현이다. 예(禮) 역시 마찬가지로 인(忍)의 특성을 지닌다.

쉽게 관찰하기 힘든 참음

인(忍)의 에너지는 안으로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인의 특성은 표면 공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체험하고 관찰하기 쉽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정법수련은 마땅히 참아야 한다.”(《전법륜법해》〈광저우설법 문답 풀이〉)

“참음이란 화를 낸 다음에 비로소 참는 것이 아니라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전법륜법해》〈옌지설법 문답 풀이〉)

수련 초기 나는 비록 사부님 말씀이 법임을 알았지만 여전히 화가 나지 않고 힘들지 않은데 또 무엇을 참는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법 공부 중에서 서서히 화가 난 다음에 참는 것은 속인의 참음임을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 수련인에 대한 법(法)의 요구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참음이다. 인(忍)이란 특성은 늘 아주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여부에 따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때라야 인내(忍耐)를 생각한다.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사람이 세간(世間)에 살면서 확실히 매 순간 다양한 정도의 참음과 분리할 수 없다. 다만 사람이 이미 익숙해져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가령 사람이 자신을 부양하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하며, 업무 중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가정과 사회생활에서 만족한 보답을 얻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방면의 어려움과 도전은 인내하면서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은 어머니 뱃속을 떠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추위와 더위, 목마름, 배고픔 및 또 업력이 가져다주는 불편함을 참아내야 하지 않는가?

원래 ’인지(認)‘한다는 단어가 ’인(忍)‘에서 유래한 것은 이 층의 뜻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주변 환경이 조화를 이루면 편안함을 느끼며 참음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 반면 사람이 주위 공간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에 있을 때면 불편함을 느끼는데 사람은 흔히 이럴 때 참음의 존재를 경험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속인은 바로 이 신체가 있음으로써 문제가 나타난다. 추워도 안 되고, 더워도 안 되고, 목말라도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고, 힘들어도 안 되며, 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데, 어찌됐든 당신은 편안하지 못하다.”

인이란 우주 특성의 물질 속 체현

나는 표면 공간에서 입자와 입자 사이의 평형과 안정을 유지하는 에너지가 바로 인(忍)의 일종 체현임을 깨달았다. 분자 또는 원자로 구성된 공간에서 원자와 원자가 결합하고, 원자와 분자가 결합한다. 현대 과학에서는 화학 결합이란 용어로 이런 결합 상태를 설명하는데 화학 반응 중에 에너지가 방출되거나 흡수된다. 이는 인(忍)이 원자와 분자 층차 사이에서 존재하는 에너지의 한 가지 표현 형식이다. 더 미시적으로 보자면 원자핵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에너지 역시 이 한 층차에서 인(忍)의 체현이다.

근대에 들어와 과학자들은 원자핵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핵분열 기술을 발명했고, 이후 원자력 발전과 원자폭탄, 수소폭탄 등 대량 살상 핵무기를 발명했다. 그러나 현재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해악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핵무기는 도시 전체와 많은 생명을 파괴하기에 충분한데 이는 우주 특성을 심각하게 위배한 것이자 고층 생명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원자력 발전 분야에서 발전이 더디고, 핵융합 기술을 돌파하기란 더욱 어렵다. 도덕이 낮은 인류의 과학 발전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거대한 암흑 물질이 더 큰 천체 범위 내에서 인(忍)이란 에너지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

도가에서는 인체는 하나의 소우주로 천지인(天地人) 삼재와 대응한다고 본다. 가령 사람의 머리가 하늘에 대응한다면 아랫배는 땅에 대응하고 흉복(胸腹 가슴과 배) 사이 오장육부가 위치한 곳이 사람에 대응한다. 이런 대응은 또 더 세분할 수 있다. 가령 사람의 얼굴을 예로 들면 이마는 하늘에 대응해 천정(天庭)이라 하고, 코는 사람에 대응하고, 입과 턱은 땅에 대응한다. 천지인 삼재가 세계를 구성하는데 사람을 구성함은 이 세계에서 하나의 생명 개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 간단히 말해 삼재(三才)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흔히 사람과 대응하는 이 한 층(層)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인체에서 대응하는 것은 오장육부의 문제다. 천지인 삼재는 하나의 정체(整體)다.

전설에 따르면 반고가 천지를 개벽한 것은 사람을 위한 것으로 그가 사망한 신체의 일부분이 오악(五岳 중국에서 오행을 대표하는 5대 명산)이 되었다고 한다. 말세(末世)에 인류의 도덕이 패괴(敗壞 부패하고 망가짐)해 창세(創世)의 표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가 되면 곧 거대한 천재인화(天災人禍) 온역(溫疫 돌림병) 등의 재난이 나타나 패괴한 인류를 도태시킨다. 이런 큰 겁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전통 도덕을 따른 사람들이다. 인류사회의 도덕이 새롭게 회복되면 천지인(天地人) 삼재가 안정되고 천지 사이의 재앙이 줄어든다. 이는 마치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 병을 조성한 원인을 신체에서 제거해야만 건강이 회복되는 원리와 같다.

서방인들은 비록 중국 전통문화의 바탕은 없어도 일부 단어에는 때로 고인(古人)의 지혜를 드러낸다. 단지 지금 사람들이 의미를 모를 뿐이다. 영어에서 사람들에게 이성과 냉정을 찾으라는 한마디 말이 있는데 “정신차려(Put yourself together)”다!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좀 어려울 수 있다.

[역주: 여기서 ‘put’은 ‘내려놓다, 두다’라는 뜻으로 조각난 정신을 한데로 모아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진정한 의미는 사람이 화를 내고 이성을 잃을 때면 인(忍)을 위반하고 우주 특성을 위반하게 되고 그 후과는 바로 분자와 세포로 구성된 자신의 신체에 파괴와 분열이란 부면(負面)영향을 초래한다. 사실 바로 자신의 삼재를 파괴하는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참아낼 수 있어서, 주의식이 냉정하게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면 자신과 주변환경의 안정을 해치는 파괴를 피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의 역할은 하늘과 땅의 연계이자 삼재 체계의 안정을 유지하는 관건이다. 전반 인류사회의 도덕(道德)은 이 한 층 삼재(三才)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은 삼재에서 사람에 부여된 책임과 대응한다.

오늘날 인류는 사람과 하늘 및 땅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하늘과 땅을 공경하지 않는다. 마치 자식이 자기 친부모를 모르고 함부로 행동해 스스로 훼멸하는 것과 같다. 중공사당(中共邪黨)은 “하늘과 투쟁하고, 땅과 투쟁하며, 사람과 투쟁하니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라고 하는데, 이는 마귀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목적은 삼재를 훼멸하고 인류를 훼멸하며 더 나아가 세계를 훼멸하려는 것이다.

수련은 참음을 벗어날 수 없어

어떤 사람들은 “불가에서는 선(善)을 닦고 도가에서는 진(真)을 닦는데 왜 인(忍)을 닦는 일가는 볼 수 없는가?” 라고 묻는다. 인의 중요성에 대해 《전법륜》에서는 오히려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강조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은 끝없는바(大法無邊), 당신의 그 마음에 의거해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

“모순과 마주쳤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씬씽) 연마(魔煉) 중에 표현될 것이며, 당신이 참아낼 수 있으면 당신의 업력도 제거되고 당신의 心性(씬씽)도 제고되어 올라오며, 당신의 공 역시 자라서 그것들은 한데로 용합(熔合)된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말해 진(真)과 선(善)이 어느 한 경계에 도달한 아름다운 상태를 묘사한다면, 인(忍)은 그 경계에 도달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인식했다. 때문에 인은 心性(씬씽)에 포함된 관건적인 요소의 하나다. 에너지는 참는 과정에 저장될 수 있고 반대 과정(참지 못함)에서 잃을 수 있다. 이 개념은 역대 수련계에서 말하는 “따라가는 자는 범인(凡人)이 되고 거스르는 자는 신선[顺者凡,逆者仙]”이 된다는 것과 일치한다.

[역주: 속세의 큰 흐름에 따라가면 범속한 속인이 되고 이를 거슬러 반본귀진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의미. 이 과정에서 참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생명이 층차를 제고하려면 곧 참아야 하는데 층차가 더 높은 생명일수록 지닌 에너지장이 더 크다. 호한(浩瀚)한 우주 중에서 거시에서 미시에 이르기까지 무량무계(無量無計)한 층차와 공간은 이런 강대한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이상은 내가 법에서 깨달은 작은 깨달음으로 세계 파룬따파의 날 25주년을 맞이해 썼다. 만약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이 자리에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지난 수년간 대법을 수련하면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대법을 세상에 전해 세인들에게 생명이 반본귀진(返本歸真)할 길을 알려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