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서유기》는 이번 차례 인류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문화의 하나로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사람을 구하는 수련에 참고로 남긴 것임에 틀림없다.
《서유기》는 성공적인 하나의 수련 이야기다. 지금 만약 당승(唐僧)이 요괴와 맞서지 않고 요괴를 우회하는 길을 걷는다고 하자.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경(經)이니 구태여 요괴와 맞설 필요가 없고 만약 요괴에게 잡아먹힌다면 아무도 취경(取經)할 사람이 없다. 취경은 큰일이니 단지 길을 좀 더 걷는 문제가 아닌가? 그럼 천리마를 찾아 좀 적게 쉬면서 많은 길을 걸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물어보면 여러분은 분명 아니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수련에 대해서는 똑똑히 간파할 수 있는데 감히 요괴와 맞서지 못한다면 곧 생사를 내려놓지 못한 것으로 즉 합격한 수련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설사 서천에 가더라도 진경(真經)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실 전혀 서천으로 갈 수 없는데 요괴들이 그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끊임없이 방해해 아마 중도에 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이란 엄숙한 것으로 보살이 이 모든 것을 배치했지만 보살은 오직 정념(正念)을 지닌 사람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위덕(威德)을 지닌 사람만이 위덕이 있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위덕이란 요괴와 맞서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다시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보자. 당승은 취경의 길에서 수련했다면,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면서 수련하고 있다. 당승이 요괴를 피해서 단지 각종 방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만 논한다면 이는 잘못이다.
사부님께서는 《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박해가 하루빨리 결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소망이고, 그것을 폭로하고 박해를 정념으로 대하는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은 박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그곳으로 가서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박해에 대한 이해 역시 각양각색이다.”
사부님은 여기서 명확하게 “박해를 정념으로 대하는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하셨다.
설령 대법제자가 세상 사람의 절반을 구도하더라도, 만약 대법제자가 감히 정념으로 박해에 맞서지 못하고, 생사를 내려놓고 정신(正神)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원만할 수 없다. 그럼 그들이 구도한 사람은 헛되게 구한 것이 되는데 천국 세계가 없으면 갈 곳이 없는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2008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제고가 없고 당신의 원만이 없다면 당신이 구원한 중생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가지겠는가? 왜 문제를 이처럼 보지 않는가?”
만약 법정인간(法正人間)이 도래했을 때 대법제자가 박해를 결속하지 못했다면, 내가 보기에 대법제자는 감히 자신이 원만해서 신(神)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전반 수련 과정에서 사악은 줄곧 당신 주변에서 대법을 공격하고 사부님을 공격했는데 그럼에도 당신은 원만해서 신이 되려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을 최대한 제거하고 박해를 결속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박해를 결속하는 과정은 우리가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사악을 철저히 근절하는 과정이자, 우리가 위덕을 세우고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더욱이 정정당당하게 진정으로 세인을 구도하는 과정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6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