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明心)
【정견망】
썩은 도끼자루 참된 구결 오묘하게 신과 통하니
한 판 두니 몇 년이 지났구나.
굴에서 나온 이래 적수가 없나니
늘 남에게 양보했다네.
爛柯真訣妙通神
一局曾經幾度春
自出洞來無敵手
得饒人處且饒人
송대 수도인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이 시는 우리 일반인들이 관찰하기 어려운 인과(因果)문제를 말하는데 어느 것이 원인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이 시의 대의는 시인이 바둑을 두다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스스로 한 가지 이치를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다년간의 노력을 거쳐 바둑 기술이 좋아져서 인간 세상에 이미 적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된 원인은 오히려 “늘 남에게 양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적수가 없는 것”을 원인으로 보고 “남에게 양보”한 것을 결과로 본다. 사실은 인과과 전도(顚倒 위아래가 반대로 뒤집힌 것)된 것이다.
진정한 해석은 마땅히 ‘남에게 양보’가 원인이고 ‘적수가 없음’이 결과가 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신(神)을 믿는다. 신은 오직 참고 양보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힘을 주신다. 특히 일반인을 뛰어넘는 능력이면 더욱 그렇다. 이는 ‘무신론’의 결론과는 정반대로 된다.
파룬따파 사부님은 《정진요지》 <왜 볼 수 없는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깨달음(悟)이 먼저이고 보는 것은 나중이라, 마음을 닦고 업을 제거하여 본성이 나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사(上士)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깨달음에 의해 원만을 이룬다.”
수련인의 천목은 “깨달음이 먼저이고 보는 것은 나중”인데, 사실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우리는 신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늘은 매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데 사람 자신이 먼저 안되기 때문이지 신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다.
마치 앞에서 말한 바둑과 같다. 만약 한 사람이 겸손한 마음이 없는데 뛰어난 기예(技藝)를 주면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거나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며 결국에는 큰 업을 지어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신은 사람에게 자비롭기에 그에게 그렇게 큰 능력을 주지 않는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내 병이 나으면 나는 수련하겠다.’ 수련에는 어떤 조건도 없는바,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그러면 수련하라.”
수련인이 병이 없어지는 원인도 이러한데 병을 없애기 위해 수련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만 수련을 위해 오면 오히려 병이 없어진다.
속인에서 걸어 나오지 못함은 사실 인과(因果)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신(神)만이 가장 대단한 과학자인데 그들만이 가장 높은 진리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9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