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무명(無名)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많은 관(關)을 넘어야 하는데, 원인은 사람이 출생한 이후 끊임없이 인류사회 인식 중에서 각종 각양의 관념이 생김으로써 이로부터 집착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바로 고난(苦難)과 이익의 향수(享受)가 병행하는 세계이며, 당신이 아무리 돈이 많고, 어떠한 사회계층에 있든지 간에 인생은 바로 많은 고난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우리에게 아주 명확히 설명하셨다. 사부님 설법과 비교하면 자신과 법의 격차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전혀 수련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마치 자신이 관념속에서 생활하면서 사상과 행동이 모두 관념에 좌우지 된 것 같다. 과거의 장면들을 되돌아보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관념이 내게는 모두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고난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과 신(神) 사이에서 선택할 때 종종 사람 생각으로 신념(神念)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지 법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 속에 빠져 있었다.
삼계는 정환(情幻)의 공간이다. 정(情)은 생명이 이곳에서 미혹되게 만드는 주요 요소다. 눈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장 크고 가장 거친 분자세포인 육체가 전달하는 신호다. 관념이 바로 전달하고 수송하는 매체인데 관념이란 이런 컨베이어 벨트가 있으면 현실적인 느낌이 끊임없이 보충되어 관념이 더욱 강하고 완고하게 만드는데 이와 상응해 보다 많은 물질을 수송할 것이다.
먼저 관념이 있고 관념에 이끌려 집착이 생겨나는데 관념의 내원은 사(私)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각종 방식으로 획득하고 쟁탈하기 때문이다. 즉 끊임없이 고난에 대항하면서 운명에 저항하는데 다시 말해 신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하늘의 이차가 균형 잡는 것을 믿지 못한다. 사람은 바로 이렇게 미혹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끊임없이 업을 짓고 신에게 점점 멀어졌다.
신은 사람의 그 어떤 관념도 없는데 대법제자가 수련 성취하려는 것은 부동한 층차의 불도신(佛道神)인데 사람의 관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쓰면서 뭔가 혼란스럽고 몸이 인간 세상에 있는데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때 머릿속에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홍음》〈도중에서〉)가 떠올랐다. 명백한 일면은 곧 알았는데 바로 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정진요지》 〈교란을 배제하자〉)
자신을 대법의 한 입자로 여기고 다른 것을 구하지 말자. 우리 사부님의 《홍음》〈도중에서〉를 읽어보자.
마음에 두지 않으니
세상과 다툴 것 없도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
고요하되 생각지 않으니
현묘함을 알 수 있도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7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