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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 집착한 고통스런 후회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전에 10년 넘게 매체에서 영업을 했다.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오직 ‘고통스런 후회(痛悔)’라는 두 글자로 내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글이 유사한 상황에 처한 동수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길 바란다.

그 시절 영업할 때 나는 주문과 자원 등의 충돌로 인해 업무성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다른 동수들과 상의할 때도 늘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자신이 최대의 이익을 얻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 당시 내게 협력이나 원용 등은 모두 매우 비현실적이었고 현실의 이익보다 훨씬 못했다.

최근 들어 갈수록 알게된 것은 당시 나는 전혀 수련하지 않았다. 그때 수련의 가치는 내게 이익보다 덜 실질적인 것으로 보였다.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런 환경에 처해서 그렇게 심한 업무 압박을 받을 때 무조건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종의 ‘관성’이 있었던 것 같고, 겉으로 표현되는 모습과는 상관없이 마음속으로 늘 다른 사람의 감수를 고려하지 않았고 남과 경쟁하는 심태였다.

때문에 쟁투심, 질투심, 원한심 등이 아주 생생하게 드러났고, 자신의 성과가 좋기를 바라고, 남보다 자신의 성과가 좋기를 바라며, 나보다 성과가 좋은 사람을 질투했고, 이런저런 것들이 불공평한다고 느끼는 등등이었다. 마치 좋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매체에 대한 공헌이고 성과가 좋을수록 공헌이 더 크다고 생각한 것 같다.

돌이켜보면 원래 매체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것은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 얻기 힘든 수련환경과 기연(機緣)이었음에도,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좋은 기연을 수련제고에 사용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을 실증하는데 사용했다. 이 10여 년 기간에 도리어 제고하기는커녕 도리어 떨어져 내려갔다. 최근 몇 년 동안 진정하게 자신을 수련한 후에야 내가 얼마나 많은 소중한 시간과 기연을 놓쳤는지 깨달았다. 수련이란 자아를 내려놓는 것인데 자아를 실증함은 정반대의 길이다.

다시 사부님의 신경문 《각성하라》에서 “이는 말후에 겨우 남아있는 요만한 사람 구하는 시간을 대량으로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장래에 후회할 것이다!”를 읽으면서야 나는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순식간에 지나간 10여 년의 시간에 대한 고통과 후회가 밀려왔다.

당시 환경에서 나는 다들 비슷한 심태를 지녔고, 모두 성과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계획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고 여겼다. 자신이 하는 일은 문제가 없지만, 종종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은 눈에 거슬렸다. 지금 나는 명백해졌는데, 우리는 모두 말후(末候)의 생명이며, 모두 나쁘고 모두 변이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련하고 반본귀진(反本歸真)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았다면 상대방 역시 수련 중의 사람으로 나와 마찬가지로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으니 이상하게 여길 게 없다.

관건은 이 환경에서 자신이 정면(正面) 작용을 하는가, 아니면 부면(負面) 작용을 하는가? 이다. 대법에 따라 마음을 수련하고 선심(善心)과 포용으로 남을 대하며 매사에 남을 배려했다면 정면 작용을 한 것이고, 또 끊임없이 자신을 정화해 위로 향상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원만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다. 반대로 남을 무시하고, 남에 대해 의견이 많고, 싸워서 이기길 좋아하며, 자사자아(自私自我)해 남의 감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런 것은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킨다. 즉 파란을 부추기는 것으로 남을 해치고 업을 지으며 남과 나의 심성을 교란해 시비(是非)속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수련과는 정반대로 간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3》〈정법〉에서 말씀하셨다.

“정법의 한 길에서 하늘을 뒤흔들거니
바르지 못한 부(負)적인 것들 전부 도태되리라”

나는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침내 분명히 깨닫고 돌아온 것에 대해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 그렇게 했던 이유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환경에서 실제로 성과에 대한 압박이 아주 컸기 때문인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생존과 안정감을 위해 ‘경쟁’하는 심태로 해야 했고 소위 ‘강자’가 되기 위해 ‘약자’를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주요한 것은 무신론의 영향으로 사부님께 말씀하신 명명백백한 법리를 엄숙하게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모두 대조해 법에 부합해야 함을 몰랐고 인과응보의 엄숙함과 엄격함은 더욱 몰랐다. 법 공부와 보다 많은 인과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법리는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니 절대로 법을 시험하려 들지 말아야 함을 깨달았다.

옛말에 “공직에 있으면서 수행하기 쉽다”는 말이 생각나는데, 이는 관리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쥐면 이를 이용해 선행을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자신의 덕을 쌓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권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당연히 선악유보(善惡有報)의 천리(天理)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고 복잡한 영업팀 환경에서도 대법에 따라 한다면 마찬가지로 빨리 제고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아야 한다.

세상에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약이란 없다. 만약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소중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잘 수련할 것이다. 현세(現世)의 요만한 작은 이익이 다 무엇인가? 대법만이 영세토록 만나기 힘든 보물이다.

사부님께서는 《홍음》〈원명〉에서 말씀하셨다.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품었나니
자신의 수련은 백성에게도 이롭도다
대법이 마음을 떠나지 않거니
언젠가는 반드시 초인이 되리라”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