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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체’에 대한 작은 사고

대법제자

【정견망】

한번은 《전법륜》에서 사부님의 한 구절 법을 읽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무릇 이런 것은 모두 부체를 갖고 있는데, 당신은 당신 몸 뒤에 무엇이 엎드려 있는지 아는가? 당신은 부체가 있는데, 당신 자신은 감각이 없고, 당신은 알지 못하며, 당신은 아주 좋다고 여기고,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고 여긴다.”

당시 이 구에 감동이 있었는데 뭔가 확연히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부체가 있는 사람들은 원래 자신은 아무 느낌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여기서 생각해 보니 일부 일의 ‘진상(眞相)’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애정 소설을 아주 좋아해서 모 인기 시리즈물은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반복해서 읽으며 아름다운 사랑을 상상하곤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나는 건 대학교 때 한번은 애정 소설을 읽다가 줄거리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갑자기 머리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데 마치 머리로 피가 쏠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또 그때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다.

나중에 법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고, 겉으로는 말과 행동에 무슨 문제가 없었지만 내심으로는 끊임없이 환상을 품었다. 때때로 나는 누군가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느낌이 들거나 또는 누군가 내게 관심이 있거나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곤 했다. 이런 느낌은 비교적 쉽게 나타났고 나는 또 이를 즐겼다. 나중에야 나의 집착과 환상이 너무 심해서 초래한 것으로 이 방면에서 너무 민감하고 생각이 많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몇 년 전 이런 사유를 기본적으로 바로잡은 후 어떤 동수와 교류할 때 그녀는 아마도 나의 과거 사상이 뱀 종류의 물질에 의해 통제당해 엉망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막연하게 그녀의 말이 맞다고 느꼈지만 또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말은 내게 부체가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또 사부님께서는 수련인들의 모든 부체를 다 깨끗하게 제거해 주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어떻게 부체가 있을 수 있는가?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다.

그 시절을 돌아보니 특히 내가 애정에 집착할 때 뱀 꿈을 꾸곤 했지만 바로 잡은 후에는 기본적으로 더 이상 꿈에 뱀이 보이지 않았다. 또 과거 ‘부체’에 대해 나는 줄곧 믿을 수 없었다. 비록 사부님 말씀이니 믿긴 했지만 느낌상 다른 공간의 부체에 대해서는 늘 그것이 정말이라고 믿기 힘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종합해 보니 나는 내가 애정 소설에 빠져있던 당시 아마도 뱀 부체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때 색정(色情)에 대한 생각과 욕망이 몹시 커서 머릿속을 다 차지한 것이다. 수련 후 비록 사부님께서 초기 제자들에게 부체를 청리해 주셨지만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또 초래할 수 있으며 이것은 스스로 구해서 온 것이다.

장기간 색정에 대한 나의 집착이 부체를 길러냈고 부체는 또 나를 통제하고 집착을 강화해 자신이 좋아한다고 여기고 느꼈던 것들이 아마 모두 배후에서 그 부체가 자신의 감수를 뇌에 반영했을 것이다. 즉 내가 그것의 욕망을 만족시킨 것으로 정말 비참하다. 내가 부체에 관한 사부님의 법을 그렇게 믿기 힘들었던 이유도 아마 그것이 내 사상속에 반영한 것으로 그것을 보호해서 제거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말씀하셨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면,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원망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으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일으킨다.”

《전법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과거에 다른 사람이 그의 몸에 부체가 있다 하였고 그 자신도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일단 그에게서 떼어버린 후에도 그는 그 마음의 병을 제거하지 못해 그는 늘 그런 상태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끼며 그는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이미 일종의 집착심으로서, 의심이라고 한다. 오래오래 되어 그 자신이 자칫하면 또 불러올 수 있다.”

전에 한 여자 동수가 쓴 교류 문장에서 일찍이 심각한 짝사랑에 빠졌다가 1년 반 만에야 겨우 내려놓았다는데 반복적으로 관(關)을 넘는 기간에 한번은 ‘장발의 여자 귀신’이 자신과 함께 신체를 구성한 것을 보고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으며 이것이 바로 그 색욕(色慾)의 물질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수년 전 내가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홍음 4》〈더 날뛰어 봐라〉의 몇 구절이 곧바로 사람 마음을 가리키신 것이다.

“나팔수들 거짓말 짖어댐이 늑대 같구나
사람 악함이 귀신같아 풍랑(瘋浪)을 조장하거니
선념(善念)이 없고 양심도 잃었다네”

당시 나는 이를 자신에 대한 방할(棒喝)이라 여겼는데 사랑에 대한 나의 그런 강렬한 집착이 바로 “사람 악함이 귀신같은” “풍랑”이자 또 “양심도 잃게” 했다. 원인은 내가 애정 소설에서 “늑대같이 짖어대는”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구구절절 모두 나를 말씀하신 것이다! 비록 이치는 똑똑히 알았지만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내려놓았다. 수년간의 소중한 수련 시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또 자신의 공간장에 끊임없이 패물(敗物)을 쌓은 것이 애석하다. 사부님께 부끄러울 따름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내려놓지 못한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전에 내가 집착했던 사람들은 모두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거나 아주 이기적이거나 또 취약했으며 심사(心思)가 올바르지 않았다. 때문에 부적절한 ‘정감(情感)’으로 자신을 만족시킨 것으로 정직하고 떳떳하게 인생 중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수련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나도 한때 이런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깊이 깨달았다.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일체 정감은 모두 심술(心術)이 바르지 못한 사람에게서 내원한 것으로 그 사람의 표면이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

진수(真修)제자로서 우리는 반드시 비할 바 없이 바르고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해 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만약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남들을 볼 면목이 없는 심사(心思)가 있다면 수련은 말할 필요도 없고 거대한 업(業)을 지어 결국에는 고통 속에서 스스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