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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을 대처하는 두 가지 이야기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어느 집단이든 늘 모순에 직면하면 자신이 억울하거나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아래에서 내 주변의 동수 갑과 을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동수 갑(甲)은 학력도 높고 능력이 강하며 개성도 강했다. 그는 전에 모(某) 항목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는데, 모 책임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여겨 오랫동안 불만을 품었다. 또한 일부 지역 동수들로부터 특무라는 의심을 받자 장기간 넘기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하소연하며 일부 사람들의 동정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전에 마찬가지로 환경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 갑의 하소연을 경청하고 공감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매우 미안하고 죄송하다. 관건은 구체적인 일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누가 일리가 있고 누가 일리가 없는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시아버지에게는 시아버지의 이치가 있고 시어머니에겐 시어머니의 이치가 있다”는 속담처럼 어떤 일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다른 한편 수련인으로서 불공정과 억울함을 대하는 방식은 대법의 가르침에 따라서 해야 한다. 걸핏하면 《귀주 이야기》처럼 ‘공평’을 요구하며 도처로 다니며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역주: 《귀주 이야기》는 국내에도 개봉된 적 있는 중국 영화로 남편이 마을 이장에게 맞아 억울한 일을 당하자 부인인 귀주가 도처로 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결국 북경까지 올라가 소송을 건다.]

법에서 우리가 이해하다시피 모순은 모두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생생세세(生生世世) 업력은 사부님께서 대부분 가져 가셨지만 남은 것들은 무수한 부분으로 나뉘어 각종 난(難)으로 표현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업력을 없애는 동시에 심성을 제고한다. 이런 것들은 본래 모두 우리 자신의 난으로 절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빚을 졌으면 그래도 갚아야 한다. 역사상 우리가 누구를 해친 것과도 관련이 있는데 스스로 고통을 참고 상대방을 선하게 대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빚을 갚을 뿐만 아니라 심성도 제고되는 것으로 우리 수련의 길에서 없어선 안 될 한 걸음이다. 만약 우리가 억울한 일을 만나기면 하면 곧 원망하고, 불공평한 일을 만나기만 하며 하소연한다면 그럼 또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나중에 나이가 많지 않던 갑 동수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우리는 너무 뜻밖이라 놀랍고 또 슬펐다.

이번에는 을(乙) 동수를 말해보자. 을 동수는 아주 온화하고 사람들에게도 아주 겸손하고 선량하다. 반면 그의 아내는 아주 강퍅하고 사당(邪黨) 거짓말의 영향을 받아 대법을 반대하고 아들이 대법을 접촉하지 못하게 막았다. 을 동수는 그런 아내와 다투지 않았고 심성을 아주 잘 지켰다. 또 을 동수가 어느 항목에서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중국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누군가 특무라고 의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항목을 떠나야 했다. 내 기억에 을 동수가 이 일을 말할 때도 그는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저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여전히 심성을 잘 지켰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그의 아들이 출국한 후 아주 빨리 법을 얻었고 또 아주 정진하는 소제자(小弟子)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았는데 이는 을 동수가 수련에 소질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내가 관찰해 보니 갑 동수와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쟁투심이 아주 강해서 매사에 옳고 그름을 다투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감당하지 못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더욱 원한을 품고 도처로 다니며 “공정한 처리를 요구한다.” 어떤 이는 심지어 사부님 설법에도 불구하고 SNS에 “불평”하고 지지와 이해를 구한다. 이때문에 대법을 모르는 속인들에게 대법 수련단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주었고 대법의 명성을 심하게 파괴했다. 이런 사람들 중 일부는 처음에는 특정한 한 동수에게 불만을 품는데, 나중에 그 동수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평하고 더 나아가 대법 수련단체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 일단 터지기만 하면 수습할 수 없는데 대단히 위험하다.

나도 과거에 갑 동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면 불평했고,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서로 이해하고 지지하며 따뜻한 관계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는 대법을 크게 벗어난 행동이다. 내가 인식한 것은 단지 행동만 이렇게 해선 안될 뿐만 아니라 내심으로 그 누구에게도 대립하거나 저촉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고인(古人)이 말하는 “역경이 닥치면 순응하라”, “원한은 마땅히 풀어야지 맺으면 안 된다”거나 “덕(德)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등등은 바로 모순을 대하는 좋은 처방이다. 맞서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순응하는 심태로 선량하게 포용하고 양해하면서 이렇게 원한을 선해(善解)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고인보다 더 잘해야 하며 당 문화의 투쟁철학으로 모순을 대하지 말아야 한다.

작은 깨달음을 나누고자 하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