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꿈속의 한 장면을 통해 나는 첫 일념이 자신을 찾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꿈속 장면은 이랬다. 한 동수(몇 년 전 이 동수를 만났을 때 속인 오락에 빠져 상태가 좋지 않았음)가 택배를 받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한 것은 그가 받은 택배는 온라인에서 삭제된 제품인데 마치 그더러 수리하라는 것 같았다. 한 목소리가 온라인에 이렇게 삭제된 제품이 백 개가 있다고 말했다.
장면이 바뀌면서 남편이 보였다. 이때 한 여자가 마치 출근 연락을 받은 것처럼 큰 소리로 남편에게 온라인에서 삭제된 제품 사진을 찍어 수리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옆에 서서 남편에게 사진을 찍으러 가지 말라고 알려주었지만 남편은 마치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카운터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카운터 주변에 50대 여성 4~5명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손으로 남편의 우측 뺨을 만졌다. 비록 꿈속임에도 그녀의 분홍색 물을 들인 손톱이 선명하게 보였다. 꿈속에서 남편은 거부하지 않았다. 남편의 뺨을 만진 여성이 도발적이고 시위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나는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외부인처럼 거기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주변의 여러 여성들이 계속 남편을 희롱했지만 그는 마치 포위된 것처럼 저항하려는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저 그곳에서 “웃으며” 서 있었는데 얼굴마저 변형되었고 웃음소리도 아주 이상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이 꿈이 무엇을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아직 어떤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 걸까 아니면 남편(동수)이 수련을 게을리한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1]
법과 대조해 보니 자신의 많은 부족을 발견했다. 연공에 게을러 늘 각종 구실을 찾아 견지하지 못했고 또 정(情)이 아주 무거워서 무엇이든 내려놓지 못했으며 가상의 표면을 크게 보고 중시했다. 때로는 또 가상을 따라갔으며 부딪힌 모순이나 나타난 문제에 대해 선의(善意)와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단순하고 거칠었으며 관념에 따라 판단하고 처리했다.
남편의 수영 사랑을 예로 들자면, 나는 줄곧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우선 연공인 중에 이렇게 수영에 집착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게다가 노천에서 수영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도 않고 또 일부 불안 요소도 있다. 게다가 수영이 그를 더 늙어 보이게 만들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대법제자의 이미지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더러 야외에 나가서 수영하지 말라고 권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고 늘 수영을 하러 나갔다.
나는 늘 그의 사람 표면에만 힘을 들였고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 배후(背後)에 있는 사악의 요소는 무시했다. 때문에 비록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상을 개변할 수 없었다. 사실 그가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 첫째, 내 말투에 선심(善心)이 부족하고, 둘째 너무 강한 집착이 다른 공간에서 마치 장벽처럼 형성되어 그의 명백한 일면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가 다른 사람의 권고를 듣지 않고 수영하러 가거나 또는 평소대로 하는데 마치 그에게는 모든 점화가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이런 집착을 보고 나는 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하지만 반대로 보자면 내가 그의 수영에 대해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오늘은 그가 나갔을까, 위험하진 않을까 인데 사실 우리는 이미 사악의 함정에 걸려들었고 그 속에 얽혀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닦아버릴 것이 있으니 누구를 보았든 먼저 자신을 찾아야 하며 무조건 자신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정(情)에 이끌릴 때, 관념에 좌우될 때면, 가상에 미혹되어 눈앞의 가짜 현실을 중시할 뿐 법의 기점에 서서 대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외래적인 요소가 없다면 사람이 감히 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류사회의 표현은 다만 고층생명의 조종으로 조성된 것에 불과할 뿐이다.”[2]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 표면의 가상을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바르지 못한 상태가 있는 것은 다른 공간에서 사악한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마땅히 사부님께서 주신 신통(神通)을 사용해 다른 공간의 교란 요소를 해체하고 소각해야 한다. 이 역시 조사정법(助師正法)의 한가지 체현이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렸고 상태가 늘 사람 속에 빠져 사람 생각과 사람의 정으로 대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 이곳의 가상이 끊임없이 나타난 것이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일깨워, 나로 하여금 자신의 많은 부족을 보게 하셨고, 나의 신(神)의 일면이 주도하게 하셨으며 제자를 가지(加持)해 법으로 자신을 대조할 수 있게 하셨다. 제자의 첫 느낌은 첫 일념(一念)이 자신을 찾음은 단호해야 하며, 정마(情魔)와 가상에 미혹되거나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하고 깨끗하며 명백하게 수련하면 자신을 잘 닦는 동시에 환경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안으로 찾음은 진정한 법보(法寶)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삼계(三界)라는 이 미혹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대법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은 아주 중요하며 곳곳에서 늘 드러난다. 우리는 이렇게 드러나는 가운데 수련해야 하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이끌고 대법으로 가늠하게 해야 한다.
인체에는 정부(正負)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정(正)은 바로 선(善)이고 부(負)는 바로 악(惡)이다. 삼계의 오염된 인체, 관념, 업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본성의 일면을 가로막는다. 만약 법에 대조해서 자신을 찾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법으로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면 그럼 이 생명은 아주 위험하다. 법의 가지가 없기 때문에 부면(負面) 생명에게 통제당해 법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할 수 있다.
사람과 신(神)은 일념의 차이라, 그 느낌은 마치 육신(肉身)은 사람 속에 있지만 사유(思惟)는 오히려 신(神)의 상태이며, 진아(真我)가 일체를 주도하고, 육신은 단지 표면의 운반체일 뿐이다. 모든 가상은 다 잘 닦아내지 못한 마음과 관련이 있다. 수련은 마치 위성을 발사하는 것과 같아서, 위로 비행할 때 끊임없이 불필요한 부하(負荷)를 제거해야만 최후에 예정된 위치로 날아갈 수 있다. 사람의 수련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법에 대조해 집착을 제거하면서 부패한 관념을 버려야만 선천의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작은 수련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법 중에서 정념을 갖고 사람 마음을 갖지 말라》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2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