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객(過客)
【정견망】
매년 음력 칠월 보름이면 중국의 중요한 전통 명절의 하나인 중원절(中元節)이다. 이 날은 원래 도교(道敎) 축제였지만 나중에 불교가 전래된 후 중국 전통문화와 통합되면서 그들이 망령(亡靈)을 초도(超度)하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을 이 날로 정했다. 민간에서는 흔히 귀신절(鬼節), 망인절(亡人節) 또는 칠월 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 중원절은 조상에 대한 제사와 은혜에 감사드리는 이중 기능을 수행하는데 그 정신적인 핵심은 바로 효(孝) 문화다. 또한 중국 전통 민속 명절 중에서 특별한 존재가 되어, 중국인들이 돌아가신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효경(孝敬)과 추모를 표현하는 중요한 명절이 되었다.
사실 중원절의 원래 의도는 망령을 초도하고,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인데, 원래 도교나 불교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그들은 수련(修煉)인데 수련이란 속세를 멀리 벗어나 출가해야 하며 출가한 후에는 가족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 이는 사람 마음을 최대한도로 내려놓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는 승려가 출가한 후 새로운 법명으로 불리면 가족이 만나러 와도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수행자가 승려가 되면 가족이나 부모와의 모든 인연을 끊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상 숭배나 효도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비심에서 우러나와 중생의 고생을 발견했기에 그들을 고해(苦海)에서 구도하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망령을 초도하는 것이다.
지금의 과학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수련계 고인(高人)은 사람이 죽은 후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부 대담한 과학자들은 일찌감치 영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심지어 영혼도 무게가 있음을 발견했는데 사람이 사망하는 순간 갑자기 체중이 수십 그램 가벼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들의 연구는 모두 과학에 기초를 두고 있기에 돌파구를 찾긴 어렵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이미 생명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영혼을 삼혼칠백(三魂七魄)으로 귀납시켰는데, 여기서 삼혼이란 바로 천혼(天魂), 지혼(地魂), 인혼(人魂)을 말한다. 천혼은 사람이 죽은 후 위패나 조상의 사당으로 돌아가고, 지혼은 죽은 후 명부(冥府)에 가서 심판을 받은 후 육도윤회로 들어가고, 인혼은 시신을 따라가기에 시신이 사라지면 그도 따라서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망령을 초도할 때 초도하는 대상은 바로 이 인혼(人魂)이다. 전란(戰亂)이나 다른 이유로 타향에서 사망하면 흔히 갈 곳이 없으며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공간에서 떠돌아다닌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이 귀신을 본다고 하는데, 그 귀신의 외형은 흔히 얼굴이 피투성이고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등 아주 무서운 모습이다. 바로 이런 생명체를 본 것이다. 그들이 죽을 때 신체가 훼손되고 죽은 후에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고인(古人)은 온전한 시신을 남기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인혼은 시신을 따라가기 때문에 고인은 또 시신의 보존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진시황(秦始皇)은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수은을 사용했고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도 이 혼령(魂靈)이 사라지지 않도록 미라에 대한 방부 처리를 발명했다.
사람의 인혼은 그의 시신을 따라 가지만 혼령의 신체는 햇빛을 볼 수 없으며 강렬한 빛을 보면 녹아버린다. 설령 일반적인 밝은 등불도 안 되는데 인혼에 대해 말하자면 일종의 고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시신을 땅에 편안히 안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람에 대한 가장 큰 징벌이었다.
정신 분열증과 같은 인류의 일부 질병은 유혼(遊魂)과 관련이 있는데 이들 방황하는 영혼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생겨서 사람 몸에 달라붙어 사람의 뇌를 통제할 수 있다. 그럼 이 사람은 그 혼령으로 변하며 성격도 바뀌고 발음도 변하며 심지어 배운 적도 없는 외국어를 말할 수 있다.
물론 아무런 이유가 없을 수는 없으며, 사람은 모두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이 있고, 여기에 전생의 업력 등이 더해지면 이런 것들을 끌어들이기 쉽다.
중국인들은 조상 제사를 중시하고 무덤에 가서 지전(紙錢 종이돈)을 태우는데 바로 이 인혼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다. 그 목적은 조상의 보호를 구하려는 것이다. 이쪽에서 태운 물건은 즉시 저쪽에서 나타날 수 있고 지전은 또 저쪽에서 사용하는 화폐로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조상 제사는 효과가 있는가?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가 저쪽에서 후손의 향불을 받으면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생기고 집(무덤)도 돌보는 사람이 생긴다. 그는 곧 저쪽의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써서 가급적 후손의 이익을 지켜준다.
사람이 어느 집안에 출생하면 그 가족과 연계가 생긴다. 만약 조상이 아주 선량한 사람이라, 덕(德)을 쌓는 일을 많이 했다면, 이렇게 쌓인 덕이 사람의 원신(元神)을 따라가는 외에 또 일부분을 후손에게 남길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조상의 음덕(蔭德)이자 조상이 쌓은 덕이다.
또 어떤 사람이 큰 악인이라 나쁜 일을 많이 했다면, 업력을 많이 쌓게 되고 그 자신의 원신이 가지고 가는 외에 또 일부분을 후대에 남겨 자손에게 재앙이 미칠 수 있다.
지금 어떤 병은 치료가 어렵고 설사 치료해도 잘 낫지 않으며 또 치료 되어도 금방 재발하는데 바로 유전병이다. 그것은 조상이 잘하지 못해서 남긴 업력 때문에 생긴다. 병의 뿌리가 이쪽 사람 몸에 있지 않고 조상 저쪽에 있어서 다른 공간에서 수도관처럼 연결되어 있어 꼭지를 틀기만 하면 오기 때문에 이쪽에서 아무리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다.
이 업은 본인의 업력이 아니라 조상의 업력이다. 그렇다면 이는 불합리한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아니다. 조상 중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지은 업을 일세(一世)에 다 갚을 수 없으면 생생세세(生生世世) 갚아야 한다. 자신이 다 갚지 못하면 그럼 자손도 갚아야 한다. 당신이 이 집에 태어난 것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마 전생에 이 집안에서 혜택을 받았는데 다 갚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럼 다시 이 집에 태어나 그들을 대신해 업을 갚는 것이다.
따라서 나쁜 짓을 하면 정말로 가족과 후손에게 재앙을 줄 수 있다. 반대로 큰 선행을 하면 가족과 후손들에게 복을 가져다준다.
흔히 유전병은 남성에게만 전해지고 여성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현대 의학에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명확히 설명할 이론은 아직 없다. 근본 원인은 흔히 아들이 가족의 상속자가 되기 때문에 업력 역시 아들이 이어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생의 부귀와 가난은 전생에 자신이 한 일이나 또는 조상이 한 일과 관련이 있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 저승에서 돈이 있고 없고는 자손이 그를 위해 지전을 태우는가 여부에 달려 있고, 우리가 금생에 돈이 있고 없음은 자신이 전생에 덕을 쌓았거나 또는 조상이 덕을 쌓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전생에 덕이 큰 사람은 조상이 덕을 많이 쌓은 집안에 태어나도록 배치되고, 전생에 덕이 부족한 사람은 조상이 덕이 부족한 집안에 태어나도록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대덕지인(大德之人 큰 덕을 지닌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자수성가해 큰 부자가 되기도 한다. 또 덕이 없는 사람이 부잣집에 태어나 먹고 마시고 매춘과 도박을 일삼다 가산을 모두 잃고 결국 타향에서 굶어 죽어 고혼야귀(孤魂野鬼)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인류 공간은 야외(野外)에서도 때로 야생 과일을 찾아서 먹거나 작은 동물을 사냥할 수있다. 그러나 고혼야귀가 있는 그 공간은 아주 황량하고 거의 아무것도 없어서 그쪽의 음식은 전부 인간 세상에서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것에 의지한다. 누군가 더 많이 받으면 저장했다가 시장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도 있다.
우리 우주 공간은 너무 많아서 공간마다 각기 다른 규칙이 있다. 그들의 그 공간이 이렇게 설정되어 있다면 인간 세상의 후손들이 그들에게 태워주는 물건에 의지해야 한다.
우리 인간 세상은 미혹이라 대부분의 사람이 무엇을 얻으려면 노동에 의존해야 하는데, 많이 일하면 많이 얻고, 일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등가교환(等價交換)이다. 천상의 생명은 위덕이 커서 그곳에는 겪을 고생이 없으며 무엇을 생각만 하면 곧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면 자신이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가소롭기 그지없다. 저쪽의 부처님이 당신 속인의 공양을 원한단 말인가? 아무도 공양하지 않아도 그의 세계에는 여전히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오직 이런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탁자 위에 과일을 놓으면 부처님의 법신은 저쪽에서 받는다. 그가 먹는 것은 과일의 그쪽 공간의 몸이다.
사람의 망령은 공양하는 사람이 없으면 고통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통상 반 달에 한 번 먹는다. 때문에 민간에서는 흔히 초하루와 보름에 조상 제사를 지낸다. 저쪽에 대해 말하자면 마치 축제처럼 활기가 넘친다. 아무도 제사를 올리지 않는 고혼야귀는 굶어 죽지는 않지만 그래도 굶으면 괴롭고 또 갈수록 더 마른다.
그러므로 중원절에 망령을 초도하는 것은 바로 망령을 너무 고통 스럽지 않는 다른 공간으로 보내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망령을 초도하는 중원절의 본래 의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조상 제사와 효도라는 문화적인 내함이 추가된 데에도 역시 이유가 있다. 사람이란 이러한데 자신에게 절실한 이익이 있어야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전승하려 한다. 조상에게 제사 지내고 노인에게 효도하는 것은 그가 승인하든 하지 않든 후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다.
수련 중의 사람은 조상 제사와 효도를 말하지 않는데 그의 심법(心法)이 그들의 표준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수련에 입문하면 그의 조상 저쪽에서는 얼마나 큰 영광인가?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며 자발적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다. 왜냐하면 장래에 만약 이 사람이 정과(正果)로 수련 성취되면 그의 조상들이 모두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도(道)를 얻으면 그가 키우던 닭이나 개마저도 승천할 수 있다. 연분이 큰 사람은 심지어 직접 그의 세계에 가서 중생이 되어 영원한 천복(天福)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기초는 이 사람이 수련해서 정과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다. 지금 일부 수련인들은 늘 시간이 아직 충분하다고 여겨 자신의 집착을 천천히 제거하거나 다음에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제거하지 못하면 다음에 누적되어 쌓이고 다음에 누적되어 쌓이면 난관이 더욱 커져서 더욱 넘기 어려워지며 최종적으로는 수련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고생을 겪었으니 최후 시각에 절대 나태해져서 자신을 훼멸하진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