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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의 중요성을 다시 말하다

산동 대법제자 부일신(復一新)

【정견망】

수련 전 나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자 좋은 교사였다. 수련 후 수구(修口) 방면에서 표현된 것은 바로 자신의 입을 단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크게 꾸짖다(猛喝)》에서 “당신의 입을 잘 단속하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26년간 수련해 왔음에도 아직까지 자신의 입을 잘 단속하지 못했다.

최근 법(法)을 외우면서 수구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을 떠올리고, 자신을 깊이 찾아보니, 나는 아직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수구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동수들끼리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눴고, 특히 집착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과시하길 좋아했으며, 때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일부 골목 소식을 전했고, 배후에서 속인의 시시비비를 논하기도 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수구〉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일반적인 것을 말해 보자.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고 하고, 지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면,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은 모두 매우 복잡한 것으로서, 무의식중에 업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이해할 수 없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 누구도 겨냥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내가 뭘 해야겠다거나 또는 이 일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도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사부님의 설법을 중시하지 않았고 말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입을 단속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속인 중의 일은 단지 그런 일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종래로 논평(評論)하지 않는다.”(《전법륜(권2)》〈사람을 제도함에 설법하지 연출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특별히 드러난 것은 평소 자신의 수행(修行)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법(法)에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 나는 자신이 말을 잘하고 어디를 가든 인기가 많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련했음에도 실제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나는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수련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일부 동수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늘 동수들을 평론하길 좋아했는데 마치 속인 사회에서 사람의 그런 나쁜 습관처럼 당신이 그를 말하고 그가 당신을 말했다. 비록 말한 것이 수련 중의 일이라 해도 사실 뼛속에서는 정말로 동수의 제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 감정의 발산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당신들이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의논할 때 신마저도 옳게 보지 않는다.”(《각지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 회의 설법〉)

그렇다! 내가 어디 대법제자다웠는가? 이런 과시심과 남의 스승이 되길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평론한다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안으로 찾아보니 나는 여전히 심각한 당문화가 존재했고 특히 배후에서 남을 말했다. 늘 자신의 수련이 남보다 낫다고 여겼고,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의 문제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련인의 실제 상황은, 사부님 외에는 그 누구도 그것을 통찰하고 똑똑히 알 수 없다. 정말로 우리더러 동수의 집착을 보게 했다면, 이 역시 사부님의 안배이니 쌍방이 모두 제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정말로 동수의 제고를 돕기 위해서라면 물론 동수 본인에게 선의(善意)적으로 진심으로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정말 동수를 돕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동수를 배후에서 담론한다면 이는 선(善)이 아니며 마성(魔性)이 장난을 친 것으로 스스로 구업(口業)을 지을 수 있다. 때로 동수의 집착을 보면, 사실 바로 자기 집착의 반영이자 체현이다. 만약 이를 인식할 수 있고 안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곧 자신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수련할 수 없다면 자신을 제고할 수많은 기회를 놓쳐버릴 것이다.

한번은 딸과 한담을 나눴다. 처음에는 주로 딸의 업무 관련 일부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사가 어떠어떠하다는 말을 들었다. 본래 나는 수련인이라 이 일에 대해 비평하지 말아야 했지만, 당시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고, 자신도 모르게 담론하기 시작했다.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 바로 당 문화의 표현이다. 수련인은 마땅히 배후에서 다른 사람을 담론해선 안 된다.

그날 밤 저녁을 먹은 후 왼쪽 아래 치아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통증을 참으며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안으로 찾아보니, 자신이 오늘 딸과 수다를 떨면서 배후에서 남을 험담하고, 수구하지 않았고 자신의 요 입을 잘 단속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때 마침 발정념 시간이 되었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속으로 즉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했고 동시에 일념(一念)을 내보내 나를 교란하는 다른 공간의 일체 사악한 요소를 청리하고 내 공간장에서 구세력의 사악한 요소를 철저히 제거했다. 이때 치아가 곧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이번 교훈은 지나갔지 만 나는 여전히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못했고 수구하지 못한 원인을 깊이 분석해보지 않았다. 때문에 지나간 후 또 오래된 문제가 나타났다.

최근에 또 수구 방면에서 잘하지 못해 또 왼쪽 아래 치아 두 개가 아팠고 치근(齒根 이뿌리)에서 나쁜 것이 흘러나왔다. 나는 또 자신이 수구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세력이 다시 구실을 잡았음을 알았다. 나는 곧 안으로 찾아보니 최근 집에 가서 딸과 모모(某某) 노인을 담론했음을 알았다. 그가 가족 중 누구와 어떻게 화합하지 않았고,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면서 나는 딸을 포용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등등. 또 조카가 밖에서 어떻게 행동했고, 조카사위가 조카가 하루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게 놔두면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도 했다. 이것이 뒷담화가 아닌가?

수구 문제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미 아주 명백히 말씀하셨지만, 현재까지 나는 아직 잘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사부님께 부끄럽다.

앞으로 나는 결심을 내리고 당 문화를 닦아버려야 하며 오직 안으로 찾고 자신의 그 마음을 닦아 마음공부에 공력을 들이고 그 마음을 제고해야만 진정으로 제고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배후에서 남을 말해선 안 되며 수구(修口)하지 않으면 곧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는 것이다.

내가 수구를 하려면 우선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한 진정한 수련자가 되려면 태도가 늘 진솔하고 겸손하게 남을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쉽사리 반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경청하지 못하면 수구도 할 수 없다. 만약 자신이 수구에 주의하지 않으면 곧 아주 많은 업채(業債)를 지을 수 있다.

마치 한 동수가 말한 것과 같은데 “사실 수구하지 않으면 자기 수련의 길에 구덩이를 파는 것으로 조만간 자신이 스스로 판 구덩이에 묻히게 된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고 수련은 바로 자신을 닦는 것이니 수련인은 반드시 수구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작은 체회(體會 직접 몸으로 겪은 깨달음)이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