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어려서부터 남의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을 형성했다. 처음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사천(四川)에서 북경으로 전학을 왔는데 보통화(普通話 북경식 표준어)에 익숙하지 못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자상한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자 나 역시 표현을 잘해서 그녀의 칭찬을 받으며 나의 고독한 마음을 따뜻하게 하려고 기대했다.
이후 인생에서도 나는 늘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남들의 칭찬을 기대하는 사고방식을 반복했다. 늘 어린이와 약자 입장에 서서 남들(내 마음속에서 선생님이나 어른으로 보이는)로부터 인정과 긍정·칭찬을 기대한 것 같다. 배후에는 여전히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심태가 무심코 드러났는데, 최근에 나는 이 마음을 이미 없앴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야 여전히 매우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한 친한 동수와 같이 소통하면서 또 이 마음이 완전히 표현되었다. 본래 마땅히 발정념을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고요해지지 못했고 상대방과 일부 정보를 공유하려는 조급한 마음에 계속 문자를 보냈다. 일종의 흥분과 기쁨이 있었고 배후에는 상대방의 감사와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예전에 흔히 동수들과 다투거나 논쟁하면 나중에 기본적으로 이런 마음을 제거하고 다시 동수들과 소통할 때면 비교적 평화로웠다. 하지만 의외로 실제로는 여전히 일종의 기대가 있었다. 즉 동수들이 내 변화를 주목해서 나를 칭찬하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아들과 대화할 때도 아들이 나를 인정하고 나더러 진보했다고 말해주길 기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가소롭다.
대법 활동에 참여한 후 주동적으로 동수들과 함께 현수막을 거뒀는데 역시 잠재의식 속에서 남들의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대법제자들이 꾸린 토론방에서 진상을 알리고 관리자와 교류할 때도 상대방의 인정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실 누구도 누구를 알 수 없고, 누구도 남이 어떻게 하는지 관심이 없다. 나의 이런 생각은 정말이지 자신을 너무 중시한 것이자 또한 아주 우스운 일이다.
이런 심태는 무심코 자신을 마치 꽃처럼 여기면서 약자(弱者)이자 의존하는 위치에 놓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칭찬, 인정, 사랑, 따스함을 구하는 것이다. 내면에는 또 나르시시즘도 있다.
이러한 심태는 또 과거에 바르지 못한 남녀 관계를 겪었던 핵심적인 원인의 하나인데, 마치 사람에게 의지하는 작은 새처럼 상대방으로부터 애지중지하고 보호받으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었다.
대각자(大覺者)는 모두 중생을 위해 감당하며 사랑과 선심(善心), 자비가 있는 것으로 어디 나와 같은 심태를 갖겠는가?
지금 나는 칭찬, 찬양, 긍정, 인정을 받을 때 내심으로 경계해야 하고, 환희심을 내지 말아야 하며, 팽창하지 말아야 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평소에도 잠재의식에서 이런 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에서 말씀하셨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
또 《전법륜》〈제6강〉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층차(低層次)의 수련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란 아주 어렵다. 스승이 어떠한지 당신은 아마 똑똑히 보지 못할 수 있다. 갑자기 그 어느 날 당신은 한 높고도 큰 대신선(大神仙)이 온 것을 보게 된다. 이 대신선은 당신을 두어 마디 칭찬해 준 다음,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좀 가르쳐 주는데, 당신이 또한 가진다면 당신의 공은 곧 난잡해진다.”
법(法)에서 내가 이해한 것은 만약 찬양과 칭찬에 이끌리고 마음이 움직인다면 해로움이 심각하다.
작은 소감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