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黎明) 취재
【정견망】
들어가는 말
2002년 4월 20일 저녁 7시, 중국 북부 흑룡강변 국경지대에는 이미 수많은 불빛이 켜졌다. 비록 추운 겨울은 지나갔지만 아직은 여전히 추웠다. 많은 가족들이 TV를 보면서 저녁 식사를 하며 가족이 함께 모이는 단란하고 따뜻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TV에서 《분신자살인가 사기극인가》와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는 동영상이 나왔다.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내용이 즉시 수많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중공 깡패 집단의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했던 시기, 장춘(長春) 수련생들이 TV에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삽입 방송에 성공한 후, 중국 대륙 여러 지역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뒤를 이었다. 강택민(江澤民 장쩌민) 범죄 집단의 거짓말과 기만에 속아 넘어간 국민들에게 대한 진상 삽입 방송으로 자비롭게 구도했다.
흑룡강성에서도 하얼빈, 가목사(佳木斯), 대경(大慶), 쌍성(雙城), 학강(鶴崗), 쌍압산(雙鴨山), 치치하얼, 목단강(牡丹江), 계서(雞西) 등 9개 도시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동일한 시간에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영상을 삽입 방송했다. 어떤 곳은 20분 이상 방영했고 어떤 곳은 30분 방송했으며 가장 긴 곳은 75분을 방송했고, 일부는 방송에 실패했다.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사건》의 느린 화면은 소위 ‘분신자살’ 현장의 각종 허점을 폭로해 진실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분신자살’한 유춘령(劉春玲 류춘링)이 현장에 있던 군인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느린 화면은 사람들에게 중공 사악 집단이 사람을 죽이고 파룬궁에 책임을 전가해 사람들을 속인 진면목을 아주 똑똑히 보여주었다. 진상 삽입방송은 민중들을 일깨워주었고 만천하에 거짓말이 드러나게 했으며 사람들은 거대한 충격과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앞서 3월 5일, 장춘 파룬궁 수련생들이 삽입 방송에 성공한 날 저녁, 사악한 중공 두목 강택민은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몇 분간 온몸을 떨더니 탁자를 내리치며 비서에게 소리를 질렀다.
“증경홍(曾慶紅 쩡칭훙)과 나간(羅幹 뤄간)을 불러와. 당장 오라고 해!”
비서는 그가 종종 미친 듯이 화를 내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이렇게 이지를 잃고 광적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간이 길림성에서 삽입방송을 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강택민이 수시로 끼어들며 소리를 질렀다.
”전체 공안 간부들에게 알린다, 삽입방송을 하는 파룬궁 인원을 발견하면 즉시 총으로 쏘아 죽여라. 죽여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반드시 일주일 내에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장춘 경찰이 즉시 미친 듯이 날뛰며 5,000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체포했다.
사악의 우두머리 강택민은 진상이 계속 퍼질 것이 두려워 또 다른 사악한 명령을 내렸다.
“각지에서 유사한 TV 삽입 방송 사건이 발생하면 엄중히 처벌하고 관용을 베풀지 마라.”
이 사악한 명령 아래, 전국 각지에서 진상 삽입방송을 했던 파룬궁 수련생들은 “실수로 5천 명을 죽이더라도 단 한 명도 놓아주지 말라”는 광란 속에 체포되어 온갖 심문과 자백을 강요당했고 고문을 당하거나 잔인하게 살해되거나, 형사 판결이나 노동 교양에 처해졌다. 그러나 대법도(大法徒)들은 마난 속에서도 산처럼 굳센 믿음으로 중생을 구하고 도의를 지켰으며 생사(生死) 앞에서도 그 뜻이 흔들리지 않았다.
본문의 주인공 왕옥광(王玉光 왕위광)은 다른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처럼, 수련을 통해 생명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순박하지만 지혜롭고 용감한 여성이다. 수련은 그녀를 기사회생시켰고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생명이 신앙을 지키고 험악에 맞서 중생을 구도하는데 두려움 없이 감당하게 했다. 장춘에서 삽입방송에 성공한 후, 도시 전역의 경찰차들이 도처에서 사람을 체포하고 있을 때, 그녀는 황민(黃敏 황민), 장충(張忠 장중)을 포함한 몇몇 동수들과 함께 하얼빈, 가목사, 대경 등 9개 도시에서 TV 삽입방송을 조직했다. 그 후 또 견정한 정신(正信) 정념(正念)으로 대법제자 속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이 글은 그 당시 생명의 과정을 재현한 것이다. 지금 이미 20년이 지났지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장쩌민 범죄 집단의 거짓말과 기만에 속아 넘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자비롭게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고 설사 9번 죽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TV 방송 중에 체포되고,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귀중한 생명을 잃은 위대한 대법제자를 기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박해에 반대하고 중생을 구도한 이름이 알려졌거나 알려지지 않은 그런 수련자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또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여전히 중국 대륙의 사악한 환경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위대한 대법제자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1. 절망 속에서 새로 태어나다
왕옥광(王玉光)은 흑룡강성 하얼빈시 출신이다. 그녀는 1994년 법을 얻어 수련한 후 가목사 시 파룬궁 보도참(輔導站 역주: 보도소보다 크며 우리식으로 하자면 총보도소에 해당)에서 소장을 맡았다. 수련 전에 그녀는 위염, 담낭염, 류머티즘, 신경쇠약 등 각종 많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매년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남편의 월급을 다 내 약값에 썼다”고 했다. 때문에 일가족의 생활도 아주 어려웠다.
왕옥광의 말이다.
“32살 때 비염에 걸렸는데 치료가 안 됐어요. 7년 뒤에는 비염이 너무 심해서 말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피곤했죠. 소리도 안 나고 목이 마르고 미각을 잃어버렸어요. 온갖 치료법을 다 써봐도 좋아지지 않았고 암암리에 점점 더 나빠질 것임을 예감했어요. 당시 저는 어린 나이였지만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으로 정신적 압박이 컸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았습니다. 1993년 여름, 금주(錦州)에 살던 여동생이 목에 혹이 생겨서 동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조직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었어요. 그것도 당시에는 아주 심각하게 여겼던 림프종 진단을 받았어요. 여동생은 수술 후 7일 만에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졌고 몸 곳곳에 덩어리가 만져졌어요. 우리 가족은 갑자기 절망에 빠졌습니다. 매부는 젊은 아내의 죽음을 견딜 수 없어 현지 병원의 도움을 받아 급히 북경 암병원으로 이송했고, 그곳에서 효과적인 치료를 받아 불과 몇달이라도 여동생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림프종이 커지면 의사든 문외한이든 알다시피, 30년 전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현대의학으로는 무기력했다. 병원 진단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그녀의 여동생이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왕옥광은 말한다.
“저는 급히 동생을 만나러 병원에 달려갔고 그녀를 위로하며 함께 지냈어요. 너무 슬픈 가운데 저도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비록 내 앞에서 절망적인 말을 하진 않았지만 처방전을 보니 모두 방사선치료 약임을 알고 두렵고 겁이 났어요. 속으로 화학요법임을 알았습니다. 의사는 비인두암 초기로 확진한 것이죠. 약을 먹을 때부터 증상은 좋아졌지만 대량으로 머리카락이 빠졌고 나중에는 약이 효과가 없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고 몸도 약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비인두 깊은 곳에서 후두부 중간까지 뭔가 원통형의 이물질이 박혀 있는 느낌이 늘 들었고, 저는 완전히 절망해서 동생과 함께 울었습니다. 그저 절망뿐이었죠. 저는 여동생처럼 나도 살길이 없고 인생의 끝이 곧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재앙은 하나씩 찾아오지 않았다. 두 자매가 잇달아 병에 걸렸고 중병에 걸린 두 사람 모두 생명이 위태로웠다. 정말 이런 불행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 후에 특히 가장 위험한 불치병에 걸렸던 여동생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당신은 또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옥광이 말했다.
“어느 날 한 친척이 여동생을 문안하러 병원에 와서 북경 제2포병 강당에서 리훙쯔(李洪志) 대사님이 파룬궁(法輪功) 설법과 학습반이 진행된다고 하면서 여동생이 참가하길 원했습니다. 선량한 의사도 여동생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가서 기공을 배워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동생은 입원 기간에 리훙쯔 대사님의 설법과 학습반에 매일 참가했습니다. 날마다 병원에서 학습반에 가서 수업을 듣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죠. 10일 학습반 중에서 사부님께서 그녀의 신체를 청리해 주셨죠.
의사는 동생이 날마다 혈색이 좋아지고 정신도 좋아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이는 초상적인 이치이고 불가사의한 현상이라며 신체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여동생의 몸에 있던 암세포가 이미 대부분 사라졌고 극히 일부만 남아 있었으며 온몸의 혹도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죠. 그야말로 기적이었습니다. 의사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런 상황은 이전에 본 적이 없으며 현대 실증 의학의 법칙과 인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어서 여동생은 또 리훙쯔 사부님의 다음 학습반에 참여했습니다. 이때 여동생은 몸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는데 병이 나았고 힘이 생겼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완전히 건강해졌습니다. 학습반이 끝난 후 여동생은 퇴원을 요구했고, 의사는 다시 종합 검진을 실시했죠. 결과는 또 다시 의사와 병원 및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여동생 온몸의 암세포가 다 사라져서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죠. 곧 죽을 것 같았던 사람의 회복이 너무 빨라서 믿기 힘들었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차례로 찾아와 물어보았고 그들은 모두 파룬궁이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으며 진선인은 사람들에게 선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감동하고 찬사가 끊이지 않았으며 의사, 친척, 친구들이 잇따라 파룬따파 수련에 입문했어요.
여동생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기적처럼 신기하게 회복되자 저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고 여동생을 구해준 리훙쯔 대사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이 때문에 삶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했고 리훙쯔 대사님의 설법 전수반에 참가할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1994년 4월 초, 마침내 리훙쯔 대사님이 금주(錦州)에서 설법 학습반을 개최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4월 3일, 나는 학습반에 참석하기 위해 가목사에서 금주까지 차로 11시간을 이동했습니다. 가는 길에 줄곧 기대와 기쁨, 또 생명을 다시 얻고 싶은 동경을 느꼈으며 내 마음속으로 사부님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아주 특이한 반응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 나지 않던 땀이 갑자기 나기 시작했고, 특히 손을 씻은 후에도 계속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동생이나 친척한테 이런 상황은 사부님께서 내 몸을 청리해 주시는 것이란 말을 듣긴 했지만, 아직 학습반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신체 청리가 시작된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이 공법(功法)은 그야말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94년 4월 5일 저녁,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고 사부님의 법리는 구절마다 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동안 살면서 해결하지 못했던 숱한 의문들이 리훙쯔 사부님의 설명을 통해 아주 명백해졌고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대법이었죠! 저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마음을 써서 들었고 병을 고치러 학습반에 왔다는 생각을 내려놓았습니다. 10강의 수업을 듣고 나서 나는 이는 일반적인 기공이 아니고 또한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불교나 도교가 아님을 알았는데 파룬궁은 사람을 구하는 공법으로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문득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여러 차례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인류는 장차 큰일이 발생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사람을 구하는 법이 나타날 것이다.’
또한 내 또래 사람들은 법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 법을 얻는 사람은 아주 복이 큰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단번에 명백해졌어요. ‘그렇구나!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이 분명 이 파룬따파로구나!’ 나는 몹시 감격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온 마음을 다해 수련하기로 결심했어요.
10일간의 학습 기간에 사부님께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체를 정화해 주셨고, 다년간 앓았던 모든 질병이 모조리 사라졌어요. 어느 날 갑자기 비인두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고, 마치 어떤 손가락이 비강과 머리 뒤쪽 깊숙한 곳에서 “쿵쿵”하면서 계속 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지만 무슨 일인지 몰랐고 그저 이런 이상한 느낌밖에 느끼지 못했죠. 잠시 후 “꾸르륵”하더니 갑자기 비인두에서 어떤 물건이 굴러 나와서 손에 뱉었습니다. 새끼 손가락 크기의 황토색의 타원형 물체가 확연히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좁쌀 크기의 입자들이 쌓여서 생긴 것인데 나는 단번에 사부님께서 내 비인두에 있는 암을 밀어내 나더러 뱉어내게 하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비인두의 이물감이 사라졌죠. 세상에! 저는 깜짝 놀랐고 또 흥분되고 감동했습니다! 그 심정은 말로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데, 절처봉생(絕處逢生 역주: 절체절명의 위기나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다.)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았지만 정말로 확실한 것으로 우리 자매는 구도받았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렸습니다! 파룬따파는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고, 저는 자신이 대법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구해주신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저와 여동생 모두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가족과 여동생 가족뿐 아니라 우리 온 집안이 다 생명이 구원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행복에 젖어 있었죠. 남편은 제 몸이 완전히 건강해져서 종양까지 뱉어낸 것을 보고 몹시 기뻐했으며, 또한 제가 명랑하고 선량하며 온유하게 변했고 매사에 더는 자신과 다투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남편은 아주 기뻐했고 성심성의껏 제 수련을 지지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일 연공할 때마다 커다란 광환(光環)이 제 앞에서 회전했는데, 때로는 내가 비할 바 없이 거대해져서 천지에 우뚝 서서 파란 공과 같은 지구를 발아래 둔 것 같았어요. 저는 진실로 사부님의 격려와 대법의 신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왕옥광 자매의 생명의 기적은 주위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었으며, 그 후 그녀 주변에서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성(省) 수도에 가서 등록했다.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서로 이 신기하고 고덕한 대법을 전했고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며 머지않아 도시 곳곳에 파룬따파 연공장이 생겼다.
그때 이후 왕옥광과 같이 법을 얻은 몇 사람이 가목사 시 대법 보도참(輔導站)에서 협조업무를 맡아 자발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다. 나중에 그녀는 하얼빈시로 이주했고 계속해서 2014년 하얼빈 시를 떠나기 전까지 줄곧 하얼빈 시 대법 보도참 협조 업무를 맡았다.
2. 내가 진상 삽입 방송을 한 경험
2002년 3월 15일 저녁 8시 황금시간에 장춘 파룬궁 수련자들이 파룬궁 진상을 밝히는 《분신자살인가 사기극인가》와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등의 단편 영화를 삽입 방송하는데 성공했다. 방송된 시간은 40~50분에 달했고 32개 채널, 30만 가구에 백만이 넘는 시청자들을 커버해 사회적으로 거대한 반향과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식은 주변 성시(省市)로 빠르게 퍼졌고, 장춘에 인접한 흑룡강성 하얼빈, 가목사 등 도시의 대법제자들도 장춘 TV 삽입방송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왕옥광은 말한다.
“저는 TV 삽입 방송이 중생을 구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방식임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저는 장춘 대법제자들의 지혜와 용기에 감동받았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또 장춘 대법제자들의 압력과 그런 감당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만약 다른 지역 대법제자들이 당장 따라잡아 각자 계속해서 삽입방송을 진행한다면 그럼 사악에게 거대한 타격을 줄 수 있고 동시에 장춘 동수들의 압력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삽입방송이 한 차례 적지 않은 고험임을 알았고 경찰측의 무자비한 보복과 박해를 당할 것을 알았지만 하얼빈에서도 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곧장 한 동수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한 젊은 동수가 저를 찾아와 TV 삽입방송 일을 상의했습니다. 동시에 가목사 동수 두 명도 저를 찾아와 함께 이 일을 상의했습니다. 한 사람은 가목사 대학 전자공학과 강사인 황민(黃敏)으로 TV 삽입방송 기술과 장비 제작에 정통했고, 다른 한 명은 젊은 동수였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일치했습니다. 이렇게 정념이 강하고 기술이 뛰어난 동수들의 지지와 협력으로 우리는 큰 신심이 생겼고 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시리라 여겼습니다.
우리 넷은 삽입방송을 실제로 하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논의했으며 하얼빈에서 동시에 3곳에서 삽입방송을 하고 가목사도 동시에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또한 대경과 쌍성 두 도시도 연락했는데 대경에서는 장충(張忠)이 책임을 맡고 쌍성도 같이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황민이 필요한 재료 및 제작을 맡았고 저는 그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집을 찾았는데 각자 자신의 책임을 맡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황민이 하얼빈에서 3대의 장비를 완성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황민은 4개 도시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만들었고 또 그들을 훈련시키는 책임도 맡았습니다. 또 계속해서 일부 동수들이 장비 구입을 위해 돈을 보내왔고 인력과 자금도 빠르게 제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다음으로, 현장에 가서 삽입방송을 하기에 적당한 지점을 확인하고 안전하고 또 편리한 대피를 보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삽입 조작을 훈련했습니다. 만에 하나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조작 기술이 완벽하게 숙달되어야 연결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삽입방송 과정에 참여한 인원들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방송 전후(前後) 전원 대피시켜야 했습니다. 우리는 미리 삽입방송에 성공한 후 즉시 대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준비를 미리 해두었고, 삽입방송을 마친 후 즉시 대피하게 했습니다.
2002년 4월 20일 저녁 7시에 모든 인원이 자신의 위치에 배치되었고 하얼빈에서는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삽입방송을 실시했습니다. 그 중 두 개는 성공적으로 방송되었고 하나는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와 《분신자살인가 사기극인가》 내용이 포함된 30분 영상 전체를 방송했습니다. 이 방송은 북경 교육 계통과 직접 연결되는데 하얼빈 교육국이 북경과 연결해 시청 범위가 컸습니다. 또 다른 곳은 겨우 5분만 방송된 후 중단되었습니다.
세 번째 삽입 장소는 높은 벽 위에 있었고 돌출된 벽 중앙에 위치해 비교적 노출되어 있었는데 조작 도중 지상 안전을 책임진 동수가 벽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것을 발견해 상황이 매우 위급했습니다. 다행히 조작하던 동수도 누군가 온 것을 발견하고 작업을 중단하고 빠르게 철수해 현장을 탈출했습니다.
당시 방송에 참여한 하얼빈 동수들은 모두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저도 그날 대피했습니다. 대피하기 전에 저는 동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번거로운 일이 생기면 내가 했다고 말하고 모두 내게 책임을 미세요. 그들은 나를 잡지 못할 겁니다.’
제 차는 곧장 외지로 달렸고, 나는 줄곧 발정념을 하면서 이렇게 무사히 하얼빈 시를 떠났습니다.
같은 날 가목사 시에서도 삽입방송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쌍성은 돌아오는 길에 납치당했고, 대경에서는 핸드폰이 감청당해 참여한 동수들이 모두 체포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강(鶴崗)시, 쌍명산(雙鴨山)시, 치치하얼 시, 목단강 시, 계서(雞西)시 등 5개 도시에서도 삽입방송이 동시에 성공적으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계속)
역주: 원문이 너무 길어서 2편으로 나눠 올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