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心清)
【정견망】
대법제자들은 서로 다른 업종에서 만약 모두 법으로 자신의 일을 지도할 수만 있다면 모두 대법을 실증하는 동시에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동수 A는 농부인데 집에 소유한 땅이 아주 넓고 농사일이 너무 많아서 매년 추수 때가 되면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허리며 다리가 아팠다. 그녀가 동수 B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농사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동수 B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일을 하나요? 정념을 사용합니까?”
동수 A는 당황해하면서 지금껏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농민들도 모두 이런 개념조차 없으며 속인과 마찬가지로 한다고 했다.
동수 B가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죠.
“대주천을 말하자면, 비록 당신으로 하여금 뜨지 못하도록 하지만 당신은 온몸이 가벼움을 느끼고, 길을 걸어도 바람에 나는 듯할 것이다. 과거에는 몇 걸음만 걸어도 힘들었지만 현재는 아무리 멀리 걸어도 매우 가뿐함을 느끼고, 자전거를 타면 마치 누가 당신을 밀어 주는 것 같으며, 계단을 오르면 얼마나 높이 올라도 힘들지 않은데, 보증코 이러하다.”(《전법륜》)
우리가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대주천을 열어주셨으니 우리는 온몸이 가뿐한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볍게 뜨는 상태를 주셨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동수들이 모두 이렇게 법에서 교류하자 법에 대한 인식이 더욱 깊어졌다.
동수 C는 전에 농사일을 할 때 남편이 늘 걸음이 느리고 일을 적게 한다고 불평했다. 일을 얼마 하지 않아도 피곤했고 또 허리가 아팠다. 이번에 그녀는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법(法)을 생각했고, 정념(正念)을 지켜야 하며 속인처럼 일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대법을 공부해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선천의 가장 좋은 진아(真我)로 돌아가야 한다. 진아가 어디 피로가 있겠는가? 어디 이런 통증 저런 통증이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며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일할 때 정말로 전혀 피로하지 않았고 몸도 활력이 충만했다. 지붕에 올라가 옥수수를 옮길 때도 예전처럼 사람의 힘만 사용하지 않았고 의념으로 공능(功能)을 사용해 다른 공간에서 운반했다. 그리고 난 후 이 공간으로 옮기니 아주 가벼웠고 조금도 피로하지 않았다.
포륜(抱輪)을 연공할 때 몸이 아주 가벼움을 느꼈고, 법륜주천법(法輪周天法)을 연마할 때면 마치 자신에게 발동기가 달린 것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났는데 아주 미묘(美妙)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일하면 저녁에 몹시 피곤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서 남편보다 더 빨리 걷고, 더 많은 일을 한다. 남편도 예전의 태도를 바꿔 그녀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체력에 탄복하고 대법을 수련하는 아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에 탄복한다. 이런 농민은 정말 신기하다!
우리가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법에서 법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대법을 실증할 수 있고 대법의 신기(神奇)와 초상성을 보여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 육신을 고달프게 하는 것으로 제고해 올라올 수 있다고 한다면, 중국 농민은 매우 고생스러운데 마땅히 모두 대기공사여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아무리 육신이 고달프다고 해도 그보다는 못하며, 날마다 내리쬐는 해를 머리에 이고 일하는데, 고통스럽고 고된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는데, 진정으로 제고하려면 진정하게 이 마음이 제고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할 수 있다.”(《전법륜》)
중국 농민은 확실히 가장 고생스럽지만 농민 대법제자들은 단순히 이런 고생을 견디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일을 할 때 단지 체력에만 의지할 게 아니라 심성도 제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자신을 법에 용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자를 뿌릴 때 그녀는 선(善)의 종자를 뿌린다고 생각하고, 물을 줄 때면 감로(甘露)를 뿌린다고 생각하면 농작물이 아주 잘 자란다. 또 작은 동물이 농작물에 해를 끼칠 때 일부 동수들은 들판에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적힌 팻말을 걸어 농작물과 작은 동물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고 대법과 대법제자를 정확히 대해 대법에 동화하면 장차 신우주로 갈 수 있다고 일깨워준다. 그것들에게 모두 팻말에 적힌 대로 하라고 읽어 주자 여태껏 작은 동물이 농사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속인들은 늘 토끼나 쥐 등의 피해를 입었다.
대법제자는 단지 속인 생활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온 것이다. 우리가 비록 속인과 같은 일을 하지만 출발점이 다르고 일을 하는 심태도 다르며 일으킨 효과도 종종 신기하고 초상적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