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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사망에 대한 교훈과 반성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1. 시어머니가 함께 협력해 걸었던 정법수련의 길을 회상

나는 4남매를 둔 시어머니와 함께 농촌에 살았다. 3남 1녀였는데, 맨 위가 시누이였고 세 아들 중에서는 남편이 장남이었다. 남편은 단순하고 정직해서 일을 하는 요령이 없었고 사람들은 그를 바보처럼 여겼다. 집안의 모든 일을 다 남편이 했는데도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 나도 덩달아 무시당했고 그 어떤 이익도 얻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편파적으로 시누이에게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전심전력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긴 싫어하셨고, 늘 쓸모없다고 불평했다. 시댁에서는 시누이가 영향력이 있었고 존중받았다. 그러므로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불만과 불평은 사실 시누이에 대한 질투였다.

1997년 나는 시내에 가서 친척과 함께 정육점을 열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정육점에 와서 고기는 사지 않고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했다. 그 전에 남편도 자기 직장의 어떤 선임이 파룬궁을 수련했다고 말하면서 나더러 파룬궁을 배워보라고 말했다. 아마 아직 기연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때는 배우지 못했다. 우연처럼 보이는 이 기회가 내 마음을 움직였고 나는 법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반본귀진(反本歸真)하고 수련해서 회귀하는 길을 걸었다.

법을 공부한 지 오래되지 않아 이 법(法)이 너무 좋고 또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시어머니는 심각한 심장병과 갑상선 기능항진증을 앓고 있었는데 아프면 아무도 몰라보았고 급히 구심단(救心丹 역주: 심장병에 먹는 한약 기성품)를 먹어야 했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지리기도 했다. 몸도 허약해졌고 얼굴도 시커멓게 변해서 아주 가련했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큰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연민을 느꼈고 시어머니의 과거 잘못을 잊고 파룬궁을 배우게 하고 싶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시어머니가 파룬궁을 배우면 그녀의 병이 좋아질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집에 한 권뿐이던 《전법륜》을 시어머니에게 빌려주었다. 처음에 그녀는 보지 않았는데 나와 오랫동안 쌓인 원한 때문인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가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랐다. 아마도 나의 진심이 있고 그녀에게 연분이 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3일 동안 책을 읽은 후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20년 넘게 피웠던 담배를 끊었고, 심각한 심장 질환과 갑상선 기능 항진증도 사라졌으며,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날마다 5리 길을 오가면서 하루에 두 번씩 연공장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일찍 일어나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고 저녁이면 법 공부 소조에 가서 공부했는데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또 아주 행복했다.

그러다 풍운(風雲)이 돌변했다.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와 나는 다른 동수들과 함께 성(省) 정부에 상황을 반영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납치해 버스에 태워 체육관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곳에서 대법제자들이 함께 사부님의 법(《논어》)을 낭송하는 것을 목격했는데, 홍대(洪大)하고 바른 에너지장이 체육관 전체를 뒤덮고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나중에 현지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를 낡은 체육관으로 데리고 가서 신원을 파악한 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온 후 현지 파출소와 촌 치보(治保 치안과 보안) 주임이 종종 나를 괴롭혔다. 그들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했고, 청원하지 못하게 했으며,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당시 나와 시어머니는 법 공부가 깊지 않았기 때문에 교활한 심리를 품었다.

‘이것은 그들을 속이는 것으로 사악의 요구에 협력한 게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법 공부 및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뭔가 잘못했음을 깨달았고 속으로 사부님께 면목이 없었다.

박해는 계속 심해졌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뉴스가 날마다 TV에 방송되어 세인을 독해(毒害)시키고 있었다. 외지(外地)에서 두 동수가 우리 지역 동수들과 교류하러 왔다. 그들은 마땅히 걸어 나와 북경에 가서 국가 지도자에게 상황을 반영해야 하며 탄압은 잘못된 것이니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법을 실증하기 위해 북경에 갔다. 시어머니는 비록 북경에 가진 않았지만 나를 몹시 지지해 주었다. 그녀의 지원 덕분에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정면(正面)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시어머니와 협력하여 늘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다. 내 기억에 처음 나갔을 때 진상 자료가 없어서 시어머니가 백지에 직접 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들고 다니면서 붙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붙이면서 자료에 지문이 남지 않도록 장갑을 꼈다. 사실 박해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시어머니의 법에 있는 한마디 말이 내 정신이 번쩍 나게 했다.

시어머니는 말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잖니 ‘연공인(煉功人), 그의 일생은 개변을 거쳤는데 손금ㆍ관상ㆍ사주팔자와 신체에 갖고 있는 정보의 것들은 이미 같지 않으며 개변을 거친 것이다.’”(《전법륜》)

나는 속으로 시어머니가 나보다 법을 더 잘 배웠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이 법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장갑을 벗었다.

2004년 《9평》이 나왔을 때 우리 지역 동수들도 《9평》을 제작해서 배포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도 《9평》 소책자와 각종 진상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우리는 이사갔고 시어머니와 내가 같은 건물로 갔다. 나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자주 나갔고, 그녀는 매일 집에서 나에게 발정념으로 가지(加持)해 주었다. 그녀는 또 동수들이 보내준 진상 자료와 진상 달력을 받는 일을 도와주었다. 시어머니는 2층에 살았고 우리는 5층에 살았는데, 그녀는 자료를 전하는 동수와 나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집에서 전달하게 했다. 내가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 진상을 알리고 진상 달력을 배포하면 그녀는 집에서 발정념을 했고 때로는 직접 나가 진상을 알리고 달력을 배포했다.

2. 안으로 찾아 마음을 닦지 않고 신사신법하지 못한 교훈

시어머니에게는 관념이 있었다.

“늙어서 계단을 내려가기 어렵다.” 때문에 최근 몇 년 진상을 알리고 사람 구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법 공부와 연공은 날마다 부지런히 했지만 마음 수련이 따라가지 못해 심성 제고가 느렸다. 애초 입문할 때 지녔던 병을 치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고 신체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날 때 때, 사상(思想) 속에서 병이라고 인정했다. 그러자 딸과 외손녀가 약을 먹으라고 설득했다. 시어머니는 정에 이끌려 아이들이 참 효성스럽다는 생각에 약을 먹었다.

오성(悟性)이 올라오지 못하고 안으로 찾지 않자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자신이 수련인임을 망각했고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 것을 망각했다. 자식들이 “나이가 있으시니 이것은 할 수 없고 저것은 먹을 수 없고, 걸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모두 인정했다. 외손녀가 뜻밖의 상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해 보험에 들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속으로 외손녀가 자신에게 아주 잘한다고 느꼈다. 사실 스스로 구한 것으로 또한 이익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시동생이 이혼하고 손자를 하나 남기자 줄곧 시어머니가 보살펴왔다. 그녀는 이 아이에 대한 정이 아주 강했다. 시동생은 또 다른 여자와 재혼해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이 아이는 시어머니가 계속 길렀다. 시동생은 식당을 열어 제법 많은 돈을 벌었지만 동서는 늘 돈이 없다는 말만 했다. 자기 아들에게는 80㎡가 넘는 집을 사줬는데 친정집 돈으로 샀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60㎡짜리 집은 원래 시어머니 돈으로 시동생 명의로 구입했다. 시어머니는 이 집을 같이 사는 손자에게 물려주고 싶어했지만 시동생이 반대하면서 며느리 몫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가족에 관한 나쁜 소문이 밖으로 나가면 비웃음을 당할까 봐 내색하지도 못하고 조용히 속으로 감당했다. 평형을 이루지 못한 이익심을 내려놓지 못했고, 쟁투, 원한, 질투를 버리지 못했다.

역병 기간에 사악한 당은 돈으로 유혹하며 80대 노인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도록 강요했다. 백신을 한번 맞으면 500위안을 준다고 했다. 돈의 유혹에 넘어간 시어머니는 시누이와 시동생의 동의하에 백신을 맞았다. 내가 법 공부를 위해 그녀의 집에 갔을 때 이 일을 말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고 사부님과 법을 믿지 못했으며 이익심을 버리지 않아 번거로움을 초래했음을 똑똑히 알았다. 이에 그녀는 500위안을 꺼내 자료점에 주라고 했다.

한번은 그녀의 집에 가서 보니 시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끊으신 담배를 왜 또 피우세요? 사부님께서 우리 신체를 정화해 주셨는데 아직도 몸안에 넣고 계시네.”

그녀도 잘못임을 알고 있었지만 고치지 못했다. 또 한번은 그녀의 집에 가서 보니 누워 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법 공부를 하는 것은 대법에 대한 불경입니다! 단지 법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그녀도 틀렸다고 인정했다. 대법 서적을 함부로 놓았고 연공 동작도 정확하지 않았다. 내복만 입고 법을 공부하거나 연공했고 대법 서적 《논어》의 문자가 작아서 똑똑히 볼 수 없다며 펜으로 크게 썼는데 그마저도 흐릿했다. 내가 이것을 본 후 동수에게 《논어》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전법륜》의 글자 수개(修改)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동수와 함께 그녀의 수개를 도왔다.

그녀의 집에는 법 공부 모임이 있어서 동수들이 늘 법을 공부하러 갔다. 법을 읽을 때 시어머니는 늘 글자를 추가하거나 생략했고 발정념을 하면 손이 넘어갔다. 그리고 대법 책은 더러웠고 자신이 틀리게 읽는줄 몰랐으며 시정해 줘도 다음에 또 잘못 읽었다. 그녀가 법 공부와 심성에서 넘어가지 못할 때 동수들이 그녀와 교류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못했고 손자를 불쌍히 여겼고 또 혼자 남은 손자에 대한 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늘 자신의 재산과 저축을 손자에게 남기고 싶어 했다.

모순이 생기면 안으로 찾지 못했고 늘 밖으로 보았다. 시동생이 그녀에게 저축한 돈이 얼마나 있는지 묻고, 카드를 달라고 하자 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지만 이를 내색하진 않았다. 이상의 문제들에 대해 나는 그녀에게 일깨워주며 교류했다. 그녀는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했지만 고치진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고 조용히 자신을 찾았다.

결국 그녀는 정말 쓰러졌고, 3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내가 유품을 정리하다 미녀의 사진으로 싼 대법 경서 두 권이 신발 상자 안에 방치되어 다른 물건들과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3. 반성 후의 각성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자신의 책임감과 선심(善心)이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비록 자주 집에 가서 빨래하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머리도 감겨주고, 발도 씻어주면서 괜찮다고 격려해 주긴 했지만 그녀의 상태가 속인과 같아서 어디가 아프면 곧 약을 먹는 것을 보면서도 스스로 수련인이란 사실을 상기하도록 도와주지 못했다.

자사(自私)와 질투심 및 시어머니가 하는 일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했다. 시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자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택시를 타고 보러갔고 또 1천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남편이 아파서 입원하자 오지 않았고 그냥 전화로 “좋아지면 집으로 오너라” 하고 끝이었다. 남편이 중병에서 회복된 후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자 남편에게 500위안을 줬지만 남편이 받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와서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남편이 옳은 일을 했다고 느꼈고 노인에게 돈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시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시어머니가 병문안을 갔고 직접 천 위안을 준 것이 생각나자 평형을 이룰 수 없는 마음이 올라왔다. 같은 아들인데 왜 이렇게 차별하는가? 화가 나고 원망하며 질투했다. 최근 몇 년 줄곧 시누이가 시어머니의 통장과 카드를 관리해 왔다. 시어머니는 또 매년 설날이나 생일이면 시누이 딸의 아이들에게는 돈을 주면서 내 딸의 아이들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해 불만과 원망, 질투를 느꼈다. 만약 시어머니가 남편을 시동생이나 시누이와 동등하게 대했다면 여전히 화를 내고 원망하며 질투할 수 있었을까? 말하고 말해도 결국 내가 아직 이익심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시어머니는 수련을 해서 몸이 건강해졌고 딸이 보살필 필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누이와 시동생의 일을 도와주셨다. 당연히 시누이와 시동생도 매우 좋아했다. 시어머니가 보기에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위치가 있어서 시동생이 식당을 개업할 때도 비교적 조건이 좋았는데, 그는 성격이 거칠고 제멋대로 굴었다. 시어머니는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편애했다. 지금 몸에 나타난 병업가상을 그들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고 약을 먹도록 강요했는데 자식들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파룬궁을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아 대법에 손실을 줄까 걱정이 되어 너무 깊은 말은 하지 못했다. 무책임 역시 사부님에 대한 불신이다.

시어머니가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자신을 돌아보았는데 내게도 유사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가령 《전법륜》의 글자를 고칠 때 사부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며 편하고 간단하게 했다. 안으로 찾지 않고 밖을 볼 때면 수구하지 못했고 원망하고 질투하고 과시했는데 이 역시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 아닌가.

시어머니의 죽음은 나를 놀라 깨어나게 했고 수련이 아주 엄숙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 일을 써서 폭로하고, 유사한 문제가 있는 동수들을 선의(善意)로 일깨워준다. 다그쳐 바로잡아야 하며 법(法)을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해서는 안 되며, 사부님께서 연장해 주신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진수(真修)하고 착실히 수련해야 하며, 시시각각 일마다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야 하며 정법이 얼마 남지 않은 최후 시간에 공동으로 정진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