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2022년 7월, 우리 지역에서 대규모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줄곧 안정적으로 수련해왔던 동수 필(畢 가명)도 사악의 방문 소란에 시달렸다.
교류 중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도 고험입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은 고험할 자격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왜 소란을 당했을까? 이는 그녀의 잠재의식에서 교란 역시 고험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아마 소란도 고험이라는 이런 일념(一念)은 그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구세력이 억지로 더해 넣고 그녀더러 묵인케 하고 소란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악이 틈을 탈 수 있다.
“수련에는 고험이 필요하니 내가 당신을 고험하겠다.”
우리 더 깊이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럼 이 일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누가 소란을 배치했는가? 그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고, 사악이 배치한 것으로, 절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닦는 것은 무엇인가?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함은 사악을 저지하는 것이고 이렇게 해야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잠재의식에서 소란을 고험으로 여기고 주의식을 강화해서 교란을 부정하지 못한 것이 아마 일부 동수들이 반복적으로 교란당하는 원인의 하나다. 내가 보기에 사악은 나를 생각할 자격이 없고, 누구도 나를 고험할 자격이 없으며, 우리 집에 들어올 자격은 더욱 없다. 이 일념(一念)은 생명의 본원처럼 아주 깊고, 반석(磐石)처럼 굳세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했다.
사실 나는 수련하기 전에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또 수련하고 나서도 소란 당하거나 박해 받는 장면이 늘 떠올랐고, 씁쓸하고 우울한 감정이 늘 따라다니곤 했다. 하지만 매번 “그들이 네 집에 오려고 한다”, “반짝이는 흰수갑으로 너를 채운다”는 등의 가상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법을 외웠다.
“사람은 이 법을 고험할 자격이 없고, 신(神)도 자격이 없다. 누가 움직인다면 곧 누구의 죄다”(《도항》〈북미대호수지구법회설법〉)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시드니 법회 설법》)
나는 끊임없이 법을 외웠는데 머릿속에 오직 법만 있을 뿐 박해받는 환각(幻覺)이 없어질 때까지 외웠다. 절대 잠재의식의 사념(邪念)에 순응하거나 따라가선 안 되며 그것을 철저히 배척해야 하는데 이것이 관건이다.
동수 정(鄭 가명)과 교류할 때 그녀가 일찍이 말했다.
“내가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보아하니 이곳은 난잡한 곳이라 ‘이곳이 어디 대법제자가 마땅히 있을 곳인가? 가족이 며칠 안에 나를 데리고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그녀는 정말로 나왔다. 나중에 그녀가 장쩌민(江澤民)을 고발한 후 경찰이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그녀는 당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사실, 그녀는 이미 경찰이 그녀를 찾으러 올 것임을 잠재의식적으로 묵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장쩌민을 고발한 동수들은 대부분 다 구치소에 불법으로 구금되었다. 그녀는 당시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경찰들도 다 불쌍한데 경찰이 나를 박해해 그렇게 많은 업을 짓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경찰은 몇 시간 후 그녀를 석방했다.
우리가 보았다시피 정 동수가 구치소는 자신이 있을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나왔고, 경찰이 찾아오는 것을 묵인하자 경찰이 왔으며, 경찰이 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자 경찰은 곧 죄를 짓지 않았다. 다시 말해 수련인의 모든 사상은 다 그가 하려 하고 구한 것이다.
한 동수는 법을 실증하기 위해 북경에 가기 전 업무가 너무 힘드니 구치소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박해를 받았다.
또 어떤 동수는 천안문 광장에서 현수막을 들고 대법이 좋다고 크게 외쳤지만 아무도 그녀를 잡지 않았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들 경찰이 사람들을 잡아간다고 하던데 왜 나를 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을까?’
결국 경찰이 왔다.
장춘 삽입방송의 영웅 류성군(劉成軍)은 1차 접견일에 일곱 개의 쇠창살을 뚫고 마침내 장춘 분진(奮進) 노동교양소를 탈출했다. 하지만 삽입 방송을 할 때 머릿속에서 ‘이건 머리가 떨어질 일이구나’라는 일념이 나왔다.
이러한 일념은 어디서 오는가? 출처가 어디인가? 우리 자신의 상상인가? 사실 모든 바르지 못한 염두, 설사 아주 사소한 추구, 의심, 두려움조차도 아마 모두 구세력이 정교하게 배치한 것일 수 있는데 그것을 따라 계속 생각하면 계략에 빠진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각지 설법 2》〈미국플로리다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가 그것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절대로 감히 올 수 없다. 우주 과거의 생명이든, 우리가 지금 바로잡은 일체 생명이든 모두 지켜보고 있다. 당신은 오로지 마음이 바르지 못하여 비로소 이런 사악한 것을 초래하였다. 마음이 바르다면 누구도 감히 오지 못한다. 정말로 온다면 그 뭇 신들도 허용하지 않는다.”(《미국서부법회설법》)
우리가 만약 부정하지 않으면 사실 우리는 곧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는 것이다. 만약 주의식이 청성하지 못하고, 주의식이 강하지 못해서 구세력의 배치를 따른다면 곧 위험해진다.
수련 중에서 잘못을 인식했다면 우리가 주동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지만, 무의식적인 편견은 계속 잘못할 수 있고, 또한 구세력이 구실로 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심코 생각이 떠오르거나 무심코 한 마디 말이 나올 때, 우리는 늘 주의식을 강화해서 법으로 그것을 가늠하고, 법으로 한번 여과해야 한다. 이것이 외래 정보의 교란인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주관(主觀) 사상인지 똑똑히 가려야 한다.
잠재의식에서 나타나는 바루지 못한 염두에 대해 가장 좋은 것은 부정인데 바로 주의식을 아주 강화해서 단호하게 끊임없이 법을 외워 잠재의식 속의 일체 망념(妄念)을 해체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주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주의식이 청성해야 하며, 어느 것이 외부 교란이고 어느 것이 법(法)속의 정념인지 똑똑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주의식이 강력해야 한다. 주동적으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체 사상염두를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전법륜》 〈주이스가 강해야 한다〉는 이 단락의 법을 외워 늘 자신과 대조해보자.
“이렇게 되면 어떤 수련자는 어찌된 일인지 모르며 그냥 자신이 이렇게 생각한 것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이것을 부체(附體)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부체가 아니라 사상업이 사람의 대뇌에 반영하여 조성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主意識(주이스)가 강하지 않아 사상업에 따라 나쁜 일을 하는데, 이 사람은 곧 끝장이며 떨어져 내려간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가히 아주 강한 주관사상[主意識(주이스)가 강함]으로 그것을 배제(排除)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반대할 수 있다. 이렇다면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데,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다. 즉 오성(悟性)이 좋으면, 나의 법신이 도와서 대부분의 이런 사상업을 없애버릴 수 있다. 이런 정황을 비교적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나타나면 자신이 이 나쁜 사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견정(堅定)할 수 있는 사람은 업을 없앨 수 있다.”
개인의 얕은 소견이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