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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곡관에서 서갑이 노자에게 임금을 요구한 이유와 교훈

왕사미(王舍微)

【정견망】

전설에 따르면 주나라 소왕(昭王) 23년 청우(靑牛)가 끄는 수레 한 대가 노자를 태우고 중원을 떠나 함곡관 밖으로 나가 곤륜(崑崙)에 오르려 했다. 바로 이때 한 가지 기이한 일이 발생하는데 소를 끌던 서갑(徐甲)이란 하인이 노자에게 200년 치 품삯을 요구한 것이다.

먼저, 《태평광기》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자.

〖노자가 장차 주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관문을 나가 곤륜산에 오르려 했다.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바람의 움직임을 점쳐서 신인(神人)이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았다. 이에 그를 맞이하기 위해 40리나 되는 길을 청소했다. 노자를 보고는 바로 이 사람임을 알았다.

노자가 길을 나선 후 중원에 있을 때는 누구에게도 도를 전수해 주지 않았으나 윤희만은 이 도를 얻을 운명이 있음을 알고는 이에 그곳 관에서 머물렀다.

노자에게는 서갑(徐甲)이란 하인이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노자 밑에서 일을 했다. 하루에 약 100전(錢)을 받기로 하고 고용살이를 했기에 노자는 서갑에게 모두 720만 전을 빚졌다.

서갑은 관문을 나가 멀리 여행하려는 노자를 찾아가 빚진 돈을 갚으라고 했지만 받지 못했다. 그러자 사람을 시켜 고소장을 만들어 관령인 윤희에게 노자를 고소하게 했다.

고소장을 작성하던 사람이 서갑이 이미 노자를 200여 년이나 따른 것은 모르고 오직 서갑이 받을 돈이 많은 것만 계산하여 자기 딸을 서갑에게 줄 것을 약속했다. 서갑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윤희에게 고소장을 전하게 했다.

윤희가 이 고소장을 보고는 깜짝 놀라 노자를 만나게 했다.

노자가 서갑에게 말했다.

“너는 오래 전에 마땅히 죽었어야 할 사람이다. 내가 예전에 너를 고용한 것은 관직도 낮고 집이 가난해 심부름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현청생부(太玄清生符)’를 네게 주어 오늘까지 살아 있게 된 것이다. 네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나는 너에게 안식국(페르시아)에 도착하면 마땅히 황금으로 그 품삯을 계산해 모두 주겠다고 했는데 너는 어찌하여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냐?”

말을 마치고 서갑에게 입을 크게 벌려 땅을 향하게 하니 태현진부(太玄真符)가 곧장 땅으로 나왔는데 붉은 글씨가 마치 새로 쓴 것과 같았다. 한편 서갑은 한 무더기의 마른 뼈로 변했다.

윤희는 노자가 신인이라 서갑을 다시 살릴 수 있음을 알고 서갑을 위해 노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해달라고 빌었다. 또 노자 대신 돈을 지불해주기로 했다.

이에 노자가 다시 태현부를 던지자 서갑은 다시 살아났다. 윤희는 돈 2백만 전을 서갑에게 주어 돌아가게 했다.

아울러 노자에게 제자의 예를 갖췄다. 그러자 노자가 장생(長生)에 관한 일을 윤희에게 자세히 전수했다. 윤희가 또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가 오천마디 말을 했다. 윤희가 물러나 이를 글로 기록하고는 《도덕경》이라 이름 지었다. 윤희가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니 역시 신선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도가(道家) 법문은 도제(徒弟)를 골라 전한 것을 생각해 보면 노자는 인간 세상에 강림하면서 반드시 세간에 《도덕경》을 남기는 사명을 지니고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연(機緣)이 담겨 있다.

“노자가 중국에 있을 때 도를 전할 사람이 없었고 윤희가 마땅히 도를 얻어야 함을 알고 곧 관(關)에서 멈췄다.”

즉, 중원 지역에는 전수할 사람이 없어 서쪽으로 함곡관까지 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이 일이 발생한 곳은 함곡관보더 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대산관(大散關)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노자가 마음에 둔 도제는 어떤 계시와 고험이 있었을까? 여기서 서갑은 바늘과 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갑의 입에서 태현부를 꺼내 백골로 변하게 했다 다시 부활시키는 변화를 통해 윤희의 바른 믿음을 견고히 했고 그가 서갑에게 200만 전을 대신 지불한 것은 세간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은 것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 윤희가 노자 앞에 오게 할 수 있었는가? 이런 기연은 바로 서갑이 품삯을 요구한 소송이 단서가 되었다. 도(道)는 본래 함부로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니 윤희가 노자에게 도를 구한 것이 노자가 《도덕경》을 남길 기연을 촉성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갑은 비록 재물과 색(色)의 유혹을 내려놓지 못했지만 노자를 200년간 따르며 이런 역사 기연을 촉성했다. 사실 서갑이 마주한 모든 것은 일종 환화(幻化)였다!

청대 《사고전서》에서 편집한 《관중승적도지(關中勝跡圖志)》(제2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 서쪽이 화녀천(化女泉)인데 전설에 따르면 노자가 지팡이를 여자로 변신시켜 서갑을 시험했기 때문에 발장천동(拔杖泉洞)이라 한다.”

즉 지금 이곳에 화녀천 도원(道院)이 있고 원내(院內)에 화녀천의 두 눈이 있는데 샘물이 깨끗하고 맑은 데다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이곳은 섬서성 주지현(周至縣) 현성(縣城)에서 동남쪽 15킬로미터 종남산 북쪽 기슭인데 당(唐) 무덕(武德) 2년(619년) 처음 설경대(說經台 나중에 누관대로 변경) 서남쪽 5킬로미터 동명촌 남쪽에 건축했다.

다시 서갑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자신의 내력을 알고 몹시 후회했으며 바야흐로 노자의 고심을 깨달았다. 나중에 서갑은 은거해서 도를 닦았고 결국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아울러 여산파(閭山派)는 서갑을 조사로 삼는다.

《운급칠첨(雲笈七簽)》(제4권)에 “도교상승차제록(道教相承次第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운대치중내록(雲台治中內錄)》에서 말하길 제1대 노군(老君)이 노군의 화산대단(火山大丹) 치법을 3백명에게 전수했지만 오직 세 사람만이 대를 이었으니 바로 왕방평, 윤희, 서갑이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정관정요》에서 “과거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인류 역사의 발전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겠지만 함의가 서로 동일하게 반복되진 않을 것이다. 특히 말후(末後)의 말인 오늘날, 인류 문화와 인지능력을 풍부하게 하고 축적하고 다지던 단계는 이미 지나갔고, 우주 대법은 이미 세간에 널리 전해지고 있다. 우주 정법 중에서 선악(善惡)의 대결은 대하 사극과 마찬가지로 매 세인의 눈앞에 펼쳐지며, 매 사람의 양지(良知)와 선악(善惡)에 대한 인지와 선택을 고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생명 미래의 광명과 암흑, 생존과 훼멸에 관계된 한 차례 시험이다.

서갑의 이야기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상유심생(相有心生)’의 틈에 대한 한 차례 검증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의 관념에서 완전히 걸어나와 집착이나 누락 없이 강철을 녹이는 자비를 지니고, 강대한 정념의 위력과 신통을 지닌다면, 장차 다른 공간의 일체 사악이 숨을 곳이 없을 것이며 동시에 깡그리 소멸될 것이다. 누락이 없으면 어두운 밤이 사라지고 정념은 속세의 먼지를 정화해, 광명이 환우(寰宇)를 비출 시각이 곧 도래할 것이다.

“돌아가자 돌아가, 서산은 오래 머물 수 없구나.”

“애석한 것은 내년에 꽃이 더 좋다 한들 누구와 함께할지 알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