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깨끗한(幹淨) 물은 바닥까지 볼 수 있고 순정(純淨)한 마음은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데, 이 깨끗한 마음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대법제자는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純純淨淨] 생명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최근 나는 마음의 순정에 대해 작은 깨달음을 얻어 이를 써서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체우주는 성주괴(成住壞) 과정 중에서 일체가 모두 순정(純淨)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 처음 만들었을 때만 못하게 되어, 비로소 ‘멸(滅)’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천체 중의 일체가 모두 망가졌고, 중생은 모두 처음만큼 그렇게 좋지 않게 되었으며, 생명도 모두 순정하지 않게 되었고, 모두 죄업이 있게 되었기에, 멸망하게 된 것이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현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순정한 마음은 법에 의지해 깨끗해지는 것으로, 대법제자는 법(法)을 떠날 수 없다. 이전에 자신의 수련 상태를 되돌아보면 마음 역시 매우 순정하고 사상염두도 법에 있다고 여겼지만 결과는 오히려 상상한 것과 달랐는데 수련 상태가 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순정한 정도가 부족해 안으로 찾을 줄 몰랐고 사람의 이치로 가늠했기 때문에 원망하고 미워하는 정서가 생기게 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한 것은 문제가 없으며 상대방이 옳지 않아 조성된 것이라 여겼는데 이런 태도가 바로 밖으로 보는 것이다.
밖으로 찾음은 바로 마도(魔道)로 들어가는 것이고 마성(魔性)이 드러난 것이 이기심, 원한, 마음이 순정하지 않은 것인데 기점이 법에 있지 않고 마성과 대응하는 것은 바로 사람 중의 모순 번거로움인데 마치 더러운 웅덩이의 물처럼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고 물속의 일체가 다 흙탕물에 장애받는데 바로 사람의 관념에 해당한다. 관념은 마치 흙탕물처럼 사람의 집착을 감추고 집착이 발견되지 않아 제거할 수 없게 한다. 그렇다면 흙탕물이 그것들의 토양이니 결과는 몹시 두려운 것이다.
최근 나는 이 방면에서 경험이 있는데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각양각색의 생각이 뛰쳐나와 한 번 거르자 마치 매 하나의 생각마다 다 이치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정으로 법(法)에 따라 생각했을 때는 오히려 상상과 달리 이때문에 마음의 매듭이 아주 심했는데, 분명히 아주 좋은 생각을 했는데 어찌하여 사실은 크게 달라지는가?
법을 공부할 때 법(法)은 내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고 자신의 선(善)의 요소를 가지(加持)해주었다. 이때 자신을 반성하며, 일을 하는 기점이 법에 있는지, 법에 대조해 보니 내 마음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번에 한번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원래 자신이 좋다고 여긴 생각이 완전히 사(私)의 각도에 선 것으로 도달하려는 목적심이 여전히 아주 강렬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비로소 자신이 옳고 흠잡을 수 없다고 여긴 생각이 사실은 꼭 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오직 사상을 텅 비우고 마음을 더 순정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주 특성에 접근해 본성(本性)의 일면이 강해질 것이다. 즉 주의식(主意識)이 강해져서 진아(真我)가 주인이 되며 우주 특성이 곧 반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마음의 순정해지면 사상도 순정해지는데, 마치 빈 통처럼 위아래로 아무런 장애가 없고 아무런 저애력도 없으면 마치 대야에 담긴 맑은 물처럼 한눈에 바닥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천체ㆍ우주ㆍ생명ㆍ만사만물은 우주 대법이 개창(開創)한 것인바, 생명이 그에 어긋나면 곧 진정한 패괴(敗壞)이고, 세인이 그에 부합할 수 있으면 진정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선보(善報)와 수복(福壽)이 따를 것이다. 수련인으로서 그에 동화하면 당신은 바로 득도자(得道者) ⎯⎯ 신(神)이다.”(《논어》)
수련인으로서 우주 특성에 동화해야 하는 것으로 순정한 마음은 하나하나 법 속에서 씻긴 것으로, 자신을 하나의 순정한 입자로 간주하면, 비록 흠이 아직 있어 사상속에서 바르지 못한 염두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본성의 일면은 미혹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순정한 생명으로 성취해야 함을 알고 법에 동화한 득도자(得度者)가 되어야 함을 안다.
작은 수련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