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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음》〈도중에서〉를 공부한 작은 체회

산동 대법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오늘 《홍음》〈도중에서〉를 외웠다.

“마음에 두지 않으니
세상과 다툴 것 없도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
고요하되 생각지 않으니
현묘함을 알 수 있도다”

다 외운 후 나는 아무리 해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도중에 있는가? ‘마음에 두지 않음’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함’ ‘들어도 듣지 못한 듯함’ ‘먹어도 음미하지 않음’ ‘하여도 구하지 않음’ ‘늘 도(道) 중에 있음’ ‘고요하되 생각지 않음’을 해낼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직 완전히 해내지 못한다”였다.

나는 26년을 수련한 대법제자지만 아직 완전히 도(道)에 들어가 법(法)을 얻지 못했는데, 이는 너무나도 비참하지 않은가?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수련은 당신의 이 마음을 수련해야 하는데, 心性(씬씽)을 닦는다고 한다.”라고 가르쳐주셨다.

자신을 반성해 보니, 이 사람 마음마저 닦아버리지 않았는데 어찌 사부님께 떳떳할 수 있으랴? 특히 수구(修口) 문제는 20여 년을 수련했음에도 아직도 해내지 못했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홍음》〈도중에서〉)

나쁜 말을 들으면 나는 여전히 잘 수구하지 못하거나 소위 선의적으로 해명하고, 속인 중에서 자신의 관점에 맞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평론하거나 또는 속인 중의 가상에 미혹되어 “미혹되지 않음”을 해내지 못했다. 또한 대법의 법리로 일의 진정한 원인을 볼 수 없었다. 앞으로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해야 하고 반드시 스스로 해내야 한다. 마땅히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말하지 말고 수구를 잘해야 하며 진정으로 그런 좋지 않은 말을 들어도 듣지 않은 것처럼 해내야 한다.

나는 또 아직 “먹어도 음미하지 않으니 입의 집착 없도다”(《홍음》〈도중에서〉)를 해내지 못했다. 맛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먹고 싶고, 심지어 처음 수련할 때만도 못한데 그때는 기본적으로 간식에 집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집안 도처에 맛있는 간식이 가득하고 늘 무의식적으로 먹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이런 새로운 환경을 사용해 음식에 대한 내 집착을 제거하라는 것임을 몰랐다. 오늘 나는 이미 음식을 탐하는 이런 사람 마음을 보았으니 반드시 결심을 내리고 그것을 닦아버려야 한다.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것에 따라 음식을 탐하는 이 마음을 닦아버려야 한다.

“하여도 구하지 않으니 늘 도(道) 중에 있도다”(《홍음》〈도중에서〉)에 관해 나는 더 잘하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할 때면 늘 목적성을 지니는데, 예를 들어 문장을 쓸 때는 늘 발표되길 기대하고, 발표되면 기쁘지만 안 되면 불편하다.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면서도 상대방이 삼퇴하면 기쁘고, 삼퇴하지 않으면 속으로 기뻐하지 않거나 때로는 또 원한심(怨恨心)이 나온다. 이렇게 큰 집착을 갖고 있으니, 나는 진정으로 도에 들어가고 법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닌가?

정법이 오늘에 이르렀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런 상태이니 이는 너무다 두려운 것이 아닌가? 이것은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하사(下士)는 사람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네”(《홍음 6》〈남을 제도하고 자신을 제도함은 어렵다네〉)와 같다. 나는 사실 하사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만 수련 성취해서 원만할 수 있을까?

“고요하되 생각지 않으니 현묘함을 알 수 있도다”는 더욱 해내지 못했다. 나는 아직까지 연공이 입정(入靜)에 도달하지 못했고 특히 제2장 공법은 줄곧 고요함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줄곧 사부님 설법에 의지해 통제해 왔다.

자신의 언행을 분석해 보니, 나는 아예 진정으로 도에 들어가 법을 얻은 것이 아니라 그저 형식적으로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을 뿐 진정으로 대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사부님의 법에 대해 그저 공부만 했지 진정으로 해내지 못했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

여기까지 인식한 후 나는 너무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26년 동안 수련한 수련자가 어찌 이렇게 수련을 차(差)하게 할 수 있는가? 자신을 깊이 파보니, 모두 사람의 이치가 자신의 주의식(主意識)을 좌우지하고 있었고 진정한 자기가 도에 들어가 법을 얻지 못하게 했음을 인식했다. 오늘 나는 그것들을 간파했고 이런 하나하나의 가아(假我), 그것들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구세력의 그 한 세트와 마찬가지로 소위 수련인의 제고를 위한다는 구실로 수련인을 훼멸하는 것이다. 구세력은 완전히 위사위기(爲私爲己)한 것으로 만약 우리가 구세력의 한 세트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곧 수련해 내지 못한다. 반드시 구세력의 올가미에서 뛰쳐나와 모든 것에서 위타(爲他)한 사람이 되어야만 비로소 각자(覺者)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앞으로 나는 반드시 주의식을 강화해 진아(真我)가 자신을 주재하게 하고 가아(假我)에 좌우지되지 않을 것이며, 구세력을 부정하고 하사(下士)가 되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진정한 대법도(大法徒)가 되어 조사정법하고 자신을 잘 닦아 진정으로 대법 속에서 자신을 단련할 것이다. 매 한 차례 사람에서 걸어나와 신(神)으로 향하는 기회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모래가 아닌 진금(真金)이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