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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를 얻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과객

[정견망]

나는 불교 이야기를 하나 들은 적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시면서 땅바닥의 흙 한 줌을 집어 들고 ‘인체를 얻은 사람은 내 손에 쥔 흙만큼 많고, 인체를 얻지 못한 사람은 땅바닥의 흙만큼 많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어디가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며 한 줌의 흙은 지구상의 온 흙과는 너무 차이가 많아서 인체를 얻은 사람이 그렇게 적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인간의 지혜가 매우 낮아서 그의 사고 방식이 매우 좁은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간 세계의 하나의 문제에 대해 개별적으로 이야기하려면 며칠 밤낮이 걸릴 것이므로 몇 가지 간단한 언급만 하겠다.

우선,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그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고 주변에서 접하는 모든 사람들도 운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춘절에 기차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간 기자가 아직 표를 샀는지 물었던 것처럼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느끼지 못한다. 그들 모두는 티켓을 샀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이 말한 것처럼 춘절 티켓을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느꼈다.

이를 행존자 편향 또는 생존자 편향 또한 ‘살아남은자 편향’이라고 하는데, 통계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선별되지 않은 표본을 연구의 초점으로 사용하여 표본 뒤에 숨겨진 핵심 정보를 무시하고 궁극적으로 실제 상황과 크게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대략적으로 7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동물은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식물은 얼마나 많은가? 이런 동식물의 방대한 숫자에 비해서 사람은 얼마나 많다고 할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지 지구상에 있는 우리 공간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삼계 안에 얼마나 많은 층이 있는가? 28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33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통계 방식이 다른 때문이다. 어떤 작은 하늘은 계산하지 않으니 사실 모두 같은 것이다.

이렇게 많은 층이 있는 공간이 지구처럼 작지는 않고, 또 공간은 층층마다 넓어져서 천인의 사람의 수는 모두 조 단위이다. 불가에서는 방대한 수량을 흔히 갠지스강의 모래 수에 비유하며, 갠지스강의 모래가 몇 알인지 누가 셀 수 있을까? 하지만 고급 생명은 한눈에 정확히 셀 수 있다. 갠지스강의 모래는 형용사가 아니라 불가(佛家)의 하나의 계량 단위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위는 억이지만, 대각자는 억이라는 단위가 다른 공간의 실제 상황을 계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공간의 측정 단위를 도입했다. 1만 억은 1조, 1만 조는 1경, 1만 개의 경은 1해이고, 더 나아가면 자秭、양穰、구沟、간涧、正정、재载、극极、항하사恒河沙、아승기阿僧祇、나유타那由他、불가사의不可思议、무량无量、대수大数、고과니古戈尔등으로 매 층마다 가득하다.

고과니에 이르러서는 이제 보통 그것이 우리 공간의 기본 입자 수를 초과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른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수에 불과하다. 아래층 우주의 가장 큰 수는 종종 바로 위층 우주의 가장 작은 수에 해당한다.

지구를 예로 들면, 지구는 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부의 공기를 포함하여 넓은 범위에 걸쳐 분자 입자가 있다. 얼마나 될까? 통계는 낼 수 없지만, 한 층 더 높은 우주 공간에서 보면 지구는 단지 기본 입자일 뿐이며, 당신의 무량은 그들에게서 단지 하나일 뿐이다.

농담이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계층 간 차이가 크다. 마치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몇 백, 몇 백씩을 모으면 만 원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일부 권력자들의 눈에는 1억 원도 작은 목표에 불과하다.

삼계 내의 생명은 모두 육도윤회 중에 있으며, 인도(人道)도 육도 윤회 중에 하나이지만, 인도의 생명은 가장 소중하고 얻기 힘들며, 육도윤회는 주로 인도를 중심으로 운행되고 있다.

육도 중 인간은 축생도에만 접촉할 수 있으며, 그 중의 생명 중 일부는 몸집이 커서 겨우 통계할 수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구상의 포유동물 총수는 100만억을 넘어 인간의 만 배 이상이다. 이 부분만 사람과 비교해도 사람은 만분의 일 확률로 사람 몸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포유류뿐만 아니라 조류, 어류, 양서류 및 파충류, 무척추동물도 있다.

예전에는 불교에서 살생을 금지했는데, 주로 대형 포유동물, 소, 말, 양 등을 지칭했다. 그들은 이 동물들이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사람으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살생을 금지했다. 나중에 대승불교가 전해진 후, 그는 보살계로 나아가려면 더 큰 자비심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작은 동물도 죽일 수 없으며, 개미나 모기도 죽일 수 없다고 규정하여 땅을 쓸어도 땅강아지와 개미 목숨을 해치지 않고 나방도 소중히 여겼다.

예전에는 육도윤회하여 전생하는 동물의 대부분이 큰 포유동물이었지만, 나중에는 고급 생명이 삼계에 점점 더 많이 들어오면서 포유동물의 자리도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도 고급 생명이 점령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많은 식물도 고급 생명이 점령했다. 이것이 바로 최근 수십 년 동안 인류가 동물과 식물 보호에 대해 다소 엄격한 이유이며, 특히 중국에서는 새 둥지를 뒤지는 것조차 불법이 되고 자기가 심은 나무를 함부로 벌채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단지 가축의 상황일 뿐이다. 모두 내려와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동물과 식물로 태어나기를 구했다. 이번 생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보라.

동물도 생각이 있어서 다 이해할 수 있고 식물도 생각이 있다. 이제 이것은 더 이상 미신이 아니다. 불법 중에 많은 것들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고, 일부는 설명될 수 있다.

​1966년 2월 2일 새벽, 미국 정보부에서 거짓말 탐지기 사용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관원 백스터는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다 잠시 쉬려고 했다. 그가 사무실에 있는 용혈나무(용설란과 관목)를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거짓말 탐지기를 이 식물에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 그가 거짓말 탐지기를 용혈나무와 연결하자,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거짓말 탐지기에서 나타나는 파형은 완전히 인간 심리 활동의 파형이었으며, 이는 18년 동안 인간 심리를 연구해 온 그에게 매우 익숙했다. 백스터는 식물도 생각이 있는 생물이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것들은 단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입과 사지가 없을 뿐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눈앞의 이 용혈수를 놀라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잎을 불에 태워보자고 생각했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바늘은 즉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사람이 두려워할 때만 나타나는 곡선을 그렸다.

백스터는 깜짝 놀랐고, 이 용혈나무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설마 식물에 심전도 같은 감응이 있는 것일까? 너무 많은 문제가 일시적으로 떠올랐고, 백스터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더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백스터는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 등 수백 번의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의 실험 결과가 발표되자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고, 그는 정보 전문가에서 식물학자로 전향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든 예가 너무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정말인지 우리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분야의 최신 연구를 살펴보자. 일본 과학자들은 식물이 고급 생명체와 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잎도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023년 10월, 일본 사이타마 대학의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식물과 식물 간의 ‘대화’ 영상 증거를 성공적으로 촬영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서로 통하는 두 개의 용기를 준비하여 각각 안에 잎을 놓고, 애벌레를 그 중 하나의 용기에 넣었다.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잎은 즉시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방출하여 손상된 잎이 보내는 위험 신호로 두 번째 용기에 퍼졌다. 연구원들은 잎이 이 손상된 식물로부터 신호를 받았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 여러 차례 신호를 보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시간 영상에서 이러한 신호가 잎에 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래 식물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이웃에게 알리고, 이웃은 소식을 받은 후 방어 메커니즘을 가동한다. 그들의 논문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과학 저널에 발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주제는 또한 핀란드 알토 대학의 부교수인 로라 벨로프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식물도 말을 할 수 있는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매우 민감한 마이크를 사용하여 이 식물의 뿌리를 연결한 후, 컴퓨터 처리를 통해 습득한 주파수를 줄여 인간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그녀가 방에 있을 때, 이 식물은 마치 말하는 것처럼 쉬지 않고 재잘거리기 시작했지만, 외부인이 벨로프의 방에 들어왔을 때, 식물이 내는 소리는 곧 멈추었다. 벨로프가 혼자 남았을 때, 식물은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식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식물도 생각이 있기 때문에, 같은 실험이라도 다른 사람이나 식물을 바꾸면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와 협력하기를 꺼릴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기 온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미혹에 빠진 사람이고, 다른 공간 속에서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인생의 의미는 반본귀진하며 윤회를 벗어나 미혹 속에서 빨리 돌아가는 데 있으며,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또 다른 말이 전해지고 있다: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중국 땅에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은 만나기 어렵다. 사람 몸을 얻은 이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중토로 환생했을까? 중토는 중국 대륙을 지칭하는 것으로, 불과 십억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만났을까? 더 적어졌다.

​왜 중토는 태어나기 어려운가? 연꽃은 진흙 속에서 가장 빨리 자란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수행하기에 좋은 곳이며, 가장 더럽고 복잡하다. 먹는 음식조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구 국가들은 소비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라벨에 중국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표시해야 한다. 여기서는 무신론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혹에 빠져 있다. 사람들 간의 갈등도 매우 치열하여 수행에 유리하다. 모순이 하나도 없으면 사람은 발전할 수 없다.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 마음이 있으면 사람과 갈등이 생긴다. 물론 수련자는 항상 사람과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초기의 상태이다. 정말 내려놓으면 충돌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갈등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담담하게 보고, 집착을 버리면 결국 예의가 둥글게 된다.

​환희심을 수련해야 한다는 불교도가 있는데 환희심은 없애야 하는 사람 마음이 아닌가? 물론 사람 마음이 아니라 희열감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수련해 나온 것이 아니라, 경지의 표현이다. 그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고,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웃을 수 없다.

​미륵묘 앞에는 종종 이런 대련이 걸려 있다:

大肚能容容天下難容之事;開口便笑笑天下可笑之人

배가 부르면 천하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을 용납할 수 있고, 입을 열어 천하의 우스운 사람을 우습게 본다.

나는 전통 문화의 많은 것들이 수련하는 사람의 깨달음에서 얻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은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기고, 세상 일이 매우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주 평범한 일이라도 사람들이 거리를 걷는 것을 보면 매우 우스워하며, 하루 종일 웃음꽃이 피어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웃음이 넘쳐난다. 마음이 항상 화목한 상태를 유지하면 사람들과 쉽게 충돌하지 않는다. 이때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매우 원만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보면 웃게 되는데, 이는 매우 고층차의 상태 표현이다.

​중토에 태어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도인의 대각자가 이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부처와 가까이 있고 싶어하며, 이렇게 하면 불법을 듣고 구원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모두가 한 곳으로 몰려가면 자연히 그렇게 많은 기회가 없을 것이다. 예전에는 중국 대륙에서 가족 계획을 세웠는데, 특히 1980년대에는 편생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조기 출산을 한 사람들은 운이 좋았지만, 이제는 출산을 허용하고 다산을 장려해도 낳지 않으려 한다.

다행히도 모든 것이 마지막에 이르렀고, 나는 종종 썩은 것들이 지리멸렬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중동에서는 여러 곳에서 일을 벌이던 것들도 모두 막을 내리지 않았는가? 층층이 외부에서 중심으로 청리하는데, 최근에 들은 것은 모두 좋은 소식이다. 마지막 길을 잘 걷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