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과거 개인 수련은 개인 원만의 문제였지만, 현재 대법제자들의 정법 수련은 과거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이는 과거 수련과 완전히 다르고, 아주 위대한 일이며. 개인 수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정법(正法)하고 있고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정법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체를 정법(正法)과 비교하면 모두 보잘것없고 모두 다 견줄 수 없으며, 개인 수련 중의 상황도 정법(正法)과 서로 비교할 수 없다. 구세력의 층차(層次)가 아무리 높아도 이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면 위험한 것으로서, 우주정법 중에서 도태된다. 그러므로 떨어져 내려온 무수한 생명들이 모두 매우 높은 층차의 것들이다.”(《각지 설법 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구세력은 오직 개인 수련 방면을 겨냥해 마난(魔難)을 만들 뿐인데 그것들은 법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그것들에게 정법은 하나의 공백이다. 만약 대법제자가 마난을 만나 오직 개인 수련 방면에서만 찾으면, 늘 자신에게 무슨 두려운 마음이 있다거나, 자신에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있어서 초래했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방법은 구세력의 배치를 걸어가면서도 스스로 모르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요구하셨다.
“개인적인 수련과 사악이 법을 박해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을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미국서부법회설법》)
구세력, 그것들은 우주 대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들은 대법제자 개인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관계를 바로잡을 수 없고, 죽어도 회개하지 않으며 끝까지 버티는데 그것들은 도태되어 사라져야 할 운명이다. 대법제자가 만약 개인 수련과 정법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럼 아주 위험하지 않겠는가? 일부 동수가 반복적으로 박해를 당하는 것은 이것과 관계가 있지 않은가? 반복적으로 당하는 박해는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동시에 또 대법제자 정체 협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 지역에서 동수 A가 불법 납치된 후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는데 누군가 경찰에 동수 B의 이름을 제공했고 경찰이 곧 동수 B의 이름을 알고는 B의 상황을 조사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상황을 아는 동수가 곧 이 소식을 동수 B에게 전하며 집을 나가 숨으라고 했다
하지만 B 동수는 이 말을 듣고 한참 생각한 후 “나더러 어디로 숨으라는 거죠? 나는 숨을 곳이 없어요. 이곳(자료점)은 어떻게 하죠?”
그녀는 또 속으로 두려웠다. 이곳은 자료점인데 일단 피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사부님의 설법 《북미 대호수지구 법회 설법》을 공부한 것이 기억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여러분은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법을 잘 배우겠는가, 어떻게 대법을 위하여 일을 하겠는지, 어떻게 해야 제고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욱 잘 할 수 있는지 하며, 늘 대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할 뿐, 자신을 대법 중의 일원(一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공부했을 때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틀린 것으로 그렇다면 나는 법(法)에서 바로잡아야 하고 이 ‘자아(自我)’를 가져선 안 된다.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이 자료점은 정법의 수요(需要)이자 중생 구도의 수요이며, 동수의 수요이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圓容)하는 것으로 여기에 나 개인이 원하는 것은 없다.’
여기까지 깨달은 후 그녀는 단번에 박해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고 그녀는 더는 경찰이 그녀를 찾으러 다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 일은 마치 전혀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흐지부지되었다.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동수 B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단지 개인적인 두려움으로만 보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을 없앨지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대법 속에 놓고 정법(正法)의 각도에서 생각했다. 즉 개인 수련의 문제가 아니라 조사정법하고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문제이자 대법을 실증하는 문제로 보았다. 조사정법 이 과정중에서 그녀는 자아를 제거했고 완전히 중생을 위해 생각했으며 대법을 위해 책임졌고 동수를 위해 책임졌으며 조사정법함에 자아가 없었는데 어디 개인의 집착이 있는가? 그러자 두려운 마음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녀의 경지 역시 크게 승화되었다.
그녀가 만약 늘 내게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악의 박해를 초래했으니 나는 이 두려운 마음을 없애야 하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만 이 두려운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 이렇게 사악하고 공포스런 환경에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기란 아주 어렵다. 이런 사유는 단지 자신의 개인 수련을 생각한 것이다. 이는 비자각적으로 구세력이 구(舊) 이치로 배치한 개인 수련을 승인한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바로 이 두려운 마음을 겨냥해 마난을 만들어 고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 마음에서 뛰쳐나와 문제를 보고, 정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본다면 그럼 구세력은 아예 정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곧 구세력의 배치를 배제하고 부정할 수 있다. B 동수는 진정으로 법에 서서 정법을 실증했고 이는 개인 수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줄곧 개인 수련만 알고 정법을 인식하지 못하면 곧 자아에 빠질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위사(爲私)한 것으로 즉 구세력의 배치 속에 있다. “자각하지 못하고 그것들의 배치를 인정하면 그것들은 곧 당신을 상관할 구실을 가지게 되어 당신에게 여러 가지 위험을 만들어 낼 수 있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대법제자의 개인 수련은 정법을 위한 기초를 다진 것으로 개인 수련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며, 보다 큰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다. 대법제자 개인 수련과 정법은 서로 한데로 용합(溶合)된 것이다.
전반 우주 생명은 모두 대법에서 빗나갔으니 모두 대법제자 개인 수련과 정법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이 자체가 바로 조사정법이고 중생 구도다.
이상은 우리 소조에서 교류한 인식으로 만약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부디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0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