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객
【정견망】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속인의 고생인데, 사람이 일생에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으며, 병에 걸림은 사실 그가 전생에 진 빚을 갚고 그의 업력(業力)을 줄이는 것이다. 각종 종교에서 모두 이렇게 본다. 이 일에 대한 개인의 이해를 말해보고자 하는데,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꼭 정확하진 않을 수 있지만 단지 참고로 제공할 뿐이다.
경(經)에서는 수련인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한 사람이 그렇게 높은 경지로 수련하려면 그의 신체는 반드시 비할 바 없이 순정(純淨)해야만 한다. 병(病)이란 병균(病菌)이나 병독(病毒 바이러스) 등 매우 더러운 것이 유발하는데, 이런 것들은 층차가 아주 낮은데 어찌 수련인에게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도가공법(道家功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다시피 소주천(小周天)이 통하기만 하면 더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 신체 앞뒤로 두 갈래 주요한 큰 맥인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연결되면 사람 신체 내에서 순환하면서 운행하는 한 갈래 에너지띠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병독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소주천을 연마해 냈다고 느끼고 의념으로 이끌어 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진짜 연마해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그저 느낌일 뿐이다. 진정으로 연마해 내면 그것이 저절로 흐르는 것으로 의념을 쓸 필요가 없이 운행해야만 진정으로 연마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도가공법을 연마(練)하는 사람이고, 불가(佛家) 법문에서는 이것을 말하지 않는데, 모두 사부가 주기에 자신은 꼭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병이 없다고 해서 업력이 없다는 것은 아닌데 만약 한 사람에게 업력이 없다면 그는 곧바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이 업력은 여전히 각종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아마 심성 고험이거나 또는 신체적인 병업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발작하면 수련인 역시 분명히 병에 걸린 증상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병이 아니다.
사람이 일단 수련에 입문하면 그의 신체에는 경맥 에너지가 흐르는 것 외에 또 아주 많은 각양각색의 생명체나 공능, 호법(護法) 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모두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인체의 각 부분에 분포되어 있다. 이런 고에너지 생명체들이 있는데 질병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순식간에 찌꺼기조차 남을 수 없다.
예전에 일부 진정한 기공사가 사람의 병을 치료할 때 환부에 손으로 발공(發功)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다른 공간에서 관찰하면 그가 발출한 공은 모두 고에너지 물질이며 마치 열이나 빛과 같은 것이라 환자의 몸에 발출하기만 병이 곧장 도망쳤고 병독도 곧장 소멸되었다. 다른 사람이 내보낸 공도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수련인 자신이 연마해 낸 공임에랴? 그러므로 수련인이 공이 나오기만 하면 곧 반드시 병이 없다. 진정으로 표현되는 것은 병과 같은 증상인데 그것은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병인지 아니면 병업인지 어떻게 구별하는가? 이것은 정말 구별할 수 없고 전적으로 깨달음에 달려 있다. 당신이 병이라고 생각하면 그럼 당신 심성의 위치는 바로 속인이고, 당신이 병업이라고 생각해 제거한다면 지나가는데 그럼 그것은 병이 아니다. 인간 세상은 미혹의 공간이라 당신더러 똑똑히 구별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굳이 나타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병업은 수련 초기에만 나타나고 수련이 아주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수련하는 각 층차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런 불가 이야기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번은 사흘 연속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자 제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아주 오래 전, 나열지(羅閱只)란 큰 성에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수백 가구가 살았다. 마을 동쪽 ‘다어(多魚 물고기가 많다는 의미)’라는 연못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뭍에 던져 놓으면 살아서 발버둥치는 물고기가 있었다. 그 세(世)에 네 살 어린이였던 부처님은 살아서 발버둥치는 큰 물고기를 보고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해 작은 나무 막대기로 물고기 대가리를 세 번 때렸다. 바로 이 인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수천 년간 고생을 겪었다. 설령 성불(成佛)한 후에도 이 인연의 영향으로 3일 동안 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이치에 따라 말하자면 불타(佛陀)는 이미 생로병사를 해탈한 각자(覺者)이니 당연히 이런 병업이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구하고 있기에 그의 업력은 사실 중생의 업력이다. 그가 병업을 드러낸 것은 사실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드러낸 것이다. 신통(神通)도 업력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은 일반 수련자에 대해 하는 말일뿐 불타는 업력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 그가 만약 업을 없앨 수 없다면 사람을 제도할 방법이 없다.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는 수련자와는 다르니 여러분은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흔히 모두 불타가 어떻게 하는가 본다. 불타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말했는데 그는 이 법을 남기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병업을 보여주신 것이다.
수련인이 만나는 번거로움은 모두 그의 심성제고를 위해 배치된 것으로 만약 이 점을 해내지 못하면 그 일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수련인은 또 단지 개인 수련을 위해 인간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명이 있는 것으로, 이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수련한다. 바로 중생구도의 사명이다. 그렇다면 만약 그가 이 일을 하는데 영향을 주는 병업이 나타났다면 흔히 다른 공간의 마(魔)가 교란해서 조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도 거리낄 필요 없이 그것들을 청리해야 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든 역시 그것들이 간섭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에게 정말 어떤 사람 마음이 있다면 그럼 분명 제거해야 하는데 그리고 나서 청리하면 그것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마(魔)에 대한 이해에 편차가 있다. 그 마는 모두 흉신악살(凶神惡煞)처럼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흉신악살은 층차가 아주 낮은 부면(負面)적인 생명이다. 고층차의 마는 심지어 부처의 형상이며, 사람에게도 자비롭지만 다만 그의 사상이 변이된 것으로 우주의 이치에 반대해 그의 표준에 따라 일을 할 뿐이다. 말법시기에는 이런 마들이 아주 많은데 어떤 사람은 내게 자신이 부처를 보았고 어느 신(神)을 보았는데 자신과 많은 말을 했고 어떠어떠하게 하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꼭 진짜 부처가 아니며, 진짜 부처는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데 당신이 보다시피 많은 작품에서도 그 신불(神佛)은 사람을 점화할 뿐이다. 《금릉탑비문(金陵塔碑文)》에서는 “영산이 겁을 당하고 뜨거운 불의 파도에 뒤집힌다. 겁겁겁이라. 신선이고 일반인이고 다 벗어날 수 없다(靈山遭浩劫,烈火倒浮濤。劫劫劫,仙凡逃不脫)”라고 했다. 여기서 영산(靈山)은 어디인가? 전설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처소인데, 그곳마저 겁난을 겪는다는 것은 우주가 갱신하고 있고 아주 높은 층차까지도 겁난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 우주를 크게 갱신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가 병들었기 때문인데 아주 높은 층차의 표준이 변이되었기 때문이다. 고층차의 변이는 아래 층차의 표준보다 아주 높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곧 안 된다. 천문학자들은 우주 거대한 은하의 소멸과 탄생을 관찰했는데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 인류 공간에 반영된 것이 이렇고 그쪽에서는 거대하고 패괴(敗壞)한 생명이 훼멸되고 다시 만들어졌다. 우리 수련도 마찬가지인데 속인과 비교하지 말고, 법의 표준과 비교해야 하는데, 자신이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지 보아야 한다. 물론 이 표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다 다르다. 당신이 어느 한 층까지 깨달으면 곧 그 한 층 표준에 따라 하는데 당신의 층차는 바로 그곳에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3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