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오만을 발견하다

대법제자

【정견망】

어젯밤,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문득 자신이 줄곧 뼛속 깊이 감춰진 고고(孤高)와 오만이 있음을 인식했다. 사실, 내가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어떤 친구가 내 첫인상이 너무 도도하고 오만해서 사람들이 나와 거리를 두는 것 같은데 실제로 사귀어보니 내가 꽤 상냥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오만함이 생명의 윤회 속에서 생긴 것이며, 이번 생(生)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만약 한 속인이라면 그것은 표면적인 삶의 질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정진요지》 〈경고하는 말〉)

“바로 당신의 모든 집착을 다 없어지게 버린다는 것이다. 한 가지 집착이 있어도 그것은 마치 자물쇠 같고 마치 관(關) 같아서 당신으로 하여금 출항할 수 없게 하는 닻줄과 같은데, 그것을 모두 끊어야 한다.”(《뉴질랜드 법회 설법》)

이것은 10여 년 전, 중국 공산당이 사악하게 파룬궁을 박해하던 정책하에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어느 대기업에서 해고당한 일을 떠올리게 했다. 당시 나는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정념으로 회사 상사들에게 대법 진상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개인수련에서는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나는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웠고, 줄곧 울면서 지냈다.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을 원망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던 것이다.

약 2~3년 후, 그 회사의 부서장이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걸어 돌아오라면서 자신은 당시 내가 사직당한 구체적인 상황은 모르지만 지난 일은 잊어달라고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박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가 더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돌아간다면 언젠가 회사의 다른 상사가 일시적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면 또 나를 해고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당시 다른 회사에서 꽤 잘나가고 있었고 그곳에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한 행동은 좋지 않았다. 전화로 내게 이 소식을 전해준 동료에게 회사의 잘못을 훈계하듯 이야기했다. 당시 나는 자신이 아주 이치가 있다고 느꼈고, 기분이 많이 풀렸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단지 자신의 감정을 풀었을 뿐, 태도가 전혀 상화(祥和)하지 않았으며 대법 수련자의 자비와 관용을 조금도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다!

다행히, 내가 한 말 때문에 그 동료가 무슨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한 번은 그 동료와 슈퍼마켓에서 만났는데, 그는 내가 가는 것을 눈으로 전송하면서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나를 가리킴)을 보면 아주 친밀함을 느낍니다.”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마르빠 사부님의 생신을 맞아 공양을 올려야 했지만 밀레르빠는 공양을 올리고 싶어도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바칠 게 없었다. 사모님이 그의 고통을 이해하고 남편의 조끼 중 하나를 몰래 가져다주고는 공양으로 바치게 했다. 이 작은 타협 때문에 원래 한 번에 없앨 수 있었던 업력이 뜻밖에도 18년이 지나서야 끝나게 된다.

이를 통해 나는 사부님의 홍대(洪大)한 자비를 더 깊이 체오(體悟 체험으로 깨달음)할 수 있었다. 당시 제자는 단지 법(法)에 대한 작지만 바른 믿음밖에 없었고, 사실 근본적으로 심성이 올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전혀 나를 탓하지 않으셨고 그저 모든 것을 감당하셨다. 또한 거듭 시간을 연장해 제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기회를 주고 스스로 제고하게 하셨으며 중생이 구도 받을 기회를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2008년 뉴욕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의 제고가 없고 당신의 원만이 없다면 당신이 구원한 중생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가지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오직 감당만 하셨을 뿐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셨다. 아울러 사부님께서는 이를 말씀하지도 않으셨다. 여기까지 쓰면서 눈에서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고 그 어떤 말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다.

최신 경문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야 하고, 법을 가장 중요시하며, 법으로 일체를 가늠해야 한다.”

앞으로 나는 반드시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사부님 말씀에 따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다그쳐 자신을 잘 닦고, 정체를 원용해서, 대법제자의 수련 환경을 수호하며 공동 정진할 것이다!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자비하신 고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허스!

내 수련에서 부족한 것을 폭로해 스스로 격려하는 동시에 동수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사부님의 헌신적인 희생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으로 정진합시다. 법(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