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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두 여자 동수의 남편에 대한 다른 태도

대륙제자

【정견망】

우리 지역에는 이혼한 여자 동수들이 몇 명 있다. 교류 과정에서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전남편에게 원망하는 정서를 지니고 있었는데, 대개 동수가 감옥이나 노교소에 들어간 후 다른 여자를 만났다. 그렇다면 수련인은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아래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본다.

사례 1 :

동수 A가 노동 수용소에 들어간 후, 남편은 “당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면회하러 갈게.”라고 했다. 처음 두 달은 면회하러 갔지만, 세 번째 달부터 면회가 중단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그녀를 버렸다. 남편이 만나는 여자는 A의 지인인데 외모도 그녀보다 훨씬 못했다. 그녀는 출소 후 남편을 몹시 원망했고 그녀가 불평할 때 적지 않은 동수들도 그녀에게 맞장구치며 함께 불평하면서 남편이 너무 나쁘다고 했다. 하지만 동수 A는 매우 정진했고, 세 가지 일 중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주위 동수들은 그녀에게 아주 탄복했다.

그러나 몇 년 후, A는 유방암에 걸렸다. 그녀는 안으로 찾아봤지만 어디에 누락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잘 아는 이들도 의아했다.

“그녀는 이렇게 정진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큰 병업관(病業關)이 나타났을까?”

이 기간에 또 다른 일이 발생했다. 전 남편의 여자가 그를 버리고 떠나자, 예전 시어머니가 A의 아들을 통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겠니?”라는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A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상황은 분명했다. 그녀가 안에 있을 때 남편이 상황을 악화시켰는데 지금 걷지도 못하게 되자 다시 돌아오길 원한다면, 자존심이 있는 여자라면 누가 그런 사람과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아울러 그녀 주변 동수들 역시 그녀의 이런 인식을 공유했다. A의 전남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모두들 불쾌하게 여겼는데 수년 동안, A와 주변 동수들은 줄곧 이런 인식이었다.

사례 2:

동수 B가 노동 수용소에 들어간 후, 남편은 따로 집을 구해 나갔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났다. B가 집에 돌아오니, 집은 낡고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으며, 방안은 두꺼운 먼지로 덮여 있었다. B가 친척을 찾아가 집을 수리하고 집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한 후에야 마침내 집처럼 보였다. 그녀가 들어간 후, 10살 난 아들은 줄곧 친정에 머물렀고, 그녀가 돌아온 것을 보자 괴롭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아빠가 날 버리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어요.”

B는 아들을 위로하고 남편을 찾아가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좀 달라고 했다. 그녀가 노교소에 들어가기 전에 약간의 저축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하더라도 그 돈의 절반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성격이 거칠어 그녀에게 돈 한푼도 주지 않고 대신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B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일자리를 구해 스스로 돈을 벌어 아이를 학교에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차 상황이 나아졌다.

약 2년 후, 남편이 뇌혈전에 걸려 돈이 떨어지고 몸도 망가졌다. 이런 꼴을 본 여자가 그를 버리고 떠났다. 남편은 자기 몸도 간신히 돌볼 수 있는 상태였다.

B는 이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매일 일을 마친 후 남편을 찾아가 요리도 해주고 집안일도 해주었다. 어떤 친척이 말했다.

“너는 어쩜 그렇게 자존심도 없니? 네가 가장 힘들 때 너를 버렸는데,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건 자업자득인데 뭐 하러 그를 상관해?”

B가 말했다.

“대법은 내게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를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일부 동수들도 말했다.

“인과응보이니 그 사람이 한번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도 좋아요.[역주: 한두 번은 돌봐주되 계속 봐줄 필요 없다는 의미]”

그러나 B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날마다 남편을 돌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일하느라 매우 바빴지만, 법 공부와 연공도 중단하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은 더 악화되어 혼자서는 살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 대소변까지 도와주어야 했다. B는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그러자 아들이 동의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B가 말했다.

“아들아, 엄마는 대법을 배운단다. 그 사람이 엄마에게 못되게 굴 수는 있지만, 엄마는 그를 나쁘게 대할 수 없구나. 엄마가 돌보지 않으면 그의 생명은 곧 끝장날 텐데 그렇게 하는 게 선한 행동이겠니?” 그러자 아들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가 남편을 데려온 후에도, 그는 성격이 여전히 다혈질에 먹고 마시는 것도 까다로웠고 걸핏하면 그녀를 욕했다.

B는 속으로 생각했다.

‘법(法)은 자비롭지만 위엄도 있으니 그가 계속 업(業)을 짓게 놔둘 수는 없다.’

그녀는 엄숙하게 말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나 했겠어요? 당신이 한 일을 공개적으로 내놓을 수 있어요? 이것은 대법이 나를 개변시킨 것이고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잘하라고 하신 겁니다. 당신은 설마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러자 남편이 조용해졌고 다시는 그녀를 욕하지 않았다.

B는 날마다 법을 공부할 때 남편과 함께 공부했다. 출근하기 전에는 남편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꼭 외우라고 당부했다. 그녀는 연공할 때도 남편이 따라서 하게 했다. 서서히 남편의 신체도 좋아졌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B는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나갈 때면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나갔다. 그 후 남편의 건강은 갈수록 좋아졌고 마침내 완전히 회복되었고 그 역시 대법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

B가 이 이야기를 할 때, 현장에 있던 많은 동수들이 다 눈물을 흘렸고, 어떤 사람들은 흐느껴 울었다. 나도 당시 마음이 몹시 아팠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A가 B처럼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었다면, 얼마나 큰 도약이 있었을까? 그녀 신체의 병업가상도 아주 빨리 호전되었을 것이다. 수련인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심성을 제고하느냐에 달려 있다. 심성제고만이 관건이다. 만약 사람의 관념을 돌파해,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말고, 중생으로 보고, 남편에 대한 증오·불평·질투 등 사람 마음을 구세력이 억지로 가한 가아(假我)로 보았더라면 돌파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막혔다.’

또한, 주변 동수들이 이 문제에서 사람 마음으로 동수를 위로하고 동정해서 동수의 말에 따르지 말고 법에서 동수를 격려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라고 했어야 한다. 원한을 닦아내야만 자비가 나오고, 자아를 내려놓아야만 제고할 수 있고, 남편을 구하는 것만이 대법제자의 흉금이며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올해 션윈 마지막 공연[역주: 올해 대륙에 방송된 NTD 위성 방송을 말함]에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 하나 있었다. 대법제자를 구타하던 경찰관이 다리를 다쳐 걷지 못하자 대법제자가 그를 업고 간다. 그는 등에 업혀서도 여전히 때렸으니 얼마나 사악한가? 그러나 얻어맞는 대법제자는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표정이 담담했다. 그는 몸으로 “나는 당신을 위하는 것으로 당신을 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선심(善心)은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었고 경찰관도 더는 때릴 수 없었으며 결국 그는 대법을 수련하는 일원이 되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션윈 마지막 프로그램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는 대법제자들이 수련의 최후 시각에 흉금에서나 경지에서 모두 이런 상태에 도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우주(新宇宙) 생명의 상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