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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파룬궁 수련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다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올해 여든이 가까운 농촌 대법제자다. 우리 부부는 나이는 많지만 둘 다 자식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평소 독립적으로 생활한다. 20년이 넘는 비바람 속에서 누가 나를 설득하러 오든, 누가 무슨 교(敎)를 믿으라고 끌어도, 아무도 나를 움직일 수 없었고 나는 한마음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며 끝까지 수련한다.

1. 북경 상방

박해가 처음 발생했을 때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북경에 가서 상방(上訪)했다. 내가 두려워서 감히 가지 못하자,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다. 며칠 동안 가부좌하고 발정념 할 때 엄지손가락 크기의 대마두(大魔頭)가 나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비할 바 없이 높고 컸으며 북경 승용차는 성냥갑처럼 보였고 북경 무장 경찰도 전혀 크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 다른 동수와 함께 북경에 가서 상방하기로 상의했고 동수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점화하셨으니 갑시다, 같이 북경에 가면 틀림없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가족들이 내가 북경에 청원하러 가는 데 동의하지 않았고 내 수중에 돈이 없어서 동수한테 여비를 빌렸다. 우리는 함께 북경행 기차표를 사서 새벽 5시쯤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나는 가져간 2~3 미터 가량의 ‘파룬따파하오’ 현수막을 돌 난간에 걸고 동수와 함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고 곧 떠났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가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을 알고 우리는 다시 천안문 광장에 돌아가 발정념을 했다. 우리가 막 떠나려 하는데 한 무장 경찰이 갑자기 동수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렇게 심문했다.

“당신 파룬궁이지? 신분증 좀 봅시다.”

동수가 당황해서 말했다.

“신분증은 여관에 있어요.”

내가 급히 무장 경찰에게 말했다.

“우리는 친척을 방문하러 왔으니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여기 기차표도 있으니 보세요.”

내가 그에게 돌아갈 기차표를 보여주자 무장 경찰이 기차표를 보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우리는 순조롭게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은 내가 북경에 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곧 돈을 빌려 동수에게 순조롭게 돌려 주었다.

2. 누가 나를 설득하거나 다른 교를 믿으라 해도 파룬궁을 수련

중공의 지속적인 탄압과 박해로 인해 친척과 이웃들 중 일부는 기독교나 불교를 믿었다. 그들은 모두 내게 파룬궁을 배우지 말고 자신들이 믿는 교를 믿으라고 설득하러 왔었다. 심지어 기독교 신자 몇 사람은 나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나더러 기독교를 믿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끌어갈 수 없었고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 나중에 그 기도를 이끌었던 친척은 병에 걸려 죽었다. 불교를 믿던 친척이 나를 불교로 끌어들이려 할 때도 나는 ”난 그냥 파룬궁 이 한 문(門)을 믿어요.”라고 말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