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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면(負面) 사유”를 경계하다

하북(河北)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부면 사유’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 발생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 지역에 한 노년 동수가 있는데, 남편이 그녀의 수련을 반대했다. 그녀는 줄곧 가정관(家庭關)을 넘지 못했고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감히 집에서 책을 읽거나 연공조차 하지 못했다. 나중에 신체에 병업가상(病業假象)으로 아프게 되자 자식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퇴원 후 며느리가 “병원까지 갔는데 왜 아직도 책을 읽느냐!”면서 대법 책을 빼앗아 갔다. 이렇게 이 노년 동수는 연마를 그만두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마땅히 예전 동수를 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교적 그녀를 잘 아는 두 동수가 집으로 찾아갔다. 가서 상황을 알아본 후 마지막으로 한 동수가 그녀에게 “아직도 책을 읽고 싶으세요? 만약 읽고 싶다면 책을 한 권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동수가 “며느리가 또 가져가면 어쩌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책을 보내주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서 돌아온 후 이 노동수는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동수는 급히 안으로 찾았고 (책을 주지 않은) 이 일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나와 의논하자 나는 분명히 잘못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책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동수가 다시 책을 볼 기회를 박탈한단 말인가? 이건 마치 질식이 두려워서 음식을 전폐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전형적인 부면 사유다.

나는 또 과거에 현지에서 일어난 또 다른 일이 떠올랐다.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가 발표된 얼마 후, 《명혜주간》에 올라왔다. 동수들은 이 경문을 모든 중생에게 널리 배포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힘을 합쳐 곧 가가호호 배포에 나섰다. 나중에 또 사부님의 신경문 《왜 인류 사회는 미혹의 사회인가》가 발표되자 《명혜주간》에 또 올라왔다. 내가 다시 배포할 수 있는지 묻자 동수들이 오히려 배포하지 않는다거나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경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읽지 않거나 버리는 것이 두렵고 이렇게 하면 업을 지을까(건물에 배포했다가 관리인이 가져간 경우도 있었다)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읽지 않거나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읽고 싶고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경문을 읽을 기회를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라고 했지만 결국 이 일은 추진할 수 없었다.

“질식이 두려워 음식을 전폐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질식할까 두려워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이는 아주 심각한 부면 사유를 반영한다.

이런 종류의 부면 사유는 수련에서 아주 흔하다. 예를 들어, 며칠 전 우리 지역에서 현재 법난(法難)과 동수 구출을 겨냥한 작은 법회를 열려고 했다. 장소는 후통(胡同 골목) 반대편에 건물을 짓고 있는 현장으로 정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사람이 공사장 맞은편에 서 있었다. 나중에 동수들이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골목 입구에 이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많은 이들이 ‘이 사람이 뭘 하는가? 우리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무리씩 온다면 그가 보지 않겠는가? 그가 본다면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유는 겉으로는 안전을 고려한 것 같지만 사실 생각이 나오기만 하며 먼저 나쁜 것을 생각하는 이것은 전혀 정념(正念)이 아니고 부면(負面) 사유다. 정념이라면 마땅히 ‘설사 누군가 정말 우리를 보더라도, 우리가 하는 것은 가장 옳은 일이고 가장 신성한 일이다.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간섭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부면 사유는 또 병업마난에 처한 동수가 법에 없는 것을 볼 때 가장 먼저 “당신이 어찌 이렇게 하는가, 당신은 어떠어떠하게 해야 한다!”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힐난하는 방식의 도움은 동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도리어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유 속에는 동수에 대한 비난, 원망, 경멸, 조급함, 무력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유독 선(善)과 자비가 없고 또 이해와 동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부면 사유는 또 다른 표현이 아주 많다. 가령 경찰관을 볼 때, 경찰차를 볼 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진상을 알릴 때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을 볼 때 등등. 이런 부면 사유는 사람이나 사물의 가장 나쁜 상황을 먼저 생각하며, 법에 손실을 입힐지 모른다는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나타난다. 그것의 교활함은 흔히 “법을 위해 고려”한다는 외투를 입고 있어 사람이 구별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수련인의 정념이 아니다.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수련인의 제고를 심각하게 저애할 것이다. 수련인이 닦는 것은 일사일념(一思一念)으로 모든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할 것이다.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