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정견망】
《정견주간》에 실린 〈사고(思考)와 조심(操心)〉 문장을 보고 큰 계발을 받았고 동수가 수련 중에 깨달은 것이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으며 동수가 바르게 깨달은 법리가 큰 감동을 주었다. 동수들과 교류하고 나누기 위해 글을 쓴다. 아마 다른 동수들의 더 좋은 의견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속에는 나만 아는 완고한 돌 하나가 숨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성실하고 정직해서 친지들도 다 인정한다. 때문에 우리는 친지들과 관계가 좋은 편인데 특히 큰 시누이 가족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내가 박해를 받던 몇 년 동안 큰 형님 부부로부터 따뜻함을 받았다. 나는 감옥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매년 남편과 함께 선물과 돈을 가지고 두 분께 인사를 드리곤 했다. 큰 형님이 사망한 후에도 몇 년 동안 평소처럼 찾아가곤 했다.
매년 큰 형님 집에 가면 그 집 며느리(우리는 조카며느리라고 부른다)가 우리를 보면 아주 싸늘하게 대했다. 한겨울에도 음식은 물론이고 따뜻한 물 한 컵 주지 않았다. 우리는 매번 배를 곯고 돌아와야 했다. 남편은 이 일 때문에 몹시 화를 냈지만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화를 내진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또한 친척 결혼식에 참석해서 만날 기회가 있을 때에도 조카며느리는 우리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우리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 갔을 때도 조카며느리가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는 다른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우리를 보더니 피하면서 우리를 무시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의 냉담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치 쓰디쓴 황련(黃連 역주: 가장 쓴 맛이 나는 한약재) 연못에 빠진 것처럼 비록 말은 없어도, 속으로 고민스러웠고 스스로 이런 사상과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제 결혼식에 다시 참석했다 돌아온 후 내 마음은 다시 반복되었고, 끝없는 번뇌가 나를 괴롭혔다. 조카며느리의 그 싸늘한 표정이 머릿속에 남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았고 마치 가슴이 돌에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나는 감정을 통제하고 《정견주간》을 집어 들고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동수가 말했다.
“원래 사고(思考)란 사상에 대한 고시(考試 시험)로 일사일념(一思一念)에 대한 고시다. 사람이 일단 생각을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답안을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일생은 바로 수련이란 고시 속에 있는데 매분 매초마다 늘 문제에 답을 내고 있고 늘 점수가 매겨지고 있다. 한편 조심(操心 직역하면 마음을 조종한다는 의미)이란 사람 마음이 조종당하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두 단어에는 사실 아주 깊은 수련의 내함(內涵)이 담겨 있다.”
나는 즉시 막힌 것이 뚫렸고, 원래 사고란 바로 사상에 대한 고시이며 일념만 움직여도 답안을 내는 것이구나. 우리 대법제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떻게 수련하는지, 사부님께서는 모두 법에서 설명하셨다. 즉,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답을 주셨다. 우리가 수련하는지 볼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늘 당신들에게 안을 향해 수련하고, 문제가 있으면 자신을 찾으라고 알려 주었다.”[1]라고 하셨다. 나는 모순이 생겼을 때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았다. 조카며느리가 왜 우리를 싸늘하게 대할까? 법리에 따라 나는 문제의 근원을 찾았다.
조카네는 10여 년간 말을 키워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더 번창해서 백 마리에서 수백 마리로 발전했으며 이미 큰 부자가 되었다. 한편 남편은 마을에서 첫손에 꼽힐 정도로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때문에 조카 부부는 늘 남편의 능력을 탐내며 말 키우는 일을 도와주길 원했다. 여러 번 도움을 청했고 한 달에 3천 위안을 준다고 했지만 이미 칠순이 넘은 남편은 나이 때문에 부담을 느껴 그들의 요청을 승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에게 매우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남편이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 이유가 내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남편 일은 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것이 이런 불쾌한 결말을 초래한 이유였다.
안으로 찾음을 통해 나는 자신이 자비심을 내지 못했음을 발견했는데 마땅히 조카 부부에게 이 문제를 명확히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제3자라 여기고 수수방관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이 나를 오해하게 만들었다. 수련인과 속인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면 당연히 수련인의 잘못이다. 나는 이 문제를 자비로운 심태로 처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어 우리를 업신여긴다며 사람 마음으로 대했고, 마음속으로는 늘 그들에게 짜증을 냈던 것이다.
교류 글에서 동수는 또 말했다.
“사람은 왜 마음이 조종당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사람 마음이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층 깊이 들어가면, 조심은 사실 조종 당하는 것이다. 고층 생명이 인생의 일을 배치하자면, 사람의 집착·감정·욕망을 이용해 사람 마음을 조종해 사람으로 하여금 번뇌·우울·쟁투 및 고통에 빠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오직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만이 사부님께서 관할 하시기 때문에 비로소 진정으로 이 일체를 간파할 수 있다. 또한 비로소 인생에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일은 다 고험(考驗)이고 모든 일념(一念)이 다 점수가 매겨지고 기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마침내 활연히 깨달았고 자신이 번뇌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원래 고층에서 나의 사람 마음을 이용해 나를 조종한 것으로 그것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 차례 고시에 실패한 근본 원인이었다.
몇 년 동안 속인과 잘 지내지 못해 나타났던 여러 차례 번뇌들은 자신이 법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해 여러 차례 고시에서 늘 백지 답안만 제출하도록 했다. 수련인이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수련을 말할 수 없다.
“세상의 부모 마음을 동정한다[可憐天下父母心]”는 속담은 불효자식들에게 하는 충고다. 사부님은 부모를 능가하시는데 무량한 자비로 우리를 제도해 신우주(新宇宙)로 들어가게 하셨고 신우주의 생명이 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천상의 모든 신들조차 부러워하는 영광을 주셨다. 우리는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러나 나는 오히려 사부님께서 사람에서 걸어나오도록 배치하신 여러 차례 고시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으며 반복해서 실패했다. 나는 얼굴에 땀이 날 정도로 부끄럽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면목이 없고, 사부님을 기만한 잘못을 저질러 면목이 없으며,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못하고 수련인의 행동이 아니었음에 면목이 없다. 나는 분발해서 따라 잡을 것이며 자신의 이 마음을 잘 수련할 것이다. 성연(聖緣)을 소중히 여기고 대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내 마음을 막고 있던 돌이 갑자기 사라졌기에 내 마음이 아주 밝아졌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시정을 바란다.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10》〈맨해튼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6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