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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집착을 파헤치다–오만과 자만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의 신경문 《각성하라》가 발표된 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줄곧 자비를 닦아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자비를 닦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내 수련은 좋을 때도 있다가 또 나쁠 때도 있었다. 신경문을 반복해서 읽고 자신과 대조해 보고 나서야 나는 근본 집착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자비에 도달할 수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자신의 깨달음을 사존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하니 혹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부모님의 착한 딸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눈에 착한 딸이었다. 어머니는 늘 “너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사랑스러웠단다. 울지도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고, 배부르면 잘 자고, 깨면 잘 놀았지. 자매들 중에서도 가장 순종적이라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어.“라고 하셨다.

나는 대기근 시대에 태어났는데, 당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 큰 압력이 되었다. 당시 다섯 식구였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 수입에 의지해 살았다. 나중에 여동생 둘이 더 생겼는데, 일곱 식구가 아버지한테만 의지했다. 그러니 사는 것이 매우 고되고 힘들었다. 어머니는 종종 굶주리시며 우리를 부양하셨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으려 했다. 당시 여동생은 아직 모유 수유 중이었고, 어머니는 야간 근무를 하면 한밤중에 젖을 먹이기 위해 휴가를 내야 했다. 부모님은 또 이렇게 힘들고 고된 삶을 살까 두려워하셨다.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되자 부모님은 나를 농촌에 시집보내는 것에 대해 은밀히 논의하셨다. 내가 세 딸 중 가장 순종적이라고 생각하셨고 농촌에 시집가면 식량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고, 기근이 들어도 온 가족이 굶진 않으리라 여기신 것이다.

내 생각엔 운명이었을 것이다! 정말 농촌으로 시집갔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봄에 심고 가을에 수확하는 법을 금세 익혔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도 나를 인정하셨다. 이웃들이 말했다.

“이 집 며느리는 다른 도시 사람 같지 않고, 쉬는 날에도 밭에서 일을 하네.”

시어머니와 친척, 친구들이 나를 칭찬할 때마다 시아버지는 옆에서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 나는 더욱 자랑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겼다. 들을수록 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나는 점점 열심히 일했을 뿐만 아니라, 시아버지께 모든 사람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앞장서서 집안일과 밭일을 했다.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는 매년 생신 때마다 네다섯 번 잔치를 열었다. 결혼 후 남편의 지도 아래 나는 금세 요령을 터득했고, 튀기고, 볶고, 찌고, 튀기는 모든 잔치 음식을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생신 잔치를 할 때마다 친척과 친구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친척과 친구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서 나는 내심이 좀 팽창했다. 자신이 정말 대단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을 때면 부엌일을 도맡았고 요리를 차리고 정리하는 것도 했다. 나중에는 시누이들을 데리고 냉채(冷菜 밑반찬)를 담당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취감이 넘쳤고 남편은 매번 나 때문에 기뻐했다.

그래서 시댁에서는 사실상 내게 최종 발언권이 있었다.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는 돈을 썼고 열심히 일했는데,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자아를 확대하고 증명해 주었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법을 얻은 후,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그저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후천적인 관념을 자양(滋養)하고, 그것을 자본으로 삼아, 자신을 높이 보고 오만했다.

2.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님께

어느 날 밤, 남편이 시아버지를 뵈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전화를 걸어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다음 날 아침 바로 회사로 출근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그는 “일이 있어서 당신한테 알리는 걸 깜빡했어. 오늘은 점심 먹으러 못가요.”라고 했다. 오후 5시쯤, 나는 문득 시아버지가 위독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만 두 번을 걸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를 걸자 딸이 받았다. 딸이 울면서 말했다.

“엄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삼촌이 사람을 불러 초도(超度)하고 있는데, 7시 30분에 끝낼 거예요. 엄마한테는 슬퍼하실까 봐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알았다, 알았어. 엄마 대신 할머니 잘 모셔라.“

나는 전화를 끊고 아들을 찾았고 빨리 오라고 했다. 아들이 집에 온 후 “빨리 먹어라. 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너도 두꺼운 옷을 좀 챙겨 할아버지 영전에서 밤샘해야지.”라고 말했다. 7시가 지나서 다시 아들에게 전화해 돌아와서 아이들을 봐달라고 했다. 나도 시아버지를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들이 돌아왔고, 딸과 고모부가 함께 나를 데리러 왔다. 시댁에 도착해서 보니 친척들과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지역 풍습에 따르면, 노인이 중병에 걸리면 돌아가시기 전에 장년 세대는 모두 돌아와 임종을 지켜야 했다. 즉, 임종 시 효도를 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내가 신앙이 있어서 시동생(불교 신자)과 충돌할까 봐 우려해 나를 부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이때 남편이 다가와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둘째 시누이도 “올케, 화내지 마.”라고 했다.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두 손으로 시어머니 손을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시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셔서 운 게 아니다.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대법과 신성한 인연을 맺으셨고, 사부님의 《홍음》을 여러 번 읽으셨기에 당연히 좋은 미래를 맞이하실 거라 믿는다. 하지만 나는 실망감과 억울함 때문에 울었다. 나는 평소 시어머니를 친정 어머니보다 더 잘 대했고, 시댁 형제자매들을 친정 가족보다 더 잘 대했는데 ‘어쩜 나를 이렇게 대하실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원망하고, 남과 이치를 다투고, 질투하고, 남에게 높은 표준으로 요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남의 것을 요구할 수 있는가?

나는 삼태를 조정하고 시아버지를 뵙기 위해 마음을 진정시켰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가득한 축복으로 시아버지를 위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반복해서 외웠다.

시아버지의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겨야 했다. 남편은 나더러 시어머니와 함께 집에 있으라고 했다. 남편의 쉰 목소리를 듣고, 장남으로서의 삶 역시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나는 아내이고, 대법제자이니 그의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

이때 나는 시댁에 대한 각종 사람마음을 내려놓았다. 그저 남편이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을 돕고 시아버지께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속마음을 내려놓았고 모든 것이 위타(爲他)한 것임을 보시고 제자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시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나는 정공을 연마할 때 가부좌를 틀 수 있었고, 또한 한 번에 40분 이상 연마할 수 있었다. 이는 《전법륜》에서 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는 말씀과 정확히 일치한다.

3. 관은 넘겼지만 마음은 넘지 못해

나는 시댁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내가 효부라고 생각했고, 좋은 며느리라고 칭찬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시댁에서는 나와 아들에게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아들 가족이 나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말하면, 내가 시동생의 행동을 알게 된 후 받아들이지 못해 충돌이 생길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집온 지 40여 년을 살아왔지만, 가족 중 누구와도 다툰 적이 없다. 둘째 고모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조카며느리를 가장 존경해. 큰일은 작은 일로 만들고, 작은 일을 해결하니까. 그러니 내가 어떻게 동생과 충돌할 수 있겠어?”

하지만 이번 일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나도 수련인의 상태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다. 설 연휴가 되면 늘 사람 마음이 올라왔다. 비록 점차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무릇 어떠하든지, 오로지 법 공부를 견지해야만 비로소 속인의 마음을 버릴 수 있고, 비로소 집착을 버릴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속인 중의 모든 것에 이끌려 움직이지 않는 데 도달할 수 있다.”(《각지 설법 2》 〈2002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

법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찾아보니, 체면심, 쟁투심, 비교하는 마음, 과시심,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일념(一念)을 냈다.

‘이건 내가 아니다. 가아(假我)다. 나는 원하지 않는다.’

며칠 후, 나는 아들 가족과 시댁에 갔다. 손자가 할머니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기에, 내가 휴대폰에서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의 통화 기록을 열어 보았다.

아들이 물었다.

“사건을 파헤치시게요?”

나는 “그냥 궁금해서 그래. 할아버지께서 언제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보기면 해도 화가 났다. 새벽 5시쯤, 시어머니가 다른 두 며느리와 사위 등 성(姓)이 다른 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내게만 전화를 걸지 않으셨다. 나는 속이 상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비록 자신이 수련인임을 알았지만, 수련인의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나는 시어머니가 정직하고 착하셔서 자식들의 일을 통제하지 못하셨을 거라 여겼지만, 통화 기록을 보니 모든 게 시어머니와 의논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평소 당신들은 가장 친한 사람으로 공경했는데, 모자 관계 때문에 나를 외부인으로 취급해서 큰며느리와 손자가 효도할 권리마저 빼앗는가.’

시어머니는 전에 사람이 죽기 전에 옷을 잘 입고 요도 두껍게 깔아야 자손들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막내 아들(시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든 것이 변했다.

시어머니의 막내는 바로 시동생이다. 그는 불교를 믿고, 자신의 소원에 따라 소위 초도(超度)를 한 후 수의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30년 전 시아버지를 위해 우리가 미리 준비한 수의는 전혀 가치가 없단 말인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기성복을 사는 것도 괜찮단 말인가? 왜 하필 나더러 미리 준비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셨을까? 시어머니는 손주들의 장래 복에도 관심이 없구나.’

나는 화가 나서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분노와 억울함이 커졌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나를 외부인으로 대하니 앞으로는 그들과 어울리지 말자고 생각했다. 만나기만 하면 화가 나는 것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닌가? 이게 수련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정진요지》 〈무엇이 참음인가〉)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만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는 것이고, 만나는 일체 찬양(讚揚)은 다 고험이다.”(《정진요지 2》 〈수련자는 자연히 그중에 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기왕 관을 넘었다면, 여전히 사람의 것을 원하는가? 나는 시아버지께 준비한 수의를 차려드렸다(그때는 수련하지 않았음). 그것은 내가 노인에게 빚진 것이다. 그가 입든 안 입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자손이 복을 받든 못 받든 그건 각자의 덕에 따라 결정되는데 사람이 어찌 배치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내가 불쾌하고, 화를 내며, 마음의 평형을 잃어야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기왕 좋은 일인데 나는 왜 기뻐하지 못하는가? 그럼 좋은 일로 여기고 넘기자. 남편과 아이들도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고, 온가족이 다시 행복한 즐겁게 살게 되었다.

연말에 남편이 예년처럼 시댁에 가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어 했다. 내 마음이 또 움직였다. 새해가 되면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고기와 채소를 섞어 만든 음식을 사서 준비하는 데 며칠씩 걸리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나 혼자 바쁘게 해야 한다. 명절에는 그래도 괜찮고, 상 하나 차리는 것도 쉬운데 새해에는 상을 세 개나 차려야 한다. 게다가 나는 예순이 넘었다. 손주들을 돌보는 것도 힘든데, 시댁 가족을 위해 봉사하려니 마음이 또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가족들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내가 왜 가야 하죠? 어머님이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매번 내가 돈을 내는데,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다 바쁜데 나만 한가해요. 체면이 서는 일은 내가 없어도 되고 돈을 쓰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나를 찾네요. 당신 가족들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서, 나도 너무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알겠어요? 내가 만약 속인의 이치대로 하자면 당신 가족과 인연을 끊었을 겁니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니 법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 가족을 다시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어느 날 아침 연공 중에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사람을 구하는도다”(〈법정건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의 정념은 어디에 있는가? 왜 늘 자비로울 수 없는가? 너의 근본 집착은 무엇인가? 왜 계속해서 넘어지는가? 누가 너를 가로막는가?’

(1) 너의 정념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정에 빠지고 정에 이끌려 이성을 잃고 혼자 헤어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2018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속인 이 층면에 있기만 하면, 모두 정에 잠겨 있으며 모두 정에 이끌린다.”

“그것을 이성으로 대한다 함은, 대법제자로 말하면, 당신의 이성이 강한지 강하지 못한지에 달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정념이다. ”

(2) 왜 늘 자비로울 수 없는가?

사람 마음, 사람의 정, 사람 생각으로 문제를 보기 때문이다. 내 관념에 부합하면 기뻐하고 즐겁게 당신을 대하고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의 심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람 마음에 따라 사람의 이치로 남과 논쟁하며 이를 통해 사람 마음을 키운다. 이러한 관념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내가 닦아 버려야 할 것이다. 내가 이러한 관념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자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慈悲(츠뻬이)는 수련해낸 것이지 표현해내는 것이 아니고,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영원히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시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각지 설법 4》 〈2003년 워싱턴 DC 법회 설법〉)

(3) 근본 집착은 무엇인가?

내가 가족과 모순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고 수련인이 마땅히 버려야 할 집착을 붙잡아 마땅히 제고 해야 할 때였다. 나는 법리(法理)를 알았음에도, 여전히 사람의 이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논쟁했다. 그것은 자아를 수호하고 자아를 실증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평소 칭찬을 듣다가, 가족들이 나를 무시하자 그 차이가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평소 그렇게 강경하지 않고, 집안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가장이고, 내가 전통의 길을 따라서 매사에 남편의 뜻을 따랐더라면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오만과 자만심이 아닌가?’

(4) 왜 자꾸 넘어지는가?

수련이 착실하지 않고, 기초가 확고하지 않으며, 늘 표면에서만 자기를 찾아, 뿌리를 캐내지 못했다. 내가 막 교류 문장을 쓸지 고민하다 내가 오만하고 자만심이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 내가 넘어진 이유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떠한 집착심이든 당신에게 있기만 하면, 각종 환경 중에서 그것을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한다. 당신에게 곤두박질치게 하고 그중에서 도(道)를 깨닫게 하는데, 바로 이렇게 수련해 온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한 정(情)을 표시할 유일한 길은 오직 제자가 정진하고 원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제자가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