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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신경문이 나를 일깨우다

길림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2005년에 법을 얻은 동북(東北) 지역 여성 대법제자로 올해 63세다. 금생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대법을 만난 것은 정말이지 삼생(三生)에 걸친 큰 복이다! 내가 법을 얻은 후 나와 주변 대법제자들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 동수는 쇠파이프에 맞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어떤 동수는 차에 치였지만 무사했으며, 어떤 동수는 붕괴 직전의 가족이 대법을 수련해 파경을 면했고, 어떤 동수는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말기 암 환자였지만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된 등등. 이는 파룬따파가 세간에 펼쳐낸 신기(神奇)이자 제자들에 대한 위대하신 사존의 무량(無量 헤아릴 수 없는)한 자비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오늘 필자는 설 연휴 기간에 발생한 한 가지 일에서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한 작을 일을 써내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올해 2025년 설 직전부터 내 이가 아프고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일상생활에 지장을 끼칠 정도였다. 먼저 좌측 윗니가 아프고, 부었으며, 이어서 좌측 아랫니가 아프고 부었고, 또 우측 윗니가 아프고 잇몸이 부었다. 나중에는 세 곳이 전부 다 아팠다. 이 과정에서 나는 줄곧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았다. 소업이라면 이렇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정월 열여드렛날에야, 동수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사부님의 신경문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를 주었다.

사존의 경문을 공경하게 읽은 후 나는 비로소 놀라 깨어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의 칭호는 가장 신성한 것이다. 그는 최고 우주대법의 수련자이며, 그는 사부를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생명의 근본으로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잘 수련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제 일위이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법(法)으로 자신을 대조하니 나는 정말 부끄러웠는데 사부님께서 바로 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자신을 수련인의 표준으로 했는가? 나는 법으로 모든 것을 가늠했는가?

예전에 나는 휴대폰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 보고 나서는 후회하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보곤 했다. 특히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면 속인처럼 즐거워했다. 가끔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었고, 볼수록 좋았으며,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멈추고 나서 또 한동안 후회했지만 때로는 스스로 구실을 찾았다.

“이건 대법 사이트의 것이고 이건 깨끗하니 봐도 문제가 없을 거야.”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휴대폰을 보는 것은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집착임을 알면서, 일부러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법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치통은 사소한 일이지만 수련인이 휴대폰을 보려는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는 것은 큰 일이다.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여러분은 이것이 말후(末後)에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후에 세상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대법 내부도 청리(清理)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사부님의 방할(棒喝)을 통해 나는 반드시 휴대폰을 보는 집착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또 내게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상생활에서 늘 남편을 삐딱하게 보았고 늘 남편을 원망했는데 때로는 정말로 화를 냈다. 평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그래도 법으로 자신을 요구해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지만 남편에 대해선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무슨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모두 일상의 작은 일들이다.

가령 남편이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거나, 개인위생이 떨어지는 등등이다. 모두 작은 일을 크게 본 것으로 단지 화를 억누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또 말로 공격했다. 이렇게 질책하고 원망하는 것은 마치 최근 몇 년간 습관이 된 것 같아서 입만 열면 나왔다. 물론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하면 옳지 않음을 알았고 연공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늘 사존의 《홍음》 〈도(道) 중에서〉의 자신을 단속하는 것을 위배했다. 상태가 때로는 좋았다 때로는 나빴다 했다.

오늘 사부님의 법이 다시 한 번 나를 일깨웠는데, 내가 이런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이것은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연극과도 같은 이렇게 악독한 인간 세상에서 자신을 닦아내야만 비로소 진짜임에도 나는 연극 속의 정(情)에 빠져 스스로 걸어나올 수 없었다. 이 연극에서 남편이 하는 연기란 바로 나를 성취하고 나의 제고를 돕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여전히 그를 비난하고 불평할 수 있단 말인가? 감사드려도 모자란 것이 아닌가. 이를 깨달은 후 나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내 마음이 변하자 관(關)을 넘길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20일 넘게 지속되던 치통이 다음 날 바로 좋아졌다.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오늘 이 글을 써서 나와 같은 잘못을 저지른 동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나를 경계로 삼아 하루빨리 정에서 걸어나와 대법의 진수(真修)제자가 되고, 무사무아(無私無我)로 수련 성취해, 대법제자라는 이 신성한 칭호에 부끄럽지 않고,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돌아갑시다.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