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얼마 전, 신전문화(神傳文化)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기왕에 법을 실증하는 것이니 사존(師尊)의 법을 인용하면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인터넷 봉쇄 돌파 프로그램이 끊겼다. 그래서 공유기를 재시작하고 다시 연결했다.
공유기가 재시작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비용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수수료를 지불했지만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송금이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만하자. 일단 우체국에 가서 택배부터 찾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문득 원인을 안으로 찾아보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야 비로소 내가 쓴 문장에 사존의 설법을 덧붙이는 것이 좀 억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글은 이미 아주 완벽한데 이렇게 하는 것 역시 대법에 대한 불경이다. 똑똑히 알고 난 후, 우편물을 찾아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인터넷이 복구되었다. 인터넷이 끊어진 것도 아주 정상적이다.
사존께서는 《유럽 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모순이 생길 경우 각자 나름대로 안을 향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일이 절대적으로 당신과 관계없으며 당신이 마땅히 버려야 할 마음이 없다면 당신 몸에서 이 일은 아주 적게 생길 것이다.”
그때 내 머릿속은 모두 외부 원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요일이라 은행 송금이 늦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온라인 결제 시간 전에 돈을 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심지어 비현실적인 여러 가지 이유들이 떠올랐다. 바로 자신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 보면 은행 송금 지연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못이다. 진정한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
사존께서는 《정진요지》〈대법 산동 보도소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이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그렇다면 속인이 만약 안으로 찾는다면 어떤 상황이 나타날까?
바로 《서유기》 제87회 “봉선군이 하늘에 죄를 지어 비가 그치자 손오공 선(善)을 권해 단비가 내리다”와 같을 것이다. 봉선군에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은 군후(郡侯 군 행정 책임자)의 잘못 때문이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해결책은 군후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군후가 잘못을 바로잡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비가 내릴 수 있었겠지만, 백성들은 아마 더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군후는 지방 관리이므로 그의 잘못은 지방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천상(天上)에서 주요한 큰 천체(天體)를 대표하기에, 우리의 일언일행(一言一行)은 아주 큰 범위에서 중생의 안위(安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대법제자의 행동은 더욱 중요하며, 반드시 안으로 찾는 것의 중요성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