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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덩굴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민간 전설에 따르면 제갈량(諸葛亮)이 8~9세가 되도록 말을 할 수 없었고 아버지가 근처 산에 보내 양을 치게 했다고 한다.

산 위 도관(道觀)에 한 도사(道士)가 살았다. 도사는 제갈량이 총명하고 귀여운 것을 보고 곧 그의 병을 고쳐 주었다.

도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도제(徒弟)로 거두마. 네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천문, 지리, 음양(陰陽) 팔괘(八卦) 및 병법(兵法)을 가르쳐 주겠다. 하지만 너는 매일 배우러 와야 하며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이리하여 제갈량은 도사를 따라 학습에 전념했다.

제갈량은 날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산속의 어느 암자를 지나가곤 했다. 어느 날, 산에서 내려오던 중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 그는 이 암자에 들어가 비를 피하려 했다. 한 젊은 여인이 그를 맞이했다. 늘씬한 이목구비에 피부는 곱고, 얼굴이 마치 천선(天仙)과 같았다. 헤어질 때 여인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앞으로도 피로하거나 목이 마르시면 이곳에 와서 차 한잔 하고 가세요.”

그 후 제갈량이 매번 암자를 방문할 때마다 여인이 반갑게 맞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사까지 차려주었다. 식사를 마친 후 담소를 나누거나 바둑을 두곤 했다.

그 후로 제갈량은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를 본 노도사(老道士)가 탄식하며 말했다.

“나무를 망치긴 쉬워도 기르는 건 어렵구나. 이렇게 오랫동안 헛수고를 했으니!”

제갈량이 말했다.

“사부님, 제가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도사가 말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가 흔들리지 않고, 배가 흔들리지 않으면 물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덩굴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나무는 왜 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 줄 아느냐? 이 나무는 흙보다 바위가 많은 산에서 자라는데 뿌리는 아래로 뻗고 가지는 위로 솟아 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겨울의 서리를 견뎌내며 날로 강해질 수 있단다. 하지만 덩굴에 단단히 싸여 있다면 자랄 수 없단다. 이것이 바로 나무가 덩굴을 두려워하는 이유란다.”

도사가 덧붙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아가씨는 사람이 아니라 본시 천궁(天宮 하늘 궁전)에서 온 선학(仙鶴)이다. 그녀가 속세에 내려오면서 미녀로 변신한 것이다. 네가 그녀를 좋아해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계속 이렇게 한다면 장차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느니라.”

제갈량이 믿으려 하지 않자 사부가 그에게 지팡이를 하나 주며 말했다.

“선학은 매일 밤 천하(天河 은하수)로 날아가 목욕하는 습관이 있으니 이때 네가 그녀의 방에 들어가서 옷을 태우거라. 그러면 그녀의 화피(畵皮)가 탈 것이다. 학이 암자에 불이 난 것을 보면 반드시 다시 날아올 것이다. 만약 그녀가 너를 해치려 한다면 이 지팡이를 사용하거라.”

그날 밤, 제갈량이 암자에 갔다. 정말로 침대에는 옷만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그가 옷에 불을 붙였다. 암자에 불이 붙은 것을 본 선학이 곧 날아 내려와 제갈량의 눈을 잡으려 했다. 제갈량이 지팡이를 집어 들자 학이 땅에 떨어졌다. 학이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제갈량이 학의 꼬리 깃털을 잡았다. 제갈량은 학의 깃털을 사부에게 가져갔다.

사부는 “만약 네가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다면, 애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제갈량은 이후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학의 깃털로 부채를 만들어 늘 손에 쥐고 다녔다. 이것이 바로 우선(羽扇 깃털 부채)의 내력이다.

[역주: 전통문화에서 제갈량을 상징하는 것은 학창의(鶴氅衣 학의 털로 만든 옷 또는 학처럼 흰 옷)와 백우선(白羽扇 흰 깃털로 만든 부채)이다.]

여러분은 이 고사를 읽고 어떤 소감이 있는가? 어떤 구절이 가장 인상이 남는가?

“이 나무는 왜 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 줄 아느냐? 이 나무는 흙보다 바위가 많은 산에서 자라는데 뿌리는 아래로 뻗고 가지는 위로 솟아 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겨울의 서리를 견뎌내며 날로 강해질 수 있단다. 하지만 덩굴에 단단히 싸여 있다면 자랄 수 없단다. 이것이 바로 나무가 덩굴을 두려워하는 이유란다.”

사실, 수련인이 집착(숏 영상 시청, 꽃이나 정원 가꾸기, 자녀와 손주 돌보기, 애정 표현)에 얽매이면 시간은 흘러가고 정력은 소모되며 수련에 집중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덩굴에 매인 나무와 같지 않은가? 부드러운 덩굴은 나무를 휘감아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이나 도끼로 베지 않고 거센 폭풍으로 찢을 필요도 없다. 그저 나무를 서서히 감싸는 것만으로도 나무가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수련인에게 꼭 가혹한 고문이나 피 비린내 나는 공포를 가하지 않아도 단지 동영상, 화초의 은은한 향기, 자녀와 손주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미색의 유혹만으로도 사람의 혼백을 사로잡고,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의지를 꺾고, 정진하는 발걸음을 가로 막기에 충분하다.

동수 진(辰)은 70대로 원래 대학교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어 한동안 장기 부전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동수 원원(沅沅 가명)은 한때 혼자 몸으로 체포를 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 기차를 갈아타고 천안문 광장에 가서 현수막을 펼쳤다. 하지만 몇 년 후, 다단계 및 강연으로 난법(亂法)했다. 지금 그녀는 경서마저 남에게 주고 더 이상 법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휴대폰을 보며 낄낄거리며 자신이 법 공부를 졸업했고 착실히 수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수 동동(桐桐 가명)은 예전에 법을 실증하기 위해 북경에 갔을 때, 차창 밖으로 불도(佛道)들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보았다. 또한 발정념을 할 때 파룬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보았다. 가장 공포스런 시기에 대법 자료를 제작했고 또 일찍이 꿈에서 자신의 이름이 명단 앞부분에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나중에 손주들을 돌본다…

동수 왕왕(汪汪 가명)은 큰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동수가 박해받아 사망한 사정을 해외로 보냈다. 이때문에 판결을 받아 큰 고생을 치렀다. 나중에는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30여 년간의 수련 과정에서 심한 고문 중에 전향하거나 배반한 사람들도 있지만, 속인의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여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훨씬 많다. 속인의 자질구레한 일에 미혹되어 점차 정진할 의지가 느슨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법에서 더 멀어지고 정진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사람의 시간과 사람의 정력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하루에 다섯 시간씩 휴대폰을 본다면 당신에게 법 공부와 연공할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날마다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면 세 가지 일은 몇 번째 위치에 있는가? 늘 손주를 돌본다면 사람을 구할 정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니 당연히 타인과 관계를 바로 잡고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늘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고 세 가지 일을 더욱 우선시해야 한다. 사람 몸은 아주 작은 부주의조차도 주차(主次 중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가 뒤집히고 본말(本末)이 전도될 수 있는데 마치 덩굴에 감긴 나무가 풀려나지 못하는 것처럼 세속적인 일에 얽매이게 된다.

이것은 수련인이 반드시 겪어야 할 고험(考驗)이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법(法)에 마음을 두면 자연히 세 가지 일을 다그치게 된다.
사람속에 마음을 두면 온갖 구실을 대며 게을러진다.

정진하는 동수들은 모두 시간을 짜내 법을 공부하고, 심지어 장을 보거나 요리할 때에도 법을 외운다. 마음이 법에 고정되면 사마(邪魔)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동수들은 설사 세속적인 일에 얽매여 있더라도 수련하려는 마음을 억제할 수는 없다. 만약 몸과 마음이 모두 세속적인 일에 얽매여 있다면, 그럼 내려놓지 못하고 또 수련해 올라가기도 어렵다.

덩굴에 얽매인 나무는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재목이 되기 어렵다. 사람이 세속 일에 얽매이면 수련해서 공이 자라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는 모두 이 일화를 명심하고 제갈공명처럼 이를 경계로 삼아 시시각각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수련이란 정말 아주 엄숙한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