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同真)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설법에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법 공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사부님은 또 고요한 마음으로 법 공부하지 않을 때 초래되는 심각한 결과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이 경문을 읽고 나는 법 공부가 참으로 아주 엄숙함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사상이 바르지 않으면 일부 부면(負面)적인 요소가 교란 작용을 할 수 있고 더욱이 법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일도 잘하지 못하고 심지어 저애 작용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부면 요소의 교란을 받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이 주도(主導)가 되려면 반드시 단정(端正)한 태도로 법을 공부하고 법 공부의 엄숙성을 인식해야 한다.
속인이 일을 할 때도 정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대(古代)에 학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때에도 단정하게 정좌(正坐)해야 했다. 불자(佛者)들이 경문을 독송하기 전에는 더욱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고대 속인과 수련인들조차 이러했으니 우리 대법 수련자들도 법을 공부할 때 반드시 단정한 태도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전법륜》의 매 한 글자는 다 사부님 법신이다. 우리가 《전법륜》을 읽는 것은 사부님 설법을 직접 듣는 것과 같으며, 대단히 엄숙하고 신성한 일이다. 단정한 태도가 없다면 안 된다.
사람은 본래 선악(善惡)이 함께 존재하고, 불성(佛性)과 마성(魔性)이 공존한다. 우리가 만약 단정한 태도로 법을 공부한다면 자기 체계 안의 모든 생명체들도 법에 동화해 신우주의 생명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단정하지 않은 태도로 사부님과 법에 대한 경외심 없이 법을 공부한다면, 주체(主體)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체계 안의 생명들도 법에 동화해 구도되는 정도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동수들은 법을 공부할 때 몸이 삐딱하거나 심지어 반쯤 누워서 한다. 또 어떤 동수들은 공부한 지 10분도 못 되어 물을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하는데 한 시간에 몇 차례나 법 공부를 중단한다. 어떤 동수들은 일을 하면서 법을 듣거나, 심지어 법을 읽으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책을 덮지도 않고 그냥 뒤집어 놓고 간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법 공부 태도가 단정하지 못한 것을 드러내는데 법을 공부할 때 이런 태도로 한다면 배후의 법의 요소가 현현(顯現)할 수 있겠는가?
인간 세상에서 학생이 수업을 들을 때도 아무렇게나 앉아서는 안 되고, 또 수업 중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우주 대법이고 법을 공부하는 것은 직접 사부님 설법을 듣는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 거기에 계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단정한 태도와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천상의 신(神)들조차 우리를 보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주 중의 어떤 물질이든, 전체 우주 중에 꽉 차있는 모든 물질을 포함하여 모두 영체(靈體)고, 모두 사상이 있으며, 모두 우주의 법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존재하는 형태다.”(《전법륜》)
우리가 법 공부를 할 때 단정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의 주체가 바르기 때문에 주변의 이런 영체(靈體)들이 우리의 바른 에너지 아래 법(法)에 동화할 것이다. 반대로, 법 공부를 할 때 태도가 단정하지 않으면 단지 스스로 잘 수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체가 바르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이런 생명들도 교란 작용을 일으켜 최후에 정법을 교란해 도태될 것이다. 이러한 생명체들이 일부러 대법제자들을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들은 바로 이런 생명인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대한다. 당신이 그것에게 부합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조종한다.
“그러나 이렇게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면,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원망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으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일으킨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오직 법 공부의 엄숙성을 인식해야만 사상(思想)을 고도로 집중할 수 있다. 구세력은 법을 박해하기 위해 우리 머리와 몸에 각종 변이된 물질을 이식했는데 이러한 물질 역시 생명이다. 우리가 법을 공부할 때, 이러한 변이된 물질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교란해 우리가 졸리고 피곤하게 하거나 정신을 산만하게 한다. 오직 우리가 사상 깊은 곳에서 법 공부의 엄숙성을 인식해야만, 主元神(주왠선)이 고도로 청성(淸醒)한 상태로 자기 대뇌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배척할 수 있으며, 이런 모든 교란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 대법제자가 이런 각종 교란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법 공부의 엄숙성을 인식하고 主意識(주이스)가 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법을 공부할 때는 곧 법 공부를 하고 모든 사상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데 심지어 법을 실증하려는 사상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일을 다 잘하지 못하게 된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기에 법을 바로잡는 것(正法)과 자신을 바로잡는 것[正自身]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체는 소우주이며, 법 공부 과정은 또한 정법의 과정이다. 만약 우리가 법 공부를 할 때 사상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 단락의 정법 과정에 작용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마땅히 동화시켜야 할 것을 동화시키지 못하고, 마땅히 구도해야 할 것을 구도하지 못한 것으로 사실상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은 후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 느꼈는데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마음을 고요히 하지 못한 법 공부의 엄중한 후과(後果)를 알려주셨고 우리에게 수련과 정법의 엄숙성을 알려주셨다.
앞으로 법 공부 중에서 오직 단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진정으로 법 공부의 엄숙성을 인식해, 모든 외래 교란을 배척하고, 진정으로 자신이 주도(主導)가 되어야만 사부님을 도와 정법할 수 있고,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으며,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부응할 수 있다.
이상은 신경문을 읽은 후 얕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6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