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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정한 대법제자인가?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를 읽은 소감

흑룡강 대법제자

【정견망】

이번에 사부님의 몇 편 경문을 여러 번 읽은 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진정한 대법제자인가?”

뜻밖에도 나는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었고 동시에 또 충격을 받았다. 정말 비참했다! 이렇게 다년간 법을 공부했음에도 자신이 진정한 대법제자라고 확신조차 할 수 없다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사고)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사고)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 “안으로 찾는다.”고 한다. ”(《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자신이 수련한 길을 돌아보니, 나는 늘 안으로 찾는다고 말은 했지만, 그러나 나를 말하지는 않았다. 동수가 모순을 겪거나 마난에 부딪히는 것을 보면, ‘당신에게 이런 마음 저런 마음이 나왔으니 안으로 찾으세요’ 라고 말했다! 늘 다른 사람의 잘못과 부족을 보면서도 이것은 동수를 위해 책임지고 남이 관을 넘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포장했다.

때로는 동수가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또 자신이 아주 억울하다고 여겼다. 이렇게 오랜 세월 어떻게 수련하는지 배우지 못했고, 자신이 남보다 수련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비교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가령 의심, 이익심, 남을 탓하는 마음, 경계하는 마음, 비난하는 마음 등 다양한 모순 속에서 다양한 사람 마음이 반영되어 나왔다.

“대법제자가 미혹 속의 사회에서 속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사상에서, 적어도 어느 한 방면에서 가장 쉽게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일을 함에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 서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의 외형이 속인이고 당신이 생활하는 환경 역시 속인 중에 있으며, 하는 일 역시 속인의 일이다. 설령 당신이 대법제자의 일을 한다 해도, 천상에는 텔레비전방송국이 없고 신(神)에게는 신문도 없다. 이것은 모두 속인사회의 형식이다. 만약 당신이 정념으로 당신을 지도하지 않고 대법제자답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세상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바로 속인과 같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이 단락의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의식주 등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아름답고 유행하는 옷을 좋아해야 하는가? 영양을 중시해야 하는가?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집에서 살아야 하는가? 명리정(名利情)과 체면을 추구해야 하는가?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두려움, 공포가 다 있어야 하는가? 은혜와 원한, 사랑과 원수에 얽매여야 하는가? 컴퓨터, 텔레비전, 인터넷 카페, 노래방에 중독되어야 하는가? …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을 생각해 보니, 현실의 유혹 속에서 뻔히 잘못임을 알면서도 얼마나 많은 착실히 수련할 기회를 놓쳤는가?

“당신들이 서로 협력할 때 사람의 마음이 있기에 서로 간에 마찰이 생기는데, 그것은 수련인의 상태와 과정이며, 결코 당신들 누가 정말로 좋지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 좋은 그 일면은 이미 격리되어 볼 수 없다. 당신들이 보는 것은 영원히 수련이 잘 안 된 이 일면이다. 하지만 당신들은 慈悲心(츠뻬이씬)을 품지 않아서는 안 되며 고정적으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재삼 말하는데, 좋은 일면은 당신들이 보지 못하며 저쪽은 이미 아주 좋아졌고 표준에 도달하였다. 표준에 도달한 것은 어떤 모양인가? 신의 표준이다. 그가 잘 수련하지 못한 그 일면은 표면으로 갈수록 좋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이미 아주 잘 수련했다.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당신들 이 환경을 소중히 여기라. 당신들이 걷는 길을 소중히 여기는 이것이 바로 당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이 단락을 읽으면서 나는 사부님께서 간곡하고 의미심장하게 나를 경고하신 것을 느꼈다. 십수 년간 수련해 왔음에도 나는 늘 주변 동수들의 이런저런 집착을 봤는데,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늘 이끌렸고 이를 통해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다양한 마음이 생긴다. 늘 남을 고치려고만 했는데 이는 구우주의 속성인 사(私)가 구성한 생명의 표현이다. 자신을 닦지 않았고 상대방을 자신의 거울로 여기지 못했고 상대방의 집착에 집착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또한 수련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고정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보면서 자신은 닦지 않았다. 나는 또 상대의 공간장에 패물(敗物)을 던져 넣었을 뿐만 아니라 동수를 해쳤다. 사람 마음으로 정체에 간격이 생기게 했으며 정법 일이 저해 받게 했다. 사람을 개변시킬 수 있는 것은 사부님과 법이다. 동수의 모든 표현은 다 나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내 마음이 물처럼 고요하다면 누가 또 당신을 이끌 수 있겠는가?

상유심생(相有心生)이라 수련인의 환경은 마음에 따라 변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표현은 바로 자신을 수련시키는 것으로, 당신에게 주는 사다리와 같다. 하지만 당신은 얼마나 여러 번 그 사다리를 허물어뜨렸는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으면 수련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또 진정한 대법제자라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소중히 여기라”는 말씀을 다섯 번이나 하셨다. 이는 마치 경종(警鐘)을 길게 울리신 것과 같다. 정법의 끝이 다가오는 시기에 재차 일깨워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어 남은 길을 잘 걸어가겠습니다.

작고 얕은 인식일 뿐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78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