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견(鄭一見)
【정견망】
나는 1994년, 합비(合肥)와 제남(濟南)에서 각각 한 차례 사부님의 설법 학습반에 참가했다. 이전에 합비 학습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으니, 오늘은 제남 학습반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자 한다. 이미 31년이 지났지만, 많은 일들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억 1
학습반에 참가한 기간에 평소 수련생들 사이에 서로 교류하곤 했다. 특히 한 수련생의 경험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만성적인 허리 통증을 앓았는데 특히 흐린 날이면 고통받았다. 서 있기조차 힘들었고, 때로는 집 안을 기어다녀야 했다. 그녀는 첫날 사부님께서 손을 흔들어 몸을 청리해 주시자 허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개가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번개가 번쩍”였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강조했는데, 번개가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부터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그녀의 묘사는 매우 생생하고 흥미로워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기억 2
첫날 등록하러 갔을 때, 두 번째 참가자는 수강료가 29위안 정도였다.
[역주: 당시 기존에 학습반에 참가했던 수련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비용을 절반만 받았다]
등록 후, 나는 잠시 인도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오갔는데, 등록하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등록하는 사람과 지나가는 사람의 기질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누가 등록하러 오는 사람인지, 누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겉보기에 순박하고 성실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등록하는 사람이었고, 조금 껄렁대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등록 당일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또 한 가지 일은 어떤 여자 수련생이 이유를 알 수 없이 큰 소리로 불평한 것이다. 내가 수업을 두 차례 들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보는 것이라 더욱 충격이었다.
나는 또 학습반 기간에 한 수련생이 발견한 시계를 단상으로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마이크를 들고 누가 시계를 잃어버렸는지 물으셨다. 잠시 후, 주인이 시계를 찾으러 왔다. 사부님께서 본인 여부를 확인하고 시계를 돌려주셨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직접 목격했다. 학습반 기간에 흔히 있었던 일이다.
기억 3
한번은 수업 중 쉬는 시간에 한 수련생이 “리 스승님이 오셨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사부님께서 관중석 중앙 단상에 서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셨다. 사부님은 환히 웃고 계셨는데, 품위 있고 우아한 태도를 지니셨다. 그 느낌이 너무 아름다워서 “위대하다”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시야가 가려졌다. 나중에 갑작스런 박해가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닥쳐왔을 때, 나는 때때로 당황스러웠다. 이전에 공산당에 대해 전혀 몰랐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마음속에서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내심으로 견딜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사부님을 전에 뵌 적이 있었기에, 단지 사부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신심(信心)이 더욱 확고해졌다. 당시 나는 제남 학습반에서 본 사부님 모습을 떠올렸다.
기억 4
학습반이 끝나고 수련생들이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두 그룹으로 나눴고 또 그룹 내에서도 각 지역별로 수련생들이 스스로 조(組)를 이뤘다. 한 조가 사진을 찍으면 바로 흩어졌고 다른 조가 재빨리 줄을 섰다. 이 과정이 양쪽에서 계속되었고, 사부님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셨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사부님께서 돌아서시더니 수련생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 미소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이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조금도 번거로워하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부님의 미소는 뜨거운 태양 아래 줄을 서 있는 수련생들을 위로하는 의미였던 것 같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생각하신 것으로 우리가 힘들어할지 걱정하신 것이다.
사진 촬영 중에 몇몇 젊은 아가씨들이 사부님을 따라다니며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내 기억에 그때 사부님 표정이 매우 엄숙하셨던 것 같고 나중에 그녀들은 스태프들에게 제지당했다.
기억 5
어느 날, 설법이 끝나고 공법을 배울 때 나는 이미 배웠기 때문에 두 손을 허리에 얹고 계단에 서 있었다. 문득 사부님께서 바로 나를 바라보시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얼굴을 돌렸다, 잠시 후 다시 돌아다보니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사부님의 눈빛은 내가 사부님을 바라보아도 조금도 변하지 않으셨고, 그저 뚫어지게 나를 보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보시는 것을 보고 또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다시 돌아보니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보고 계셨다. 나는 다시 돌아섰고, 잠시 후 다시 돌아섰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는데, 아주 기쁜 미소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바라보시는 것을 보고 다시 돌아섰고, 잠시 후 다시 돌아보았다.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거니셨는데 마치 감정이 격해지신 것 같았다.
다음 날,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을 연마할 때 나는 사부님께서 다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시는 것을 보았다. 전날보다 더 환해 보이셨다.
이것이 제남 학습반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이다. 사부님의 미소는 줄곧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과거 오랫동안 나는 이를 당연히 여겼다. 오늘 이 일을 떠올리니 감개가 무량하다. 우리가 걸어온 이 길이 아주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처럼 전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한 차례 좌절을 겪었고 하마터면 함정에 빠져 실패할 뻔했다. 또한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이런 곤두박질은 피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2년 동안 《전법륜》을 열 번 외우고 날마다 각지 설법을 한 권씩 읽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 궤도로 돌아왔으며 동시에 자신이 애초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깨달았다. 아마 나처럼 이렇게 시간과 조건이 되는 제자는 아주 적을 것이다.
지금 나는 몸에 병업 반응이 나타난 제자들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집착이라도 소홀히 여겨서 커지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금 이 사회 환경속에서, 특히 여전히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속인들과 자주 접촉하는 상황에서는 대단히 어렵다. 환경에 오염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단지 눈에 보이는 마난(魔難)뿐 아니라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험난함이 있다. 우리 연공장에서 1999년부터 지금까지 견지한 이들은 원래의 겨우 10분의 1에 불과하다.
사부님 정법의 어려움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 나는 오늘에야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의 사명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법(末法) 말겁(末劫)의 난세에 법을 바로잡고 우주 중생을 구도하고 계시는데,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바로 정법(正法)을 실증해야만 성공할 수 있고, 중생이 구도받을 수 있으며, 대법제자의 수련도 원만할 수 있고, 미래 생명의 원용불멸(圓容不滅)한 기제도 만들 수 있다.
아마 사부님께서는 내가 거대한 난과 관에서 걸어나오는 모습을 보셨기에 비로소 내게 미소를 지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은 아직 끝까지 걷지 않았으니 나는 아직 방심해선 안 되며, 사부님과 중생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1994년은 내가 두 차례 학습반에 참가해 정법 수련을 시작한 해였다. 하지만 이 길의 어려움은 당시 우리의 애초 상상을 훨씬 초월한다. 대법에 대해 확고부동함은 대법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세상의 어떤 이치도 대법과 비교할 수 없다. 정념이 확고한 대법제자는 어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잘 수련할 뿐만 아니라,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정념으로 악을 제거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서약을 실현해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2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