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청년 대법제자 심여(心如)
【정견망】
나는 1997년에 처음으로 법을 얻은 젊은 대법제자다. 어머니는 1997년 7월에 법을 얻으셨고, 나는 어머니보다 6개월 먼저 법을 얻었다. 사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꿈에서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고 끌어내리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뭔가를 붙잡으려 해도 안전하게 잡을 것이 없었고,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나는 어려서 몸이 좋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 숨이 차서 기절하곤 했다. 당시 나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나이는 어렸지만 넘어지면 끝장이니 넘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여러 번 잘 견뎌냈다. 희미하게나마 자신이 사명을 지니고 이곳에 왔다는 기억이 있었지만, 그 사명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법을 얻은 후, 대법(大法)이 마음속 수수께끼를 풀어주었고, 모든 신체적인 비정상도 다 좋아졌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나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런 아이였다.
1999년 720 박해를 떠올려 보면, 중앙 정부 내의 몇몇 정치 건달들이 대법을 미친 듯 이 탄압하고 비방했다. 이미 소식을 듣고 북경에 간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 나도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도 북경에 가야 해요. 또 가지 않으면 사교(邪敎)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빨리 가서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공정한 말을 해요.”
2000년 12월 25일, 아주 춥고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우리 지역 몇몇 동수들이 버스를 타고 다른 성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는 천진에서 내려 북경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머니는 심하게 토하셨다. 머리가 어지럽고, 심지어 누런 물을 토했으며, 입이 썼고, 사람이 완전히 지쳐서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어머니를 부축해서 동수와 함께 호텔을 찾았다. 직원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어머니 신분증을 가져왔다.
그들은 우리한테 이곳에는 뭘 하러 왔는지 물었다. 동수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병원에 가려고 왔어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렇게 체크인했고, 어머니와 나는 같은 방을 썼다. 어머니는 침대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못하고 더 이상 토하지도 않고 온몸을 떨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이불을 덮어주자, 어머니는 잠이 드셨다. 어떻게 밤을 지새웠는지 모르겠다. 당시 나는 겨우 15살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천안문 근처에 있는 호텔을 찾았다. 사합원(四合院)이었는데, 우리는 동쪽에 머물렀다. 어머니와 나는 음식을 사러 나갔다. 문을 지나자 큰 트럭 한 대가 안뜰에서 나왔다. 안뜰에는 헬멧을 쓰고 총을 든 중무장한 경찰관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목적지로 차를 몰고 떠났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 40대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안뜰에 서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우리더러 무엇을 하러 왔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여행 왔어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에 뭐 하러 왔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북경 각지에서 파견된 경찰관들이고, 북경에 들어온 파룬궁을 체포하러 왔소.”라고 대답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복 경찰관들만 있었다.
어머니는 “왜 그들을 체포하죠? 그들이 몇 마디 하는 게 두렵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당신은 몰라요. 그들은 외국과 연결되어 있어요. 당신들로 그들을 멀리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밤, 방 안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몇 분 후에도 어머니와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틈으로 엿보니 경찰들이 “왜 전화를 안 받지?”라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어머니와 나는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흰 경찰 차량이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파룬따파하오”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경찰관들이 사람을 내리누르고 현수막을 뺏은 후 경찰차에 태웠다. 반대편에서도 “파룬따파하오”라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경찰들은 미친 듯이 사방으로 다니며 사람들을 태워서 한 대 한 대 데려갔다.
어머니와 나는 그들을 따라갔다. 우리는 현수막이 없어서 경찰이 압수한 현수막을 뺏으려 했다. 이때 5~6명의 여자 대법제자들이 경찰들에게 얻어맞고 발길질을 당하며 경찰차에 끌려가고 있었다. 또 50대로 보이는 다른 여자 대법제자가 바닥에 쓰러진 채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여러분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당신들을 구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다가가서 경찰에게 “왜 아직도 사람을 때리나요?”라고 물었다. 이때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 경찰관이 말했다.
“당신들 중 누가 내가 사람을 때리는 걸 본 사람이 있소?”
어머니가 말했다.
“바닥에 쓰러진 저 사람을 때렸잖아요?“
이때 마르고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그 여자는 맞을 만했어. 맞을 만했어. 살살 때린 거지.”
그의 눈빛이 아주 사나웠다. 우리가 조용히 그를 바라보자, 그는 우리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풀이 죽어 걸어갔다. 우리는 현수막을 뺏지 않았다. 나는 확고한 결심으로 “엄마, 빨리 외쳐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옆에 있던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가 포함된 일행은 남녀노소 스무 명 정도였다.
어머니와 나는 광장 한가운데 서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고 외쳤다.
나는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 어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우리가 외치는 동안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높이 외쳤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경찰이 달려와 어머니와 저를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그때 옆에 있던 그 사람들이 모두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 여자는 아이를 안아 올렸고, 소지품은 그대로 있었지만 가져가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씩 모두 차에 태워졌다. 차 안에는 시골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50대 남자 대법제자가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뺨을 맞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 아이가 말했다. “때리지 마세요.”
차에 탄 사람들이 모두 “우린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 사람을 때려선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몰랐지만, 어느 철창에 갇혔다. 경찰이 우리가 어디 사는지 물었다. 당시 나는 법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 박해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 잘 몰랐다. 나는 ‘이미 우리가 할 일을 했고, 우리의 소원도 이뤘으니, 살리든 죽이든 당신들 손에 달렸다.’라고 생각했다.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주소를 알려주자 북경 주재 현지 경찰이 와서 우리를 데려갔다.
우리 지역 공안국장이 소리질렀다.
“두 모녀가 왜 여기까지 와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집에서 소리 지르면 되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가 집에서 외치면 당신들이 들을 수 없잖아요.“
그곳에는 많은 동수들이 갇혀 있었다. 식사 시간에 한 사람 분량이 없어서 내가 말했다.
“엄마, 우리 둘이 한 끼 먹어요.”
어머니는 동의했고, 우리는 한 끼를 같이 나눠 먹었다. 오후에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수갑을 채웠고, 경찰은 아무도 볼 수 없게 손을 가리라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수갑을 찬 채 기차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수갑이 풀렸다. 나는 당시에 정말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루될까 봐 다시 손을 수갑 안에 넣었다.
나는 현지 구치소로 보내졌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있었다. 그 기간에 감방 안에서는 늘 전기 충격음과 구타당하는 비명소리가 자주 들렸다. 한 노년 여자 제자가 심문 받을 때 외쳤다.
“아가씨,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폭로해 줘. 내 딸도 감금되어 있어.”
그때 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곳에 감금된 이후로 나는 줄곧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심문을 받는 동안 악경이 내 가슴을 주먹으로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고, 부녀연합회와 주민위원회에서 사람이 다 와서 나더러 밥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은 어머니를 나와 함께 있게 했다. 식사 시간에 어머니는 내 얼굴이 수척해졌고 두 눈에 피멍이 든 것을 보고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말했다.
“딸아, 왜 밥을 안 먹는 거니?“
내가 대답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통을 감당하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 감당하셨는데, 제가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어요?”
우리 방에 있던 한 60대 노동수가 밥그릇을 침상에 내려놓더니 침상에 누워 울면서 말했다.
“그래! 우리는 모두 이 아이만도 못하구나!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통받고 계시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무한한 죄업(罪業)을 감당하셨는데. 우리는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고,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사부님께서 구도해 주신 은혜를 표현할 수 없구나!”
나는 지금도 의연히 정법 수련의 길을 걷고 있으며, 법 공부를 많이 하고, 편리한 업부 환경을 이용해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530
